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중용을 실천하지 않으면 대혼란 부를 수 있어
시청앞/ 중용을 실천하지 않으면 대혼란 부를 수 있어
  • 정칠석
  • 승인 2021.01.1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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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정칠석 기자] 子曰(자왈) 道其不行矣夫(도기불행의부)인저. 我知之矣(아지지의)로다. 知者過之(지자과지)하며 愚者不及也(우자불급야)니라.

이 말은 中庸(중용)에 나오는 말로서 ‘공자가 말하기를 도가 진정 행해지지 않는구나.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며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이다.

道(도)는 性(성)을 따르는 것이다. 또한 中庸(중용)의 道(도)이다. 중용은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 어디에나 있다. 중용의 용에 이미 平常(평상)의 뜻이 있듯이 중용은 무슨 고매하고 원대한 곳에 있는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매일 먹고 마시면서 그 맛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드문 것과 같이 중용의 도를 깨우치고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어 도가 행해지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공자는 앞에서 중용의 도를 제대로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드물게 된 지가 오래임을 탄식했고 여기서도 중용의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탄식했다. 또한 論語(논어)에도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탄식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잘난 자는 너무 지나치고 못난 자는 너무 모자라서 중용을 실천하지 못해 혼란으로 치닫는 세상을 탄식했다. 즉 우리가 늘 마주치고 처리하는 일상의 만사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로운 자는 너무 지혜를 믿고 추구하는 까닭에 그저 고매하고 원대한 곳에서 중용을 찾으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은 너무 쉽고 단조로운 것이라고 생각해 마냥 이론적으로만 중용을 따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사고와 이론에 치우친 나머지 현상과 실천을 등한시 여기는 지식인의 폐단을 많이 본다. 중용의 도가 행해지기 어려운 것이다.

작금에 들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법이 공포도 되기 전에 거대여당이 개정 필요성을 제기해 우리를 의아해 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번 본회의 통과한 법안 가운데 파장을 가늠하기 어려운 졸속 법안이 한둘이 아니라는 데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이 집권여당에 180여석을 밀어준 것은 이렇게 졸속으로 마음대로 법을 제정하라고 표를 준 것이 결코 아니다. 야당에 발목 잡히지 말고 소신껏 책임정치를 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작금의 현 상황은 국민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산재는 법 강화만으로만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실제 지난해부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됐지만 산재 사망자 감소율은 고작 1%에 그친 것이 증명하고 있다. 법 강화보다 실제 산재를 줄일 수 있는 현실을 반영한 정교한 규제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급선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