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공약사업 챙기며 네 번째 임기 마무리”
“핵심 공약사업 챙기며 네 번째 임기 마무리”
  • 정수희
  • 승인 2019.11.0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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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열 구청장, 소탈함과 유머 매력…내면엔 부마민주항쟁 고초 아픔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이 구립어린이집을 방문해 어린이들과 대화하고 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이 구립어린이집을 방문해 어린이들과 대화하고 있다.

 

[시정일보]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소탈함’이 매력인 사람이다. 전남 나주가 고향인 그는 특유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다 주변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유머 가득한 화법이 강점이다.

주민들에게도 그런 매력은 통한다. 지난달 18일 만난 유 구청장은 “주민들과 만나다보면 늘 주민 속으로 빠져든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구청장은 “조금 전에도 전농1동에 축제가 있어서 둘러보고 왔다. 끝날 때쯤 막걸리파티를 하는데, 주민들이 막걸리를 주시면 항상 즐겁게 마신다. 그렇게 주민들과 함께한다”고 덧붙였다.

그런 그의 얼굴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에서 있었던 아픔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부마민주항쟁(1979) 당시 부산에서 동아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온갖 고초를 겪었다. 유 구청장은 “18년 5개월 동안의 유신독재 막바지에 학생들을 마구 구속시키고 민주주의를 너무나 탄압하지 않았나. 나 역시 표적이 되고 주모자가 돼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보안사 지하실에서 36일간 고문과 구타를 당하고, 이후 구속돼서 헌병대에서 한 달간 삼청교육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 일로 유 구청장은 입학 12년만인 1988년에서야 학교를 졸업했고, 지금도 고문 후유증을 겪고 있다.

부마민주항쟁은 40주년을 맞은 올해에서야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항쟁 발생일인 10월16일에는 창원에서 첫 공식 기념식이 개최되기도 했다. 유 구청장은 “지금에서야 40년만에 나라에서 자료제출을 요구해서 경찰서와 국가기록원에 갔더니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담당조사관들이 부산 군법회의에서 찾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문 후유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친구 중에는 반신불수가 된 이도 있다. 다들 회복할 수 없는 나이가 됐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구청장으로서 마지막 임기를 보내고 있는 유 구청장이 꼭 마무리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유 구청장은 “그동안에 공약 세웠던 것들을 차질 없이 차근차근 잘 해나가려고 한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아이들을 잘 키우고 교육시킬 수 있는 동네,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동네,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동네를 만들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그들을 보살피는 다양한 사업들을 차근차근 마무리해갈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으로서 다른 포부도 있지 않을까. 유 구청장은 “지금으로써는 다른 계획 없이 구정에만 충실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지역 사정과 정국의 변수를 관망해야겠지만, 우선은 구청장으로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 구청장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한 평소 소신을 밝히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1987년에 만들어진 헌법이 하루빨리 개정돼서, 명목만 지방자치가 아니라 실질적인 풀뿌리 지방자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지방자치가 민선 7기로 접어들어서 20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국세 지방세 8:2의 세무구조를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은 지방정부가 어떤 일을 시도해보기가 어렵고 현상유지도 벅찬 상태”라면서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을 텐데, 그 부분이 참 아쉽고 안타깝다”며 재정분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위무할 수 있다’는 말을 그간 그가 펼쳐온 구정활동을 통해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을 알고 사람을 위하는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사뭇 궁금해진다.

정수희 기자 / sijung19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