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 3·26 뚝섬만세운동 기리는 ‘기념비’ 건립
성동구, 3·26 뚝섬만세운동 기리는 ‘기념비’ 건립
  • 이승열
  • 승인 2021.03.0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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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뚝섬만세운동 기념비 건립 행사’ 개최… 1919년 3월 민초들이 들고 일어난 역사적 사실 재조명
뚝섬만세운동 기념비
뚝섬만세운동 기념비

[시정일보 이승열 기자] 성동구(구청장 정원오)는 1일 삼일절을 맞아, 오후 2시 성수동 뚝섬문화공원(트리마제 앞 소공원)에서 ‘뚝섬만세운동 기념비 건립 행사’를 개최한다. 

구는 1919년 3월26일 뚝섬 일대에 있었던 뚝섬만세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고 만세운동의 정신을 계승해 후대와 함께 기억하기 위해, 성동구만의 특색있는 기념비 건립 사업을 추진해 왔다. 

기념비는 설치미술가 배수영 작가가 디자인하고 성동역사문화연구회의 자문을 거쳐 문구를 삽입했다. 문구는 “1919年 3月, 뚝도리의 민중들이 이곳에서 자주독립의 함성을 울리다. 님들이 있어 우리이 민주주의, 독립국가는 현실이 되어갔습니다. 님들의 용기와 희생,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내용이다.   

뚝섬만세운동 기념비 건립은 지난 2013년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으로 진행된 ‘성동지역 근현대사 찾기 사업’에서부터 시작됐다. 

구는 당시 성동역사문화연구회와 함께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 주민으로부터 뚝섬에서 일어난 3·1 만세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뚝섬에 우체국 관사, 지주집 등 많은 일제강점기 당시 사료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성동역사문화연구회는 뚝섬만세운동의 자취를 찾고자 독립유공자 후손을 만나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2016년 <뚝섬길 가득 채운 3월 함성 뚝섬 삼일운동>이라는 자료집을 발간했다.

뚝섬만세운동은 민족대표나 학생층으로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의 주체가 노동자 계층 등으로 바뀌어 가며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1919년 당시 경기 고양군 뚝도면은 14개 동리로 구성돼 있었다. 지금의 광진, 잠실, 면목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이었으며, 성수동 지역이 바로 면사무소 소재지로 뚝도면의 중심가였다. 뚝섬 일대는 서울시민을 위한 땔감의 양륙지로, 뚝섬 주민 대부분이 뗏목에 실려 온 땔감을 싣고 내리거나 달구지 또는 지게로 땔감을 옮기는 일에 종사했다. 이 때문에 뚝섬만세운동의 주도층은 우마차꾼, 지게꾼, 달구지꾼, 짐꾼 등 민초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남은 기록에 의하면 뚝섬 지역의 만세운동은 3월12일과 26일 두 차례 벌어졌다. 첫 번째는 둑도간이농업학교와 둑도공립보통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두 번째 운동이 있기 며칠 전부터 만세운동 관련 유인물이 곳곳에 뿌려진 것으로 보아 두 번째 운동은 조직적으로 준비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인물을 보고 모인 민중들은 26일, 수탈과 탄압의 중심지인 면사무소와 헌병주재소를 포위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전개했고, 시위 끝에 헌병대측과 교섭으로 해산하려던 중 증파된 일본 헌병 15명의 무차별 발포로 1명 사망, 12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103명이 체포됐다. 이날 만세운동으로 일본측 헌병 오장 1명, 상등병 2명, 일본인 소방수 3명이 부상을 입었을 정도로 고양군에서 일어난 시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격렬한 시위였다고 한다.

정원오 구청장은 “이번에 건립된 뚝섬만세운동 기념비는 앞으로 초·중·고등학생 등 청소년들에게 역사적 교육자료로 활용될 것”이라며 “우리 이웃들이 서로서로 힘을 합쳐 일어난 뚝섬만세운동의 정신이 후대와 함께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