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보다 느림이 더 필요한 새주소 제도
빠름보다 느림이 더 필요한 새주소 제도
  • 시정일보
  • 승인 2007.04.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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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鍾榮 기자 jykim@sijung.co.kr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은 아담이 밭 갈고 이브가 베 짜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기 487년 신라 소지왕 9년에 국가공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우역(郵驛)이 출발점이다. 현대적 우편의 역사는 1884년 11월 18일, 서울과 인천 사이의 신식 우편 제도가 실시된 것을 기준으로 삼는데, 120년이 넘는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4월 5일부터 본격적으로 새주소 제도를 사용하도록 했다. 120년 동안 사용한 주소체계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편리하고 체계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현재 새주소 표지판이 붙어 있지만 아직도 이 표지판을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편배달부조차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 기존 주소를 함께 적어주면 더 빨리 배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새주소 제도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 어떤 추가 조치가 필요하거나 서둘러 시행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옳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반증이다.
공무원 사회에서 상명하복은 피할 수 없는 생리(生理)다. 행자부 등 정부의 정책은 지방자치단체에게 있어 명령이고, 이는 곧 복종을 낳는다.
정책 시행과 함께 가시적 결과가 나오는 것은 큰 문제가 없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의 업무와 부담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라는 지적과 우려가 많은 새주소 제도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의 한 자치구의 새주소추진반은 늘 야근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바쁘기만 하다. 새주소추진반을 별도로 구성해 운영하는 자치구는 올해 초 2곳이었다. 이 중 한 자치구는 직접 포스터(4000부)ㆍ리플릿(1만부)ㆍ안내도면(12만부)을 발행, 직원 3명이 직접 배달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예산이 넉넉지 않아 외부에 용역을 주면 홍보할 수 있는 예산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새주소 관련 시행규칙이 개정돼 앞으로 주민등록과 토지대장 등 공문서는 모두 새주소로 바꿔야 한다.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은 뻔하다. 주소와 맞물려 있는 우편번호도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에서 주소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을 2008년 12월에 끝낼 예정이어서 새주소와 헌주소의 우편번호는 당분간 혼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새주소의 경우 상복하명(上服下命)을 적용하면 어떨까. ‘현실’을 생각하면 빠름보다 느림이 더 필요한 제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