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모범 수호자
기자수첩/ 모범 수호자
  • 정수희
  • 승인 2020.08.27 12:05
  • 댓글 0

정수희 기자 sijung1988@naver.com
정수희 기자
정수희 기자

 

[시정일보 정수희 기자] 지방자치단체장은 행정가일까, 정치가일까.

기자이기 전에 한 자치구의 구민으로 기자가 바라는 구청장은, 능수능란한 정치가의 면모를 가지고 지역 주민을 위한 행정을 구현하는 데 힘써주는 이다. 자리보존이나 후일도모를 위해 몸 사리고, 당장의 구정 현안에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뒷짐지고 있으면 쓴소리가 안 나올 수 없다.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최근 정부의 8·4 부동산 대책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기존 집무실이 아닌 구청사 앞 광장에 ‘현장 구청장실’을 마련하고,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4일 정부가 발표한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는 상암동 한 지역에만 총 6200여호의 공공주택을 건립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여당 출신인 유 구청장은 즉각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신규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는 정부의 정책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상암동은 국내 IT·미디어산업의 메카인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지구로 조성하기 위해 개발된 만큼 4차 산업의 발전을 이끌 혁신산업의 거점지역과 남북협력 시대를 대비한 협력공간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단위 주택 건설을 해당 지자체와 단 한차례의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을 꼬집으며, “구청장으로서 이 문제를 묵과하지 않고 구민과 함께 해결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일 구청사 앞 광장에 구청장실이 꾸려지고, 이튿날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유 구청장은 “민선7기 출범하면서 핵심가치로 내세운 게 ‘소통’인데, 사전에 의견 수렴이나 협의 과정 없이 몰아붙이면 수용할 수 있겠냐”며, “이건 상암이든 어느 지역이든 마찬가지”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는 17일까지 꼬박 8일간 단식을 강행하며 수백명의 주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의견을 나눴다. 그러는 사이 일각에서는 님비다, 보여주기식 정치쇼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있었지만, 기자가 지켜본 유 구청장은 직원들 업무보고도 그 자리에서 받고, 주말을 하루 앞둔 늦은 밤에도 한뎃잠을 청할지언정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생업도 뒤로하고 이번 정부안에 반기를 들고 거리로 나선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의지에서 말이다.

“구민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구청장이 수수방관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구민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그런가 하면, 마포구와 인접한 구는 비슷한 사안에 대해 열흘 뒤 공식 반응을 내놨다. 주택공급 비율 확대보다 당초 계획대로 상업지구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데서 양쪽 모두 입장 차는 없어 보이지만, 이틀 뒤 예고된 주민 집회에 부랴부랴 대응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구청장은 구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지를 기반으로 선출되는 만큼 지역의 구심점이자 소통 창구라는 점을 늘 유념해 그에 맞는 책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