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정칼럼/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시정일보
  • 승인 2021.09.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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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행복한 노년은 무엇인가? 사람답게 늙고 결국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답게 죽는 것으로 마치는 삶이다. 사람답게 늙고 행복하게 늙기 위해서는 먼저 노년의 품격을 지녀야 한다. 노년의 품격은 풍부한 경륜을 바탕으로 노숙함과 노련함을 갖추는 일이다.

최고의 노후는 우리가 무엇을 꿈꾸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사람답게 살고(웰에이징, wellaging)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노년을 우리는 웰빙이라고 말한다.

웰빙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인품이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웰빙은 육체적인 강건함보다 정신적인 풍요와 여유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자함과 포근함이 묻어나는 한, 그리하여 사랑과 용서의 미덕으로 넘쳐나는 한, 노년 노후는 일반(심신을 혹사시키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웰빙의 시기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노는 것만으로는 웰빙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정신과 인품이 무르익어가는 노년이야말로 인생의 최고봉이자 웰빙의 최적기다. 사람답게 죽자.(웰다잉, welldying) 노년의 삶은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만큼 살았으니 당장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경박한 태도는 더욱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이 오늘이라도 찾아오면 힘을 다해 죽을 것’이라고 했다. 죽음을 삶의 연장선상에서 경건하게 생각한 것이다. 사람답게 죽기 위해 ‘진격’보다는 ‘철수’를 준비해야 한다. 물러설 때를 늘 염두에 두며 살아야 한다.

어쨌든 사람이 사람답게 늙고 사람답게 살고 사람답게 죽는 것이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도 아주 멋지게 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잘 준비하고 준비된 것에 최선을 다하여 열정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늙고 죽어야 할까? 노년을 아름답게 보낼 방법이 없을까? 이 문제는 현재 노인들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에게도 곧 닥쳐오는 것이기에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인 됨은 특별한 축복이다. 세월의 덧없음을 안타까워할 것이 아니라 늙음을 받아들이고 그 축복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자에게는 노년은 여유롭다. 인생을 관조할 수 있으며 베풀며 삶을 즐길 수 있다. 늙고 싶지 않은 분수 없는 욕망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심신이 건강해야 한다. 건강을 잃고 아름다운 노년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실천하는 자와 실천하지 않은 자의 차이라고 한다. 나의 건강은 나의 실천 여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인생을 즐기자. 오래 살 것처럼 행동하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걷지 못할 때까지 기다리다 가는 길은 돈이 필요 없다. 인생을 후회하지 말고 몸이 허락하는 한, 가 보고 싶은 곳을 가고 싶다.

꿈이 있는 한, 나이는 없다. 가난하든 부자든 권력이 있든 없든 사람은 누구나 늙고 아프고 병들고 죽는다. 기회 있을 때마다 옛 동창, 옛 동료, 옛 이성 친구를 만나고 싶다.

집에 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니다. 돈은 쓸 때 비로소 돈이며 죽기 전에 쓸 수 있는 돈만이 내 돈이다. 나이 들어 쓰는 돈은 절대 낭비가 아니더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늙어가면서 스스로 자신을 잘 대접하는 것이다.

사고 싶은 것 있으면 꼭 사고 즐길 거리 있으면 꼭 즐겨라. 그리고 사귀고 싶어 눈도장 찍은 사람 있으면 작업 걸어 연애도 해라. 바로 나 자신에게 간구하노라.

병들더라도 겁먹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아닌가.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목숨은 하늘에 맡기고 마음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자신이 자신을 최고로 여기고 자신을 대접하며 살다가 생로병사에 순응하는 삶이 바로 노후의 행복이다.

나이 들어 쓰는 돈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아껴야 할 것은 노년의 시간이고 노년의 생각이고 노년의 건강이다. 돈과 사랑이 남아 있다면 아끼지 말고 베풀어라. ‘자신이 자신을 최고로 대접하며 살아야 행복해진다.’라고 나에게 주문한다.

나는 위대한 성인처럼 가치 있고 유익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은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도 허용되지 못한 채 쫓기는 삶을 살다 어언 황혼기를 맞게 되었다.

인간 수명 100세 시대에 도래한 오늘, 나이별 이칭을 보면 공자가 학문의 뜻을 두었던 나이 열다섯 ‘지학’, 성인이 돼 갓을 쓰게 된 남성은 ‘약관’, 여성은 꽃다운 나이라 하여 ‘방년’이라 부른다.

서른 살쯤 자립해 세상의 모든 기반을 닦는다고 하여 나온 말로 ‘이립’을 쓰고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 40세는 ‘불혹’이라 말한다.

50세는 ‘지천명’으로 타고난 운명을 아는 나이를 뜻하고 천지 만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듣는 대로 모두 알아듣는다는 뜻의 ‘이순’ 또는 ‘육순’은 60세를 가리킨다.

70세는 ‘칠순’, 80세는 ‘팔순’, 90세는 ‘구순’이라 하며 99세는 백에서 일을 빼면 99, 즉 백(白)자가 된다고 하여 ‘백수’라 부른다. 이외에도 100세 ‘상수’, 111세 ‘황수’ 그리고 하늘의 수명이라 불리는 120세의 ‘천수’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니, 난 나 자신에게 정직하게 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대신 내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그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한평생 일만 열심히 하고 살았는데 그렇게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그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나이 들어 되돌아보니 자녀들은 이미 다 커 버렸고 아내와의 관계조차 서먹해졌다. 또한, 내 감정을 주위에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지 못했다. 내 속을 터놓을 용기가 없어서 순간순간의 감정을 꾹꾹 누르며 살다 병이 되기까지 했다.

친구들과 연락하며 살았어야 했다. 다들 죽기 전 얘기하더라. ‘친구 OO를 한 번 봤으면….’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겁이 나서 변화를 선택하지 못했고 튀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욕심 같아서는 돈을 더 벌었어야 했는데 아쉽기도 하고 ‘더 궁궐 같은 집에서 한번 살아봤으면…. 그리고 애들을 더 엄하게 키웠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내가 죽었을 때 나를 알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말할까. 나는 어떤 표현의 말을 들을 수 있을까.

∆ 돌아가시다 ∆ 운명하시다 ∆ 순직하시다 ∆ 사망하시다 ∆ 순직하시다 ∆ 열반에 드시다 ∆ 서거하시다 ∆ 눈감으시다 ∆ 소천하시다 ∆ 영면하시다 ∆ 미소를 가득 머금고 가시다 ∆ 고이 잠드시다 ∆ 호흡이 멈추다 ∆ 유명을 달리하시다 ∆ 벌써 가시다 ∆ 잘 갔다 ∆ 죽었다 ∆ 아까운 분이 가시다 ∆ 요절하시다 ∆ 객사하시다 ∆ 최후를 마치시다 ∆ 뻗었다 ∆ 뒈졌다 ∆ 승천하시다 등등의 생각에 잠겨 본다.

고령화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 노년기의 삶은 ‘덤’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온 삶에 대한 정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살아온 과정과 가족들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여 기록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나온 삶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좌절일 것이고 가족을 회상하면서 기록하다 보면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주지 말아야 했던 마음의 상처 그리고 먼저 떠나보낸 이의 그리움이 앞설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도 삶의 과정이고 인생에 있어서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살아온 삶이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살았다면, 새로운 삶은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그리고 가까운 친족, 이웃, 친구 등 소중한 인연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 꺼져가는 생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등 주위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