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행정 공무원 ‘보호와 보상’ 확실하게
적극행정 공무원 ‘보호와 보상’ 확실하게
  • 이승열
  • 승인 2021.04.02 17:09
  • 댓글 0

기획특집/ 적극행정 첫 정부포상 ‘변화의 바람’

 

[시정일보 이승열 기자] #1 공무원 A는 관내 시설에 대한 수리 작업을 추진하던 중, 수리에 사용되는 물품의 납품검사 과정에서 정품여부를 확인·점검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존 납품검사조서를 적용해 물품에 이상이 없다는 의견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이후 내부 감사에서 해당 시설이 비정품으로 수리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이를 정품으로 다시 수리해야 했다.

#2 공무원 B는 교육계획을 수립하던 중 교육생에게 줄 기념품 500개 구입을 계획했으나 이후 교육생이 계획보다 늘어나자 100개를 추가로 구입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 계약을 수정하는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추가 100개 분량의 금액은 다른 계약 체결 시 납품가격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벌충해 주기로 업체와 구두약속을 했다. 이후 B는 해당 업체와 추가 계약을 하지 않고 100개에 대한 대금 지급 요구도 계속 회피했다.

#3 공무원 C는 법정민원인 제조업 신고 업무를 담당하던 중, 필요한 서류 미비를 이유로 업체의 신고를 계속 접수하지 않고 지연시켰다. 이후 업체가 감사원에 조사를 요청하자 비로소 민원 접수를 하고 신고증을 발급했지만, 해당 업체는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결국 사업 진행에 차질을 빚게 됐다.

 

성과위주 포상에서 보호와 면책보장 중심으로 변화

무사안일ㆍ복지부동 탈피, 창의적ㆍ전문적 행정혁신

국가공무원법ㆍ지방공무원법에 명확한 근거 마련돼야

업무수행 시 ‘감사ㆍ처벌에 대한 두려움’ 제거 급선무

 

‘Feel the Rhythm of Korea’홍보영상 담당자, 적극행정‘대통령 표창’수상(사진 위 좌측). 강동구 전통시장 아이스팩 재사용 활동 모습(사진 위 우측). 지난해 8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8MW급 파주연료전지발전소 전경(사진 아래).

흔히 하는 우스개로, 공무원이 ‘일이 안 된다’는 의사를 표현할 때 4가지 근거를 댄다고 한다. 바로 △예산이 없다 △규정이 없다 △전례가 없다 △권한이 없다(우리 소관이 아니다) 등이다. 이를 ‘공무원의 4무(無)’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인상이 얼마나 강했는지, 지금까지 일반 국민들의 공무원에 대한 이미지는 무사안일(無事安逸), 복지부동(伏地不動), 철밥통 등의 단어로 요약돼 왔다.

한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새싹기업(스타트업) 운영자들이 공무원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본 답변은 △법과 지침 때문에 안 됩니다 △저희 소관 업무가 아닙니다 △전례가 없습니다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습니다 △제가 온 지 얼마 안 돼서요 순이었다. 공무원을 ‘백태클’, ‘통곡의 벽’, ‘허들’ 등으로 비유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같은 사례는 모두 공무원의 소극행정을 비꼬는 것들이다. 소극행정은 공무원이 부작위 또는 직무태만 등 소극적 업무행태로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거나 국가 재정상 손실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부작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직무태만은 ‘일을 게으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 같은 소극행정 문화를 개혁하기 위해 현재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이 ‘적극행정’이다.

적극행정은 무엇일까? 정부의 <적극행정 운영규정>에서는 적극행정을 “공무원이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감사원의 <적극행정 면책 등 감사소명제도의 운영에 관한 규칙>에서는 적극행정을 “감사원 감사를 받는 자가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거나 공익사업을 추진하는 등 공공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라고 하고 있다.

적극행정의 개념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창의성, 전문성, 적극성 등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포함된다. 창의성은 새로운 개념이나 방법을 찾아내는 것으로, 문제를 참신하게 해결하는 원동력이 된다. 전문성은 직무와 관련해 축적된 지식과 경험 및 역량으로, 적절한 해결방안 모색과 창의적 아이디어 실현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적극성은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노력이나 주의 의무 이상을 기울여 업무를 처리하는 특성을 말한다. 최대한 가능한 방법을 찾아 노력하는 자세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2016년부터 매년 <적극행정 사례집>을 발간하고 있는데, <2020 적극행정 사례집>은 이 같은 적극행정의 특성에 따른 대표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어르신 무단횡단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횡단보도 옆 장수의자를 고안한 남양주경찰서 별내파출소 유창훈 경감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적극행정의 대표사례다. 관세청 김평원 주무관은 관세법에 대한 적극적인 재해석을 통해 해외직구 시 관세 환급 절차를 간소화했다.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적극행정 사례다. 경기도 양주시 김지엽 주무관은 테크노밸리 유치를 위해 군사보호구역 해제를 위한 협의를 적극적으로 추진, 유치에 성공했다. 적극행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적극성이 돋보인 사례다.

적극행정 지원 정책은 과거 정부에서도 꾸준히 추진해 왔지만 대체로 성과 위주의 포상에 그쳐왔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다. 그러나 공무원의 적극행정에 대한 보호와 그에 따른 면책이 활성화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에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공무원에 대한 포상에 더해, 적극행정에 대한 보호와 면책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 힘써 왔다. 아울러, 소극행정에 대한 징계도 강화하는 추세다.

