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포스트 코로나의 삶
시정칼럼/ 포스트 코로나의 삶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0.05.1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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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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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는 2019년 발생, 2020년 들어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후의 시대를 일컫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강력한 전파력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펜데믹(Pandemic, 세계적 감염병 유행) 현상을 일으켜 원격근무,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새로운 사회문화와 함께, 전통적 의료제도와 사회복지, 가족 개념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면서 향후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이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 석 달 넘게 우리의 일상과 경제를 잠식하고 있다. 특히 일상 곳곳에서 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우리의 가족이자 이웃,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수입 격감을 겪으며 추락하고 있어 심지어 우리가 알던 좋은 세상은 이미 끝났다고 개탄한다.

코로나 사태는 전 세계의 불확실성을 극대화 했고, 기업들은 예정됐던 투자 계획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있다. 기업 실적 악화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 특히 대면 접촉에 대한 부담 탓에 소매업, 여행, 교육, 공공 부문 등 저소득 일자리가 많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큰일이다.

코로나19 유행과 맞물려 혐오 발언도 쓰나 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이를 끝내기 위한 전 세계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 온라인과 길거리에서 반(反)외국인 정서가 급증하고, 이주민과 난민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근원으로 비난받고, 심지어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노인들을 그저 소모품으로 묘사하는 현 세태가 안타깝다.

우리에게는 대유행과 맞서 싸우며 사람들을 보호하고, 낙인찍기를 끝내고, 혐오를 예방할 의무가 있다. 모든 사람이 증오에 맞서고, 서로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모두에게 친절하기를 생활화해야 한다. 즉 코로나19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차이가 무엇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바이러스도 하지 않는 차별을 멈춰야 한다.

인간 바이러스의 탐욕에는 제동장치가 없다. 더불어 사는 사회, 봉사하는 서비스정신이 아니라 군림과 지배 유전자를 지닌 계층이 최악과 차악 사이로 삶을 몰아넣는다. 이 바이러스는 건강하지 않은 시민의식을 집중 공략한다. 지역감정에 손상된 면역체계, 빈부격차로 허약해진 체력, 색깔 편식이 초래한 영양결핍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사회적 혐오를 조장하며 편 가르기로 기생한다.

코로나19는 분명 세계적 재앙이지만, 우리에겐 뜻밖의 선물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는 가히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의 인식 틀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사물의 질서라고 여겨온 거대한 세계가 더 이상 당연한 것도, 견고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다행히 예방과 치료 백신이 있다. 예방은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손 씻기와 거리두기이다. 부정한 손과 악수했던 손을 씻는 것이다. 사탕발림으로 포장한 부패와 적폐는 뒷맛이 매우 쓰다.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기 십상이다. 따라서 그런 비인간적인 계층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자신과 가족, 나아가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다.

치료 백신은 바로 제대로 된 국민의식을 개조하는 좋은 치료제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변이를 거듭하며 생존을 모색한다. 그래도 깨어있는 시민들이 합심해 손 씻기와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 백신만 잘 투여하면 살기 좋은 청정지역’을 구현할 수 있다.

지금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고통을 겪고 있다. 바이러스는 자연재해는 물론 인간이 야생동물과 접촉하면서 번식과 진화의 기회를 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러스가 바이러스적인 인간을 숙주로 삼았다는 게 아이러니컬하다. 어쩌면 이 역시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자연계에 형평을 이루려는 조물주의 치밀한 설정이라고 이죽거리는 이들도 있을까. 그래서 인간의 속성과 바이러스는 닮은꼴이라고 한다.

인간 바이러스의 탐욕에는 제동장치가 없다. 이 바이러스는 건강하지 않은 시민의식을 집중 공략한다. 감정에 손상된 면역체계, 빈부격차로 허약해진 체력, 색깔 편식이 초래한 영양결핍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그리고 구성원들 간의  혐오를 조장하며  편 가르기로 기생한다.
 
단언컨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자본주의가 작동한다면 22세기는 오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자본주의를 위해 삶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삶을 위해 자본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자본주의를 인간화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전도시켜 인간을 소외시키고, 불평등과 실업으로 사회를 붕괴시키며, 무한생산과 무한경쟁으로 자연을 파괴한다.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화해하고 공존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회모델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고난은 늘 새로운 성장을 위한 기회의 시간으로 작동했다. 요즘 우리 국민은 국난 극복을 취미생활로 한다는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생활의 근간이 부서지는 엄청난 충격 속에서도 우리는 극복하고야 만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표현이지만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 아프다. 그래서 고통의 시기를 도약대로 삼아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슬기로운 극복생활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한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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