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사랑이 그리운 시대
시정칼럼/ 사랑이 그리운 시대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0.02.0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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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대한민국의 화두는 대통합이다. 그러나 현실은 조화로움의 화(和)를 강조하는 상생과 공생을 추구하기보다는 편 가르기로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좌파의 진보주의적 관점은 틀린 것일까? 우파의 보수주의적 관점은 과연 고리타분한 것일까? 왜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데 협력하지 못할까?

우리 사회가 민주화·다원화되면서 복잡한 이해관계와 다양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최근 사회 각 부문의 갈등과 충돌이 점점 첨예화되는 반면, 이에 대한 해결 및 조정 기능은 미약한 실정이다. 세상에는 이기적인 껍데기 사랑이 매우 많다. ‘나’를 우선하는 것보다 ‘우리’가 되어야 비로소 하나일 수 있는 사랑이 그리운 시대이다.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은 서로를 ‘반쪽’이라고 부른다. 따로 태어나 따로 살아왔지만, 하나의 사랑이 되어 영원히 같이 하자는 뜻이다. 이렇게 서로의 반쪽이 되어 사랑을 나누는 관계를 빗대어 ‘연리지(連理枝) 사랑’, 또는 ‘비익조(比翼鳥) 사랑’이라고도 한다. 연리지는 나무이고, 비익조는 새인데, 어쩌다가 이런 말이 생겼을까

연리지의 뜻은 ‘다른 나무가 서로 붙어서 한 그루처럼 된 나무’를 말한다. 그래서 ‘화목한 연인’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비익조는 ‘눈과 날개가 한쪽씩밖에 없어서 짝을 만나야만 날 수 있다는 전설의 새’를 뜻한다. 지금은 사랑을 맹세한 연인들에게도 연리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까마귀는 뭇새가 검다고 믿고, 백로는 희지 않은 새를 의아해 하네.’ 조선후기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시다.

검은 까마귀와 하얀 백로가 서로 옳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연암은 흑백이 맞서서 우기면 하늘도 난처하다면서 ‘사람에겐 두 눈 있지만, 한쪽 눈 없어도 또한 본다네. 하필 두 눈 있어야 밝게 보일까. 외눈박이만 사는 나라도 있는데’라고 읊는다.

외눈박이 나라에서는 양눈을 가진 이가 비정상으로 비쳐진다. 한 나그네가 외눈박이 나라에 들렀다가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외눈박이가 되었다는 우화는 무엇이 정상인지를 모르는 사람의 비극이다.

도처에 나와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사는 이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만 그들을 적대시하고 앙갚음만 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그들은 항상 적이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때로는 내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용서하고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 그게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이다.

요즈음 한국사회를 보면 외눈박이 나라처럼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치, 경제, 국방, 안보. 행복도 이제 그 축이 송두리째 외눈박이로만 갈라지고 있다. 모름지기 균형 잡힌 혜안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한쪽 눈으로 희미하게 보는 것보다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한쪽 귀로 편향적으로 듣는 것보다는 두 귀로 공평하게 들으며, 한쪽 팔과 손으로 애쓰며 일을 하는 것보다는 두 팔과 두 손으로 수월하게 일을 하고, 한쪽 다리로 절면서 불편하게 걷는 것보다는 두 다리로 균형을 유지하며 편안하게 걸어가면서 아름다운 이 세상을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화합은 배려와 양보 그리고 대화를 먹고 자란다. 정의의 가치를 드높여 배려, 양보와 대화 위에 서서, 초갈등사회를 잠재우고 화합하는 국력으로 우리 모두 깨어나자.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좀 더 진지한 마음 자세로, 그리고 감성과 이성적 조화로운 융합을 통해서 인간사회를 인문학적 균형 위에 옹립하는 시도가 적극적으로 일어나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손을 걷어붙이고, 물질추종의 명분에서 내려와 겸허한 마음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의 사회를 염려하는 작업에 몰입해 주기를 권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