특히, 2019년은 적극행정 제도화의 원년이라고 할 만하다. 정부는 2019년 8월, 적극행정에 관한 분산된 제도를 종합해 <적극행정 운영규정>을 마련하고 적극행정 공무원을 보호·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관계기관 합동 적극행정 추진방안이 발표되고, 45개 행정기관에 적극행정위원회가 처음으로 설치된 것도 2019년이다.

현재 적극행정과 관련된 법령은 대통령령인 <적극행정 운영규정>과 <지방공무원 적극행정 운영규정>이 있고, 그 외 감사원규칙으로 <적극행정면책 등 감사소명제도의 운영에 관한 규칙>이 있다. 국가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적극행정 운영규정>은 △적극행정의 정의 △전담부서 지정 △적극행정지원위원회의 설치 △인사상 우대조치 △징계요구 면책과 징계 면제 △적극행정 추진공무원의 지원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지방공무원을 적용대상으로 하는 <지방공무원 적극행정 운영규정>도 비슷하다. <적극행정면책 등 감사소명제도의 운영에 관한 규칙>은 <감사원법>에서 규정하는 적극행정면책을 위한 구체적인 적용기준과 운영에 필요한 절차를 정하고 있다.

현재 정부의 적극행정 지원은 △의사결정 지원 △소극행정 근절 △적극행정 보호 △적극행정 보상이라는 4가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먼저 의사결정 지원은 △적극행정위원회의 의견제시 △사전컨설팅 등 두 가지가 핵심이다. ‘적극행정위원회의 의견제시’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두는 적극행정위원회의 의견대로 업무를 처리하면 자체감사 시 징계요구가 면책되는 것이 그 내용이다.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는 경우에도 적극행정위원회가 감사원에 적극행정 공무원에 대한 면책을 건의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비대면 치료(전화 상담·처방) 한시적 허용, 식약처의 마스크 소분 판매 허용, 교육부의 모든 학원 영상수업 허용 등의 사례가 적극행정위원회를 거친 대표적인 사례다.

사전컨설팅은 적극행정 추진과정에서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감사기관에 업무의 적법성·타당성 등에 대한 검토를 요구하면 감사기관이 그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제도이다. 컨설팅 의견대로 처리하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면제함으로써 공무원의 불안감을 해소해 적극행정을 유도한다.

소극행정 근절을 위해서 정부는 소극행정 사례집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또, 표준설명서식을 마련해, 인허가를 거부하는 경우 민원인에게 법적근거, 답변사유, 권리구제절차 등을 명확히 설명하도록 하고 있다. 기관별 자체점검, 정부 특별점검 등을 통해 소극행정 행태에 대한 단속과 소극행정 공무원에 대한 징계도 강화했다. 아울러, 소극행정으로 징계를 받은 경우 타 직위 전보, 성과평가·승진 시 불이익 등 인사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적극행정에 대한 보호도 강화하고 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한 경우,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한 경우, 사적인 이해관계 또는 중대한 절차상 하자 등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징계·문책·주의 요구를 하지 않는 등 책임을 면제·경감해 주는 ‘적극행정 면책·감경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또, <적극행정 운영규정>은 국민생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사항, 이해관계자 사이의 갈등이 높은 사항은 기관장이 직접 결정해야 하고 위임해서는 안 되도록 함으로써 하급자의 정책결정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에서는 국정과제 등 고도의 정책사항의 경우 실무직(담당자)을 징계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적극행정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는, 적극행정 우수공무원의 성과에 대해 반드시 칭찬하는 적극행정 평가·우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적극행정으로 업무를 추진해 성과를 창출한 공무원, 창의적·도전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성과 달성을 위해 노력한 공무원, 그 밖에 적극적인 태도로 소속 공무원에게 모범이 되는 공무원이 대상이다. 또, 적극행정 공무원과 기관에 대해서는 정부포상과 시상, 인사상 인센티브 제공, 기관평가 시 가점 부여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적극행정 유공 포상자에 대한 시상을 처음으로 실시했다. 적극행정을 통해 모범적 성과를 거둔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공공기관 및 지방 공사·공단 직원 30명을 ‘제1회 적극행정 유공 포상자’로 선정한 것. 훈장 4명, 포장 6명, 대통령표창 8명, 국무총리표창 12명을 각각 시상했다.

이 밖에, 적극행정에 관한 교육도 확대하고 있다. 예컨대,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은 3월29일부터 적극행정 우수 공무원의 활약상을 담은 온라인 학습자료를 나라배움터에 매월 2편씩 정기적으로 연재한다. 이를 통해 적극행정 문화가 공직사회 전반에 확산하는 데 일조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앞으로 적극행정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점도 지적된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적극행정의 주요 내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는 △적극행정의 명확한 개념과 법규의 체계적 정립 △사전컨설팅의 적용 범위와 그 면책기준에 대한 보다 명확한 규정 마련 △적극행정 면책 실효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기준과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제안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박영원 팀장(행정학박사)은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에 적극행정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극행정 공무원에 대한 인사상 우대 및 징계 면제 등의 내용을 담은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또, 박 팀장은 “사전컨설팅과 면책제도에 대한 더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특히 공무원의 업무 수행에 있어 감사·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승열 기자 / sijung19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