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돌아온 임숙임 에세이 '칠월의 사치'
4년 만에 돌아온 임숙임 에세이 '칠월의 사치'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1.03.1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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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문학적 풍미 가득...추억의 퍼즐을 맞춘 듯한 향수의 미학
임숙임 에세이 '칠월의 사치'

 

임숙임 작가
임숙임 작가

[시정일보]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수필을 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우선 수필은 단순한 기성의 언어로 얼개를 짠 글이 아니다. 수필은 지은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사실을 자신의 사상과 감정으로 진솔하게 그려내는 글월이다. 그러니까 시나 소설이나 희곡처럼 의도적으로 탁마되고 정선되어 이루어진 조직적인 글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필이란 일상의 언어로써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그려내는 글월이기 때문이다. 글은 쓰면 쓸수록 더 좋은 글이 써지게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일 때 그것을 재빨리 잡아두어야 한다. 그러나 떠오르는 글상을 접어두고 다른 생각을 하다가는 글의 상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의 마음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면 퍼낸 만큼 새로운 물이 솟아나게 된다. 오래도록 퍼내지 않은 우물은 썩거나 말라 버리고 만다. 그래서 생각을 가다듬어 읽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글을 쓰면 훌륭한 수필가가 될 수 있다. 바로 수필가 임숙임의 사례다.

수필가 임숙임은 전남 무안군 일로읍 중촌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고교 졸업 이후에는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전업주부다. 그녀는 오직 문학의 길을 탐색하며 한평생 글쓰기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는 여고시절부터 문학소녀의 꿈을 다듬어 왔다. 2015년에는 <문학 에스프리>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그리고 한국문인협회 서울 금천구지부에서 꾸준한 문학 활동을 하면서 처녀 수필집 <해문리 그 집>을 발간하면서 중견 작가로서 금천구 문인들과 상호 교류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의 제2 수필집 <임숙임 에세이, 칠월의 사치>는 3월5일에 등대지기에서 출판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술하고 있다.

‘따스한 바람 속에 봄이라는 낱말이 묻어 다닙니다. 선사시대의 침묵을 뚫고 낮은 길에서는 풀꽃 향이 상큼하게 올라옵니다. 호암산 잣나무 숲의 나무 데크 주변에는 머잖아 별처럼 초롱초롱한 때죽 꽃과 아카시아 꽃이, 자기들의 향기를 기탄없이 뿌려줄 것입니다.

이런 자연의 미덕들은 내게 글을 쓸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준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물을 마시듯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수필의 자리는 아직도 기우뚱거리고 선정(選定)의 자리는 여전히 분주합니다.

에세이 1권을 출간 후 4년 남짓 모은 글들과 더러는 문학지나 계간지 등에 실었던 글들을 포함하였습니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며 써 온 초안들을 열심히 다듬었으나 막상 내어놓으려 하니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누구나 쉽게 그 순수한 문학적 풍미를 음미할 수 있다. 특히 ‘일로 가는 날’, ‘스무 회 친구들’, ‘써레질 논과 란데부하다’ 등은 옛적 추억들의 퍼즐을 맞추듯이 향수를 자아낸다.

대한민국의 문화가 숨을 쉬는, 바나나처럼 굽어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골목길들이, 여러 겹의 삭은 고무줄처럼 잡아당긴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어 도착한 언덕배기에 자리한 정독도서관 교육 박물관 뜰이다. 누군가를 의지해야만 성장하는 등나무처럼 등나무 아래에서 윤향기 교수님께 야외수업을 받는 여고생이 되었다. -「야외수업」 부분

무엇보다 마법에 빠진 것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끼리 쌈짓돈을 모아 그들 중 제일 말 잘하고 똑똑한 아이를 영화관에 들여보낸 후, 그 아이에게 영화 이야기를 듣는단다. 영화를 미치도록 즐긴다는 인도인들의 사상이 그렇게 아이 때부터 몸에 밴 것이 아닐까 싶다. 호기심이 들어앉은 똥그랗고 새까만 눈동자가 떠올라 어깨 올리며 미소 짓게 한다. -「49일간의 동거」 부분

수업은 등단이 목적이기 때문에 진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린 그저 열정을 품고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금천 문화원 문학반에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시인과 수필가가 다섯 명이나 탄생되었다. 교수님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초석이 되고 문우들의 마음은 어떤 장르를 택하든 행복하다. -「문학반을 선택한 이유」 부분

젊고 늙음의 차이는 나이가 아니라고 한다. 한사코 추억에만 의존하지 말고 밝은 미래를 이야기하며 젊은 측에 서 보자. 가소로울지 모르겠지만 패션의 감각도 일깨우고 타인의 개성도 배려하면서 내 가치를 좀 더 품격 있게 만들어 보자. 그러나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실행에 옮기자.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것과 햇볕 친구와 더불어 자주 걷는 것쯤 말이다 - 「시니어라는 말」 부분

시인이자 수필가인 윤향기(전 경기대 교수)는 그녀의 문학반 지도 교수다. 제2수필집에서 다음과 같이 그녀의 작품을 평가하고 있다.

“임숙임은 아마도 옛이야기 듣기를 좋아한 것 같다. 대상의 슬픔을 알아보고 같은 울림으로 위로하며 묵묵히 견뎌낸 끝에 찾아오는 영혼의 결기를 같이 꿈꾸고자 하기 때문이다.

철학적 사유를 개입시키며 서정적으로 서사를 길어 올리는 비상한 재능은 다부지고 옹골차다. 지상의 샹그릴라를 찾으며 꽃과 나무의 언어를 터득한 그의 언어는 격한 감정으로 들썩이지 않아 요란하지 않고 청신한 이미지와 안정되고 균형적인 언어 배열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작가의 이런 사유와 통찰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이면에는 깊게 자리하는 데서 기인한다. 거짓말이 길어지는 세상에서 작가는 바라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초록 인연을 가꾸는 일에 남은 생을 허비할 것만 같다. 모쪼록 한국수필의 커다란 진경을 보여주는 작가로 거듭나기를 희망해 본다.”

시인 윤동주가 사랑했다는 릴케(Rainer Maria Rilke)는 말했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기억들을 만들면서 살아간다. 그 많은 기억들에서 어려운 시간을 이겨낸 기억이 추억.’이라고…. 지은이도 수많은 기억들 가운데 아름다운 추억들을 되살리면서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글월 속에 나타나고 있다.

‘수필’이란 지은이가 겪었던 여러 일 가운데 가장 와 닿는 그 어떤 기억을 회상하면서 느낀 대로 자연스럽게 쓰는 글월이다. 그러나 수필의 생명은 주정적(主情的) 경험의 표현 능력에 따라 문학으로 승화되느냐, 신변잡기가 되고 마느냐로 귀결된다.

문학적인 수필은 형식의 자유로움 속에 반드시 격조 높은 지성과 감성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월이면서도 아무나 쓸 수 없는 글월이다.

문학이 예술이요, 수필이 문학이라면 내용이 아무리 좋고 깊고 오묘한 사상이 들어 있어도 그 나타냄의 능력이 뒤떨어지면 문학이 될 수 없다. 문학은 결국 겉으로 드러내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수필은 원래 앎(知識)이 있는 이들이 썼던 글월이다.

다른 장르의 문학은 대중을 상대로 한 원시예술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수필은 지식인들이 읽는 이에게 깊은 뜻을 사고할 수 있도록 썼던 글월이었다. 이런 사실을 명심하고, 앞으로 더욱 힘쓰고 애쓰면 좋은 수필가가 될 수 있다고 사료된다.

임춘식 논설위원 chsr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