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곡(哭)하지 말라
기고/ 곡(哭)하지 말라
  • 김기록 한국시니어케어연구회 이사
  • 승인 2020.03.2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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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기 록 한국시니어케어연구회 이사
김기록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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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이 경계해야 할 과오 중 으뜸으로 꼽는 것은 탐욕과 오만이다. 탐욕과 오만에 빠진 인간은 예외 없이 파멸에 이른다. 좀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이 탐욕이라면, 많이 가졌다고 우쭐대는 마음은 오만이다.

탐욕은 지나친 욕심이며 오만은 과도한 자부심이다. 탐욕과 오만에 대한 교훈은 무엇이든 과도한 상태에 이르기를 경계하고 절제와 중용, 그리고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합리주의를 반영한다.

요새 세상이 너무나 혼란스럽다. 정치인들의 끝없는 탐욕과 코로나19 때문에 삶은 피곤하며 고달프다. 세상은 왜 이렇게 어지럽고 복잡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해 본다.

모처럼 백호 임제((白湖 林悌 1549-87) 선생을 책에서 만났다. 조선이 낳은 인물 중 그 만큼 드러나지 않고 신비에 쌓인 인물은 별로 없다. 그는 불세출의 천재이면서 온 세상을 품을만한 기개를 가진 대장부였으나, 시와 술 거문고와 칼을 벗 삼아 주유천하로 세월을 보냈다.

그는 후대의 석학들로부터 “조선왕조 5백년에 가장 뛰어난 천재 시인이자 자주독립사상을 견지하여 사대부유(事大腐儒)들과 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던 높은 인간성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호방불기(豪放不羈)라 할 수 있다. 그는 40년도 안 되는 짧은 생을 하늘과 땅 사이 어디에도 걸림 없는 무애자재(無碍自在)의 삶으로 일관했다. 타고난 기질이 격정적이고 자유분방한 그는 스승도 없이 독학하며 산천을 유람하다 20세 되던 해 보은에 은거하던 당대의 석학 성운(成運)선생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의 준열한 꾸중과 격려로 중용을 8백독을 한 후 유명한 의마부(意馬賦)를 지어 스승께 바치고 하산한다. 의마부는 道가 사람을 멀리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道를 멀리 하고(道不遠人 人遠道), 산이 세속을 떠나는 게 아니라 세속이 산을 떠난다네(山非離俗 俗離山). 속리산이란 이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임제는 정감어린 시어와 풍류로 황진이, 일지매, 찬비(한우) 등 명기들과의 연분이 세간에 많이 알려졌으나 그는 흔해빠진 선비들처럼 음풍농월로 세월을 허송한 사람이 아니었다.

부귀공명을 백안시하고 남다른 우국충정으로 비분강개하는가 하면 천군만마를 호령하는 기백의 지사요 헛된 명리를 초개처럼 버리고 저자와 산수간(山水間)을 오가던 재세출세간(在世出世間)의 현인이었다.

그의 비범함은 꿈의 세계를 통해 세조의 왕위찬탈과 정치권력의 모순을 풍자한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인간의 심성을 의인화한 수성지(愁城誌), 식물을 통해 인간역사를 풍자한 화사(花史) 등 최초의 한문소설과 7백수가 넘는 한시, 남명소승 등 절세의 작품들로 당대 제일의 문장가로 알려진 허균(許筠 1569-1618)과 쌍벽을 이루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그의 기백은 멀리 고려 말 선조 임탁(林卓에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임탁은 이성계가 고려의 왕족과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새 왕조를 세운 역성혁명(易姓革命) 에 반발해 벼슬을 내던지고 회진현(지금의 나주)에 숨어들어 절의를 지킨 그는 후손에게 새 왕조에 나아가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다.

임제는 다소 늦은 나이인 29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 도사 예조정랑 등의 벼슬을 거쳤으나 관리들의 부패와 파벌, 붕당에 깊은 환멸을 느껴 더러운 관직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35세가 되던 해 평안도 도사로 부임해 가던 중, 송도삼절로 불리던 당대의 아름답고 다재다능한 저항의 기녀 황진이를 만나고자 했으나 이미 석 달 전에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무덤을 찾아 술잔을 따르며 지은 시조는 너무도 유명하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조정에서는 사대부가 천한 기생의 무덤에 절하며 곡을 했다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니 임제는 안 그래도 못마땅한 벼슬을 헌신짝 버리듯 던지고 천하를 주유하며 담대하고 협기 넘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하늘은 이 희대의 천재에게 수(壽)를 주지 않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너무 일찍 찾아온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니 향년은 겨우 39세였다. 장지(葬地)를 어디로 할까 묻는 자손들에게 “저-기 신걸산에서 영산강을 향해 뻗어 내려오는 지맥 중턱에 나를 묻어다오. 넓은 벌판이나마 시원하게 굽어보자구나...” 척당불기(倜戃不羈)의 호방한 정신이 드러나는 그 다운 유언이다.

임종이 가까워져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리자 그는 “천하의 모든 오랑캐와 야만족이 다 중원의 황제를 칭했는데 오직 조선만이 중국의 신하노릇을 했을 뿐이다. 이런 한심한 조선 땅에서 산들 어떻고 죽은들 어떤가. 곡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칠 줄 모르는 권력과 정치적 탐욕 그리고 끝없는 경쟁 속에 메말라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백호 임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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