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시정칼럼 /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 임 춘 식 논설위원
  • 승인 2019.11.28 12:45
  • 댓글 0

[시정일보]충남 서산의 천수만에 수만 마리 이상의 기러기가 찾아왔다. 시베리아 등지로 날아갈 때까지 서산에 머물며 겨울을 날 것이다. 날마다 우울한 일들만 잇따르는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를 기러기 떼를 보며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지혜를 배웠다. 경기회복에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정치권의 분열은 안타깝기만 하다.

모처럼 기러기 소리로 향수를 달랬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서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기울며는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별의 노래: 박목월 작사, 김성대 작곡)

기러기는 구슬프고 처량한 울음소리 등으로 만추(晩秋)의 쓸쓸한 정취를 상징하는 겨울철새다. V자 형태로 떼 지어 날아서 이동하는 생태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혼자 날아가는 경우를 두고 ‘외기러기’라는 말도 생겼다.

기러기는 서울에서 부산 간 왕복 40번에 해당하는 머나먼 길을 옆에서 날갯짓을 하는 동료와 서로 의지하며 날아간다. 만약 어느 기러기가 아프거나 지쳐서 대열에서 이탈하게 되면 다른 동료 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에서 이탈해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해서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료의 마지막을 함께 지키다 무리로 다시 돌아온다. 호주인 톰 워삼(Tom Worsham)이 쓴 ‘기러기’ 이야기인데 어쩌면 미물(微物)인 새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

만약 제일 앞에서 나는 기러기가 지치고 힘들어지면 그 뒤의 기러기가 제일 앞으로 나와 리더와 역할을 바꾼다. 이렇게 기러기 무리는 서로 순서를 바꾸어 리더의 역할을 하며 길을 찾아 날아간다. 이렇게 서로 돕는 슬기와 그 독특한 비행 기술이 없다면 기러기 떼는 매일 수백 킬로미터를 날면서 해마다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그 비행에 성공하지 못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의 의미를 반추한다. 기러기가 서로 돕는 지혜와 독특한 비행법이 없었다면 그토록 먼 길을 날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인간들도 혼자선 살 수 없기에 기러기처럼 상호협력하면서 지혜롭게 살아가라는 교훈으로 남는다.

기러기는 수명이 20~30년인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홀로 지낸다. 그리고 상하의 질서를 지키고 날아갈 때도 행렬을 맞추며 앞서가는 놈이 울면 뒤따라가는 놈도 화답(和答)을 하여 예(禮)를 지킨다. 또한 기러기는 왔다는 흔적을 분명히 남기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한다고 규정짓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누구에겐가 도움 되는 삶,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행복에 가치를 둘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인류는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우리는 더불어 가야 한다. 함께 가기 위해선 기러기들처럼 공감과 소통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공감을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무엇보다 다름에 대해 차별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의 아픔을 읽을 수 있다. 상대가 아파하고 있다면 상대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줘야 한다. 그 상처를 외면하거나 더 긁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 사회의 악으로 돌아오고, 우리 모두의 고통이 될 수 있다.

불우한 이웃들이 힘들고 서글픈 계절이 겨울이다. 기러기의 비행처럼 혼자보다 함께 날 때 훨씬 더 멀리 난다. 새들은 신호등이 없어도 서로 부딪히지 않고 잘도 날아간다. 우리네 인간들도 새들을 닮아 서로의 감정이 부딪히지 않고 더 없이 평화로운 삶을 지낼 수 있었으면 한다.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치유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지혜를 나누어 주며, 인정이 메마른 곳에는 사랑의 감동을 나눌 수 있으면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이 우리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도움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주위에 소외되고 힘들어 지친 이웃이 없는지 살펴봐야 할 때다. 기러기들의 지혜를 공유한다면 우리 인간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오더라도 서로 뭉쳐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삶이 지칠 때는 기러기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서로 협력하며 고통을 공유하는 기러기들의 팀워크와 지혜를 배우자.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