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중대재해처벌법, 처벌만으로 안전사고 막을 수 없어
사설 / 중대재해처벌법, 처벌만으로 안전사고 막을 수 없어
  • 시정일보
  • 승인 2022.02.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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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선진국의 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하고 과도한 기업인 처벌법인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됐다. 공사 현장이나 공장 등 산업계의 중대산업재해와 지하철, 교량, 대형식당 등 대중시설에서 생긴 중대시민재해가 모두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 노동자 사망 등 중대재해 발생 시 사고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중대한 처벌을 받게 된다. 다만 종업원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년간 적용이 유예된다.

이 법이 본격 시행됨으로써 언제든 중대재해 발생 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중앙행정기관장·지방자치단체장·공공기관장을 비롯 일부 자영업자까지 아우르는 초유의 일벌백계 조치에 민관 모두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지난해 중대재해 사업장 총 576곳 중 60% 가까운 339곳이 건설현장으로 나타났다.

이에 건설업계는 1호 대상으로 본보기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법 시행일인 27일부터 설 연휴를 앞당겨 공사를 중단하거나 작업량을 줄인 곳이 잇따랐다. 특히 사고 발생이 많은 건설현장과 준비가 안 된 중소기업들은 공포에 휩싸여 있는 느낌이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안전관리 책임자를 새로 지정하거나 전담조직을 만들고 키우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무엇보다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중소기업들은 거의 속수무책이 아닐 수 없다.

연간 산재 사망자가 거의 1000명에 육박해 가는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안전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경영자가 지켜야 할 의무사항과 안전 조치가 분명히 명시돼 있지 않고 원청과 하청의 책임 구분, 사고 책임소재와 인과관계 규명 등이 확실치 않다. 그간 경제계는 경영자의 고의나 중과실이 없고 근로자의 과실로 발생한 중대재해 경우의 면책 등 보완입법을 끊임없이 요구해왔지만 이는 실제 입법 과정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 법이 처벌만능으로 흘러선 곤란하다. 고의·과실 여부에 대한 판단과 책임 규명이 쉽지 않은 데다 과잉 처벌 논란 등 위헌 소지가 있다는 항간의 지적도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최소한 경영 책임자 등이 의무 사항을 준수하고 고의·중과실이 없다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면책 근거부터 마련해야만 기업경영이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울러 중대재해처벌법이 우리 사회 전반의 안전도를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현장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 실현 가능한 법이 되도록 정교하게 보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