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 ‘보도자료’엔 韓美日이 다 있다
기자수첩 / ‘보도자료’엔 韓美日이 다 있다
  • 김응구
  • 승인 2022.02.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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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구 기자 sijung1988@naver.com
김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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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김응구 기자]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전자우편함을 열고 새벽부터 부지런히 쌓인 ‘보도자료’를 내려받는다. 눈은 제목부터 아랫단까지 빠르게 훑는다. 언제부턴가 중간 중간 몇몇 단어에서 시선이 잠시 멈춘다. 외래어나 일본식 한자어 때문이다. 보통은 무시하거나 못 본 척한다. 물론, 그 단어는 기사화하면서 대체 단어로 다듬는다.

말로, 글로 자주 사용하니 아무래도 외래어 선택이 잦다. 일반화됐으니 괜찮을 것이란 생각, 그럴싸해 보이는 표현, 단어 트렌드에 뒤쳐져선 안 된다는 눈치, 아니면 별 고민 없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필수 개선 행정용어’가 있다. 그중 보도자료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 몇 가지가 눈에 띈다. ‘마스터플랜(master plan)’은 ‘종합계획’으로, ‘MOU’는 ‘업무협약’으로, ‘매뉴얼(manual)’은 ‘안내서’로, ‘스타트업(startup)’은 ‘새싹기업’으로 ‘어젠다(agenda)’는 ‘의제’로 바꿔 쓰면 좋다. 요새 화두인 ‘ESG경영’의 다듬은 말도 있다. ESG는 ‘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의 앞글자만 딴 단어다. 이를 그대로 풀어 ‘환경·사회·투명경영’으로 사용할 것을 국립국어원은 권유하고 있다. 백신접종이 한창일 때 많이 접한 ‘부스터 샷(booster shot)’은 그냥 ‘추가 접종’으로 쓰면 된다. 최신 트렌드인 ‘메타버스(metaverse)’는 몇몇 매체에서 ‘확장 가상 세계’ 또는 ‘가상 융합 세계’로 다듬어 쓰는 걸 봤다. 역시 이에 동의한다. 언택트 혹은 온택트(ontact)는 ‘영상 대면’ 또는 ‘화상 대면’으로 사용한다.

일본식 한자어는 종종 보인다. ‘납기(納期)’는 ‘내는 날’ 또는 ‘내는 기간’으로 쓰고, ‘인수(引受)하다’는 ‘넘겨받다’, ‘인계(引繼)하다’는 ‘넘겨주다’로 사용하면 그뿐이다. 익일(翌日)·익월(翌月)이라는 단어도 ‘다음 날’과 ‘다음 달’로 고쳐 쓰자. 기타(其他)라는 말도 그렇다. ‘그밖의’ 혹은 ‘그밖에’로 바꿔 쓸 수 있다.

뭐, 그럴 수 있다. 글을 도구로 사용하는 직업이 아니라면 영어나 한자어에 이처럼 민감할 필요는 없다. 글도 대화의 일종이니 뜻만 통하면 된다는 생각에도 이견이 없다. 단지, 공공기관부터 한글에 적극적이면 그걸 받아 가공하는 ‘글쟁이’들이 자연스레 옮기고, 또 그걸 받아 보는 ‘글 소비자’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고쳐 쓸 테니,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되길 바랄 뿐이다. 글을 생산하고 단어를 선택할 때 국립국어원을 이용하면 생각보다 많은 ‘글 새로고침’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BTS(방탄소년단)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글로 노래 부르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보이는 한글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