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신문 만들기를 위해
좋은 신문 만들기를 위해
  • 시정일보
  • 승인 2007.04.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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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광 희 기획취재국장

우리는 지금 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빠르고 그 지평은 넓다. 내일이 없는 오늘의 사고는 곧 퇴행을 의미한다. 하루하루 ‘창조적 파괴’가 요청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세계는 하나의 촌락만큼 유기화 됐다. 우리의 경쟁자는 더 이상 이웃이나 우물 안에 그치지 않고 지구촌의 세계인으로 확대됐다. 안으로의 변화 또한 심상치 않다.
조직된 정보를 통제하던 폐쇄회로적 권력은 효능성을 이미 상실했다. 시민사회는 불안감을 느낄 만큼 다양해지고 있다. 사회의 기초가 희미해지고 있다. 사회의 좌표와 규범이 상실되는 징후들도 나타나고 있다.
언론의 사명과 역할도 재조정되고 있다. 고루한 형식과 사고의 ‘틀’로는 변화를 읽어내고 21세기를 선도할 수 없다. 혼돈 속에서 ‘건강한 사회’를 엮어내는 세계관과 가치관의 창출이 새로운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변화에 수반되는 정보의 갈증현상도 언론의 폭과 깊이가 확대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의 영역은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정답을 찾는 작업이 아니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보여주어야 하고 다양한 의견들이 통합 정리되는 조화의 매개체이어야 한다.
시정신문이 창간 19주년을 맞아 스스로의 변신을 모색하는 ‘개혁’의 모토로 새 출발을 선언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다. 개혁은 독자중심·독자지향의 사고를 통한 ‘건강한 사회’ 건설에 초점이 있다.
이제 시정신문은 이를 위한 몇 가지 원칙을 확인하면서 이에 따른 각오도 새롭게 한다.
첫째, 신문의 기본적 사명인 감시와 시시비비의 기능에 충실하려 한다. 민주사회는 언론과 시민의 깨어있는 ‘눈’ 속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사회를 왜곡하는 껍데기는 벗기고 칸막이는 걷어내어야 한다.
지난날 권력의 폭압에 의해 도전받던 시대에서 한 단계 도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관료적 사고나 권위주의적 가치판단, 과거에 얽매인 고정관념 또는 집단이기주의는 언론의 촉수를 방해하고 있다. 각종 분야에서의 비리와 허위가 드러나는 것은 아직도 언론이 감시와 비판기능에 더 눈을 크게 떠야 한다는 증거다.
긍정적 측면을 널리 알리고 확산시키는 것도 언론의 몫이다. 칭찬에 주저하지 않는 ‘열린 마음’ 비판정신 못지않게 주요한 원칙이다.
둘째, 개방화·지방화 시대에 걸 맞는 넓고 깊은 시야를 제공하려 한다. 21세기적 변화에 발 맞추지 못하는 민족과 국가는 낙오하고 만다. 이제는 우리도 세계의 변화에 대한 주견(主見)을 가질 정도로 성장했다. 지방화시대에 걸 맞는 뉴스들을 일상의 사고만으로 끌어들여야할 시점인 것이다.
셋째, 삶의 질을 높여주는 정보 상품을 제공하는데 주력할 것이다. 생활 속에서 효용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언론은 환영받을 수 없다. 자아실현에 필요한 일상의 지식과 건전한 문화를 제공하는 ‘정보 유통지’가 독자의 요구라고 자각하고 있다.
공해와 주택문제, 건강과 품위 있는 오락의 공급도 독자의 요구다. 또 건실한 시화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언론이 주력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이 같은 정보를 독자들의 취향과 체질에 맞는 짜임새로 전달해 주는 것도 우리가 시도하는 변화의 지향이다.
우리는 이제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좋은 신문 만들기에 새롭게 출발하면서 독자와의 대화통로를 개방하는 데도 주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