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세치의 혓바닥으로 천지의 조화를 깨뜨릴 수도 있어
시청앞/ 세치의 혓바닥으로 천지의 조화를 깨뜨릴 수도 있어
  • 정칠석
  • 승인 2020.12.1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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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有一念而犯鬼神之禁(유일념범귀신지금)하며 一言而傷天地之和(일언이상천지지화)하며 一事而釀子孫之禍(일사이양자손지화)하나니 最宜切戒(최의절계)니라.

이 말은 ‘한 가지의 생각으로 하늘의 계율을 범하게 되고 한 마디의 말로 천지의 조화를 깨뜨리며 한 가지의 일로 자손의 불행을 빚는 수가 있다. 깊이 경계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이다.

생각과 말과 일이 서로가 연계돼 있다. 생각 없는 말이 있을 수 없고 말없이 어떤 일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일은 시시각각으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은 나름대로의 갖가지 말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세치의 혓바닥으로 다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우리의 옛말이 있다. 말은 그만큼 어렵고 무거운 것이다. 말은 그것이 내뱉어졌다는 사실만으로 경우에 따라선 정신적인 사슬이 되고도 남는다.

사불급설(駟不及舌)이란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빠른 마차라도 혀의 빠른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말은 한 번 하면 빨리 퍼지고 또 취소하기도 어려운 만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말뿐이 아니다. 말도 그렇지만 생각 또한 신중해야 한다. 신중한 생각에서 신중한 말이 나오고 신중한 행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은 입보다 크게 말한다는 영국의 격언도 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상황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흐를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싶다.

작금에 들어 월성1호기 관련 자료 444개를 삭제한 혐의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이 구속되자, 집권여당의 한 중진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감사원·검찰의 행태에 법원까지 힘을 실어준 데 대해 참으로 유감”이라며 “사법권 남용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원을 비판했다.

또한 “대통령 공약까지 사법적 대상으로 삼는 이 상황에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고 했다. 집권여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정책적 사안을 정치적 수단으로 삼아 검찰개혁 저지의 지렛대로 쓰고자 한 명백한 검찰권 남용”이라며 “표적·정치 수사”라고 몰아세웠다.

이번에 구속된 공무원은 자료 삭제를 지시하고 이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감사원이 검찰에 보낸 ‘수사 참고자료’에 이들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고 한다. 또한 구속된 이들은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지난해 11월 주말 밤에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자료 444건을 지웠다고 한다.

이처럼 공무원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공문서 조작·폐기 범죄행위를 색출하는 건 사법당국의 당연한 책무이다. 집권당이 감사원과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적 의도로 덧칠하는 건 이것이야말로 억지이자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사법부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아무리 정치적 이해에 민감하다 손치더라도 여야를 막론하고 지킬 선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힘이 센 자가 인내를 말할 때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협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