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 지방혐오
기자수첩 / 지방혐오
  • 이승열
  • 승인 2021.09.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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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 기자 sijung1988@naver.com
이승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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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이승열 기자] 최근 한 지역신문에 매우 주목되는 기사가 떴다. 부산일보가 지난 8월22일부터 연재하고 있는 ‘2021 지방혐오 리포트’다.

신문은 온라인 상의 지방혐오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간, 부산, 광주, 대구, 경상도, 전라도, 서울 등 6개 키워드를 포함한 기사에 달린 댓글을 수집·분석했다. 그 결과, 전라도·광주, 경상도·부산·대구와 관련한 혐오표현이 다수 확인됐다.

지역에 대한 고정관념과 서울·수도권 중심주의가 낳은 혐오표현도 문제로 지적됐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상도 사람은 성미가 불같다, 전라도 사람은 믿을 수 없다, 충청도 사람은 매사에 느긋하다, 강원도 사람은 세상물정 모르고 촌스럽다 같은 편견에 기반한 차별언어를 경험한 비율이 높았다. 서울 중심주의는 “너희 동네에 ○○ 있냐”라는 말로 요약됐다. ○○에는 스타벅스, 백화점, 영화관, 지하철, 심지어는 도서관·가로등 같은 기반시설도 포함됐다.

애초 이 같은 지방혐오표현은 우리 현대사에서 계속돼 온 전라도에 대한 차별에서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부경대 차재권 교수는 이 기사가 인용한 발언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경부축의 정치 엘리트들은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전라도민을 규정하고 혐오하는 허구적 의식을 만들어 냈다”고 했다. 이후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경상도에 대한 혐오표현도 확대되면서 전라도와 경상도가 서로를 헐뜯는 갈등이 이어졌다.

기사는 지금의 지방혐오 양상이 과거 영호남의 지역갈등과 다르게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지방에 대한 서울과 수도권의 차별이다. 비수도권 도시들의 개성을 모조리 박탈하고 ‘지방’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시골’이나 ‘촌’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에 대한 혐오표현은 이제 동서갈등의 수단이 아니라 서울에서 그 지역 사람을 바라보는 편견으로 고착됐다. 사투리는 놀림거리이거나 고쳐야 할 단점이 됐고, 지역민의 생활공간은 비하 또는 대상화되고 있다.

문제는 지방이 서울과 수도권에 대해 계속적으로 ‘소수자化’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인권위의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보고서>(2019)를 보면, 혐오표현은 “어떤 개인·집단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혐오하거나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며 “차별을 받아온 사회적 소수자 집단에 관한 기존의 차별의식을 정당화하거나 조장·강화하고 그 집단에 대한 차별을 더 공고히 한다”고 한다. 현실은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서울·인천·경기에 절반이 넘는 인구가 모여살고, 지역총생산 비중도 50%를 훌쩍 넘는다. 결국 해답은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