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꽁보리밥부터 평준화까지
기고/ 꽁보리밥부터 평준화까지
  • 서정규 내부통제연구소 대표
  • 승인 2021.06.0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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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규 내부통제연구소 대표, CIA
서정규 대표
서정규 내부통제연구소 대표

[시정일보] 꽁보리 속에는 6·25 동란 후 폐허된 산하에서 너도 나도 함께 못살던 보릿고개 시절의 아련함이 배어 있다. 배가 고파 송구를 벗겨먹고 피비를 까먹으며 자란 시절. 쑥을 캐서 밀가루에 버무려서 먹었는데, 밀가루는 어디 숨고 쑥만 유달리 만져지는고? 그 시절 꽁보리밥은 비록 쌀밥보다는 못했지만 민초들의 힘을 살려주는 보약 같은 주식(主食)이었다.

한해 농사를 지어 가을 추수를 하면 소작료, 농지세 등 생활에 필요한 제반 경비를 고려해 본다. 아무리 따져봐도 내년 보리 추수 때까지 쌀밥으로는 식량을 다 댈 수가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 진다. 할 수 없이 쌀과 보리를 교환하여 보리 양식을 댄다. 그래도 다음해 5월경이 되면 그 피같은 보리 양식이 떨어지게 된다. 이런 사연이 보리 추수전 배가 고픈 보릿고개 사연이다. 

그 시절 가난한 부모님의 꿈은 내 자식만은 잘 돼야지. 때로는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줄 알지만 공부 잘하는 자식을 대견해 하시던 보릿고개 부모세대. 나는 비록 못 배웠지만 내 자식은 반드시 대학교를 보내야지.

그래도 그 때는 일류학교가 있었고,  비록 깡촌 시골 촌놈이라도 일류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로 가난한 세파를 이겨나가는 개천의 용들이 많았었다. 그런 기개가 조선 천지를 호령하여 세계가 칭송하는 한강 기적의 밑거름이 되었다. 세계 수학경시대회의 1등은 홍익인간 후손들의 따 놓은 당상이었었다. 

세월은 그런 사연을 묻어두고서 고교평준화 시책 속에 흐르고도 흘렀다. 평등 이데올로기가 출산한 평준화 정책, 과연 그 결과는 진짜로 평등한가?  50 여년 세월 속에 사라진 건 세계 수학경시대회 1등이고, 실력과 전통으로 역사를 일구던 명실상부한 전국의 일류고등학교들이다. 그때는 일류든 이류든 의식이 자리 잡던 고교시절의 우정도 패기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는 평생 동안 절친으로 지낸다.

세계 유수한 국가 수도의 일류고등학교들은 지금도 역사와 전통 그리고 실력으로 자국내외 세계적 수재급 학생들을 뽑아서 발군의 인재로 다듬어서 역사를 창조하는 역군으로 내보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런 고등학교가 없다. 우리 스스로 평등 평등 하면서 걷어찬 결과이다. 교명은 바꿀 수 없어 그대로 있지만 학생 선발을 추첨으로 하니, 학생들의 평균 지식수준이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떨어진 지식수준으로는 세계 유수의 일류고등학교를 따라 갈 수가 없는 법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라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평준화 이후의 고등학교는 과연 평등한 학교인가? 50여 년 전에는 일류와 이류 학교만의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학교 대신 일류와 이류 학군의 차이가 새롭게 자리 잡았다. 학생만의 일류 이류가 부모와 학생이 떼를 지은 일류 이류개념으로 변했고, 그 차이의 정도가 매우 심해졌다. 

학생의 공부실력은 고액과외로 불평등해졌고,  그 불평등은 부모의 재력에 연유한다. 그도 모자라 조부모의 재력도 한 몫을 한다. 과연 그 불평등이 학업에만 한정할까?

어떤 좀 덜 떨어진 작자는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으니 그냥 그 곳에서 가붕개(가재, 붕어와 개구리)로 살아라고 조롱하고서도 부끄러운 줄은 모른다. 그래 놓고선 정작 자신의 가붕개 같은 자식들을 용으로 만들기 위하여 각종 불공정 행위를 저질렀음이 뒤늦게 발각되었다. 그 불공정 행위가 탄로 나니 이번에는 아니라고, 가족이 떼를 지어서 박박 우긴다. 바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한에 다름 아니다.

수오지심의지본야(羞惡之心義之本也) 부끄러움을 알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것이 의로움의 첫걸음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그 얼굴에 뚫린 입으로 정의(正義)를 덜 먹인다.

소위 서울 강남 8학군의 천정부지 아파트 값 광풍은 내 자식 일류대학 보내기 부모의 작심이 만들어낸 심리전 결과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 했던가, 고교 3년만 8학군에서 고생하면 일류대학이 보이는데 어찌 아파트값이 아까우랴? 그런 세태를 반영하여 아파트 전세 값이 매매가와 비등하고, 어떤 경우는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다. 이게 바로 학군별 불평등의 현주소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더니 고등학교 친구는 수능시험에서 내 등수를 가로채는 경쟁자로 인식된 지 오래이다. 지성과 야망을 불태우며 우정을 키우던 고교 3년, 이제는 우정과 기개의 동산은 간데없고 시험기계 양산 장소로만 전락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고교학군 불평등의 본질은 가만히 제쳐 두고 세금과 대출만으로 변죽을 울리니, 정부의 주택정책이 나올 때마다 억억하며 아파트 값이 춤을 춘다. 세금을 올리니 아파트 주인이 그 오른 만큼 전세금과 월세를 올린다. 올릴 뿐만 아니라 전세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하거나 아예 전액 월세로 돌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보고 청년 들은 자신의 미래가 암담하다고 여긴다. 2017~2021 년간에 급등한 아파트 가격을 보고 아예 자신은 미래에 집을 살수가 없다고 절망한다.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는 이 시대 청년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하는 언어이다. 이에 대하여 부모세대는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유, 숨차하며 넘던 부모세대의 보릿고개가, 억 억 숨차하며 넘는 부모와 자식세대 모두의 불평등고개로 문패와 번지수를 갈아 달았다. 이 시대 누가 있어 이런 집단적 불평등을 해결할 것인가? 우리는 그 답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런 총중에도 On-line & Off-line 광장에는 나의 고수(高手)만은 모르겠지 하면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내로남불이 판을 친다. 그것도 주택정책을 주무르는 손과 세금정책을 법률로 만드는 머리가 그런 고수 작태를 저지른다. 아예 할 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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