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담 '어머니의 숨소리'
김기담 '어머니의 숨소리'
  • 김응구
  • 승인 2021.05.20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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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기 국보문학 수필 부문 신인상 수상작

[시정일보] 어머니의 정과 사랑은 한이 없다.

황혼이 짙게 깔린 후에야 내 곁에는 고향의 향기 속에 어머니의 은혜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햇빛과 바람 속에서 바다가 부른 자장가에 졸며 떠있는 작은 섬이 내 고향이다. 전남 신안군 지도와 임자도 사이에 수도라는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하늬바람과 마파람을 이용하여 하루에 한 번씩 왕래하는 나릇 뱃길이 유일한 육지로의 교통수단이었다. 태풍이 불거나 나릇 배 운행시간을 놓치면, 꼼짝없이 집에 가는 일은 다음날이 될 수밖에 없는 오지 섬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마다 “넓고 큰 육지도 많은데 하필이면 섬 아이로 태어났나”하며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고향은 많은 추억을 품게 했다.

하얀 돛에 실린 바람에 나룻배가 떠 갈 때면 한 마리의 갈매기가 되어 푸른 창공에 많은 꿈들을 그리며 자랐다. 바다 중간쯤 떠갈 때느 까르록 까르록 숯 민어들이 암 민어 짝을 찾는 사랑의 세레나데도 가득했다. 그뿐이겠는가. 어머니는 아들 손주들에게 주고 싶은 ‘사랑’이란 표현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짜랑, 짜랑, 내 짜랑’ 덩실덩실 춤을 추며 행복해 하셨다. 그 날부터 손주들의 애칭도 ‘짜리’가 되어, 지금도 어머니의 숨소리로 불러지고 있다. 삶의 언저리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고달픈 삶에 후회도 없이 자식 사랑과 가정 지키기가 전부이셨다.

나는 어머니가 바다에 갇힌 섬에 살면서도 해보고 싶은 일도 자신을 위한 꿈도 없이, 오직 자식 하나 잘되기만 욕심부린다고 생각했다.

작은 섬에는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향기로 가득하다.

어머니는 삼십 대 초반에 홀로 되시었다. 글방 훈도이셨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형과 누나마저 가슴에 묻고, 나머지 아들 사형제를 책임지시는 가장이 되었다.

세상은 모두가 보릿고개 가난에 시달려 배불리 밥을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었다. 오직하면 산과 들에 풀 나물들이나 바다의 조개 및 생선이 주식이 되었겠는가….

나는 대나무 낚싯대에 수수깡으로 찌를 만들어 갯벌에 나가 망둥이를 잡곤 했다.

어머니는 기뻐하며 부뚜막에 막걸리와 누룩으로 발효시킨 식초에 풋고추를 넣고 참깨 소금을 뿌려 망둥이 회를 만들어 주셨다. 그 달콤 새큼 씹히는 맛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최고 손맛으로 남아 있다.

어느 날 아침밥은 풀 나물에다가 보릿가루를 넣고 죽을 끄려 때우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너무나 풀 나물죽이 먹기 싫어서, “배가 고프지 않다”면서 수저를 놓고 일어났다. 어머니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잠시 후에 어머니는 비상식량으로 아껴놓았던 보리쌀로 밥을 짓고 부엌문 옆쪽에 걸려있는 보리굴비 한 마리를 화로불에 구어 살 고기를 발려 주셨다. “아이구! 내 새끼 어서 먹어라, 그렇게 풀 나물죽이 먹기 싫었어, 엄마가 가난해서 미안하다.” 하면서, 어머니는 굴비머리 부분만을 드셨다. 몸통 부분을 드시도록 했지만 듣지 않으셨다. “아니다. 어두일미란 말이 있듯이 나는 몸통 보다 머리 부분이 더 맛있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픔도 슬픔도 없이 먹고 싶은 음식도, 맛있는 고기도 모르고 아무거나 잘 드신 줄 알았다.

새끼 새는 어미 새의 둥우리 안에서는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는 글을 읽고 쓸 줄도 몰랐지만, 품안 안에 있는 자식들을 위해 정과 사랑을 다하셔 곱게 성장토록 했다. 나에게 송아지를 길러 상급학교 갈 수 있는 종자돈을 마련케 해서 미래를 꿈꾸게 해 주셨다.

겨울밤이면 등잔불 속에 “물레야 돌아라, 물레야 돌아라” 고달픈 삶을 노래로 풀며 실을 뽑아서 낮에는 배틀 위에 올라 무명 배를 짰다. 그 무명 배는 검은색으로 염색해서 바지저고리를 만들어 입게 해주셨다. 그뿐만 아니다.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삶의 냄새가 밴 몸뻬 옷을 입고, 광주리에 생선을 이고 다니면서 행상도 하셨다.

생선이 다 팔리지 않는 날에는 서글프게 누워있는 생선 눈을 보고 무슨 사연을 이야기하셨을까? 보리 고개 가난을 넘기기 위해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한숨으로 아파하셨을 런지…. 나는 어머니가 좋은 옷 입을 줄도, 고은 화장품 사용하실 줄도,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줄 알았다.

어머니의 따스한 숨소리가 가슴 속 촉촉이 들려온다.

어머니는 83세에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나셨지만, 자식들에게 주는 사랑은 삶의 고비마다 자양분이 되었고, 희망과 용기를 갖게 했다.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가 “먹고 싶은 음식도, 갖고 싶은 물건도, 해보고 싶은 꿈도 없는 사람, 아픔과 슬픔도 모른 사람”인줄 알았다. 어머니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불효한 자식이었다.

철늦은 후회로 어머니를 다시 뵙고 어리광을 부려보고 싶지만, 어머니는 소리 없이 닥아 와 미소만 짓고 계신다.

 

<김기담 프로필>

경기 안산시 거주
월간 국보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
연세대학교 미래교육원 수필창작 수학
연세에세이클럽 정회원
사단법인 한국국보문인협회 정회원
사단법인 평화철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