전국최초 속기사 출신 팀장…후배들에 길 열어주고파
전국최초 속기사 출신 팀장…후배들에 길 열어주고파
  • 정수희
  • 승인 2019.10.1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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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잔다르크’ / 마포구의회 유영란 홍보기록팀장
마포구의회 유영란 홍보기록팀장
마포구의회 유영란 홍보기록팀장

 

“국회에서 일하겠다” 꿈을 안고 상경, 국회 속기사 양성소에서 자격증 취득

결혼후 서울시의회 공채지원 당당 합격, 91년 마포구의회로 발령 30년간 재직

구조조정 1순위 별정직 설움 고군분투, 일반직 전환 후 ‘팀장승진’ 길 트려 진력

 

[시정일보]전국에는 226개 시군구가 있다. 그 가운데, 기능직 출신으로 일반행정팀의 팀장을 맡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올해 1월 고양시의회에 속기사들로만 구성된 의정기록관리팀의 팀장이 배정된 사례를 제외하고 전국 자치구 최초로 속기사 출신으로, 홍보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속기사들이 공존하는 부서의 수장을 맡고 있는 마포구의회 유영란 홍보기록팀장. 그는 평소 ‘잔다르크’로 불린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나간다 해서 붙여진 별명답게 유영란 팀장은 홍보기록팀을 그렇게 탄생시켰다. 7대 의장을 지낸 한일용 의원과 현 8대 이필례 의장, 그리고 조주연 사무국장에게 공을 돌리지만, 유 팀장의 당찬 자신감과 소신, 준비성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향인 전주에서 화려한 여고시절을 뒤로 하고 서울로 온 그는 우연히 신문에 난 공고를 보고 “국회에서 일할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국회에 속기사양성소라는 곳이 있는데 국비로 속기를 가르쳐주고 후에 국회 속기사로 취업이 가능하다’고 해서, 바로 교육에 참여해 거기서 반장을 할 만큼 적극적으로 공부했다”고 했다.

“그런데, 속기사 시험과목 중에서 학창시절 가장 좋아하고 잘하던 수학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국회 속기사 채용시험에 실패하고, 10년간 다른 일을 하다가 결혼 후 육아에 전념하던 중 지방의회가 생기고 속기사를 모집하니 응모를 해보라는 지인의 연락에 서울시의회 공채에 지원해 합격한 것”이라는 그의 설명에 배짱과 강단이 엿보였다.

마포구의회로 발령받아 1991년 5월6일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고 25년간 우여곡절을 겪다가 6급이 된 그는 3년3개월 후인 올해 8월에 홍보기록팀이 신설되면서 어렵사리 팀장직을 부여받았다. 그 과정에서 여러 난관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버팀목이 돼준 직장에 감사함을 전했다.

하지만, 제도라는 벽에 부딪힐 때마다 자료 하나하나를 준비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설득해 나가야 하는 과정은 고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입사 당시 “‘국회에는 속기직이 일반직에 해당하는데 그렇게 해 달라’고 하니 ‘우리는 행정직 아니면 기능직이라 처음에 기능직으로 했다가 나중에 전환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첫 발을 내디뎠다”고 한다. 이후, 국회, 지방의회 속기사 대표들과 당시 행자부(행정자치부)에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을 때, “기능직에서 바로 행정직 전환은 어렵고 행정직에 준하는 별정직은 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그런데, 바람만 불면 ‘별정직인 속기사들 줄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구조조정이 돼서 속기사 정원이 줄어든 구가 많았다”며 “그럴 때마다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다른 업무까지 겸하면서 상황을 이겨냈다”고 말한 그는 “1년 이상 해야 체득되고 보이는 것보다 몇 배의 시간과 공이 드는 데다, 다방면을 섭렵해야 할 만큼 능력이 요구되는 업무라 그야말로 끈기 있는 실력자만이 버틸 수 있다”면서 “그래도 속기라는 업무가 전문영역이기 때문에 인정받으며 일해 왔다”고 자부심을 표했다.

그의 철저함은 팀장이 되는 과정에 큰 몫을 했다. 2013년 12월, 기능직을 폐지하고 일반직으로 통합하는 내용의 공무원법 개정에 따라 그는 직렬 전환을 받았다. 직 전환 이후 최소 2년 뒤 진급할 수 있는데, 그는 2016년에 6급으로 진급했다. 이후, 서울시 인사마당에 “직 전환이 됐는데 이제 팀장을 할 수도 있지 않나”하고 공개질의 한다. 입신에 대한 욕심 때문이 아니라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

“속기 관련 팀장은 가능하다”는 서울시의 답변과 공무원법 개정자료, 당시 팀장 기준을 ‘행정직 6급’으로 둔 사무분장규칙 등 관련 서류를 구비해서 당시 의장이던 한일용 의원을 찾아가 사무분장규칙 개정을 제의했다. 검토 끝에 해당 내용을 운영위원회에 상정해 통과시켰는데, 본회의에서 보류돼 2017년 12월을 넘기고 이듬해 4월 회기를 맞는다. 한 번 더 의장을 설득해 기회를 마련한 그는 결국 원하던 대로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6급이 되고 3년 뒤에 팀장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생겼다. 그에게는 올해가 그 시기였다. 그 사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조주연 사무국장은 의정활동 홍보와 구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홍보팀 신설을 구상하고, 형평성을 고려해 팀장 기준을 행정직 6급, 속기직 6급으로 한다. 유 팀장이 쌓아온 그동안의 공적과 적극적인 면모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무국장은 그를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홍보업무와 기록업무를 통합한 ‘홍보기록팀’을 만들어 올해 8월 조직개편 시 팀장직을 맡겼다.

“마포구의회에 홍보팀이 처음 생겼기 때문에 기대도 많고 책임감이 막중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 하나하나 그려나가는 중이라 부담이 크지만 그만큼 세심하게 살펴서 기반을 착실하게 다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팀장으로서 팀원들에게 최대한 재량권을 주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며 “어떤 상황에서든 직원들의 의견을 먼저 듣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든든한 울타리 역할이 돼주려고 한다”고 밝혔다. 최근 구의회는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했다. “그 과정에서 콘텐츠를 전공한 담당직원이 외주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아이디어적인 측면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다”며 실제로 그는 팀원에게 공을 돌렸고, 앞서 윗선에 보고할 때에도 “일부러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고 설명하기 위해 담당직원과 함께했다”고 덧붙였다.

“삶에 있어 다른 사람과 비교해 부러워하기보다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 직접 실행해왔다.

또한, “선례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는데 ‘우리 스스로 선례가 되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왔다”며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주어진 환경에 늘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는 그는 자신감과 준비성을 무기로 최초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가능성을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다.

정수희 기자 / sijung19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