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남편의 운명은 아내에게 있다
시정칼럼/ 남편의 운명은 아내에게 있다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0.10.0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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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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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은퇴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젠 고민해야 한다. 당신의 ‘은퇴 이후의 삶, 안녕하세요?’에 대해 지금 스스로 물어보시라. 은퇴 이후를 아름다운 인생 2막으로 보고 있나? 인생을 즐기며 쉬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노년은 이제 옛말이 됐다.

요새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더불어 신종 여성 질환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남편 때문에 생기는 여성 병이다. 정년퇴직한 남편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생기는 질병으로 보통 60대 이상 여성들에게서 발생한다. 원인은 천차만별이지만 ‘집콕’ 남편의 가부장적인 행동과 언행 때문이다.

전업주부로 살아온 여성들은 가족이 외출하면(직장, 학교, 출가 등등)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은퇴한 후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동안 알지 못한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마치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회사에서 부하직원 다루듯 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소파에 앉아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하며 커피 타 와라, 신문 어디 있느냐, 어디 가, 언제 와, 무엇 사와, 밥은? 등등 직장인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갈등과 스트레스를 일본에서는 부원병((夫源病))이라고 한다. 순수한 우리말로 표현하면 '화병'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화병을 일으키는 대상이 남편이란 것이 차이다. 심할 경우 황혼이혼. 황혼의 나이에 이혼이란 쉽지 않은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부원병도 한몫 한다.

어쨌든 직장을 은퇴한 남편의 말이나 태도가 원인이 되어 아내에게 생기는 무서운 병이다. 그러니까 직장에서 퇴직한 남편의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말이나 행동 때문에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아 생기는 병이라는 의미다. 두통이나 현기증, 불면증, 귀울림, 우울증 등의 이상 증상이 부원병에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병이 특정 의약품으로 쉽게 치료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남편과 함께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장기간 부당한 대우를 반복적으로 받아 서서히 깊어지는 병으로, 가족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랫동안 갈등이 쌓여 생기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증상이 악화되고 있어 장기간 고통에 시달린다.

무엇인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며, 이러다간 나만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생각 때문에 어디에서 하소연은 하고 싶은 데 들어줄 사람도 없다는 느낌으로 스스로 병을 더욱 심각하게 한다. 결국 부원병 치료의 매뉴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이 분명해 보이지만 어쨌든 명의는 남편이며 명약은 남편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할 뿐이다.

은퇴 이후 부부 사이의 상황 악화는 시점 문제일 뿐 언젠간 틀어진다. 원인 제공은 남편이 하고, 방아쇠는 아내가 당긴다. 돈을 벌 때는 그래도 참지만, 은퇴 이후까지 남편의 ‘꼰대질’을 받아줄 아내는 없다. 환경변화에 적응하기도 힘든 상황인데 남편마저 힘들게 하니 젊었을 때 참을 수 있었던 것이 지금은 참기 힘든 고통이 된 것이지 갑자기 변한 게 아니다. 남편들이 모를 뿐이다.

남편의 불변은 아내로선 불편을 넘어 반발을 낳는다. 초고령사회에선 심심찮게 들린다. 은퇴남편의 존재 자체마저 싫다는 투다. 은퇴했는데도 인식과 행동의 변화 없이 예전처럼 생활하는 남편을 그대로 받아줄 아내는 없다. 우리의 노년은 걱정스럽다. 왕년에 잘나갔어도 간판이 떨어지고 명함이 사라지면 고립적인 무위(無爲) 노년일 뿐이다.

부원병의 예고나 경고를 무시해선 곤란하다. 처음엔 단순한 ‘은퇴남편 재택증후군’의 가벼운 징후지만 곧 정식 질병으로 전이된다. 대화조차 사라지면 사실상의 위험신호로 그땐 늦은 경우가 많다. 당연히 필요에 따른 거래관계적인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아내를 직장상사처럼 여기라는 메시지다. 예스맨까진 아니라도 눈치보고 배려하며 모시라는 의미다.

정년 이후에는 건강, 여가, 돈, 인간관계의 관리가 더욱 중요해진다. 그중 관계만 놓고 이야기할 때 부부 사이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한창 일로 바쁜 시기에는 아침과 밤에 잠깐씩 마주치는 것이 전부지만, 은퇴 이후에는 30-40년 동안 하루 종일 마주보며 지내야 한다. 결국 노년에 의지할 사람은 반려자뿐이다. 그래서 아내를 동반자로 인식하고 배려해야 한다.

남편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동안에는 그 권위가 보장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집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위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권력은 그동안 소통을 통해 신임을 쌓아온 아내에게 이양되기 시작한다. 아내뿐 아니라 자식 중에도 내 편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남편의 운명은 아내에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원병을 예방하기 위한 부부 공생(共生)이 필요하다. 은퇴 후에, 부원병 생기지 않게 마누라에게 잘해 주어야 한다. 남편도 부엌에서 앞치마 두르고 밥과 설거지도 하고, 빨래, 청소도 하고, 분리수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가정이 평안하려면 남녀가 어느 정도 가사분담을 해야 한다. 부엌 앞치마가 기적을 만든다.

그러면 완벽한 아내도 완벽한 남편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부부간의 균형이 중요하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이 최선의 치료기법이다 그러나 아내(Wife)에게 순종하면 삶(Life)이 즐겁지만, 아내 말을 거스르면 칼(Knife)을 맞는다는 최근 담을 상기하자.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