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장례, 원정 화장이 유행인가
원정 장례, 원정 화장이 유행인가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2.03.22 16:34
  • 댓글 0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망자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는 시련도 많았다. IMF 같은 경제적 재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 말고 이렇게 국민의 생명이 속수무책으로 죽는 일은 없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코로나로 인한 중환자·사망자 발생은 계절 독감 수준을 뛰어넘는다. 지난 한 주간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1일 평균 4백여 명에 이르는 국가적 재난에 국민은 속수무책으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데, 정부나 지자체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눈에 보이지가 않는다.

우리나라는 국가원수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장례는 3일장으로 치르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망자로 인해 장례식장이 부족하여 보통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화장할 때까지 냉동실에 모시게 되는데, 이 냉동실 또한 부족하여 목관에 넣어 창고 바닥에 그냥 둔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히 4일장, 5일장을 치러야 하고 어떤 경우는 6일장까지 치렀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화장로가 부족하여 생기는 현상으로 연일 TV나 언론에서 질책하며 대안을 세우라고 하는데 정부와 서울시는 공염불만 하고 있다.

어쨌든, 코로나 사망자가 쏟아지면서 화장장이 부족해지자, 예약이 밀리고 장례 현장에서는 시신 안치실이 꽉 차 애를 먹고 있다. 사연인즉, 시신 보관용 냉장고가 모자라 시신을 실온에 내놓고 유족들은 지방으로 원정 장례, 원정 화장을 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래서 유족들의 고충이 크다. 유족은 가족을 잃어서 힘들고, 영안실 안치도 바로 안 돼서 힘들고, 화장장도 못 찾는 삼중고를 겪고 있어 장기적으로 화장장 증설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망자 폭증으로 인해 고인들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조차 잃는 일련의 상황이 안타깝다.

더 큰 고민은 이런 혼란이 이제 시작일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확진자 증가에 따른 중증환자 증가, 사망자 증가가 2~3주 시차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데, 해외 사례와 국내 수학적 모델링을 감안하면, 현재와 같은 추세가 쭉 진행된 다음에 환자 증가와 함께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어느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서울시 거주 유족들의 고통이 비교적 큰 편이다. 말이 쉽지 인근 지방으로의 원정 장례, 원정 화장으로 인한 번거로움은 물론, 과증한 비용 지출 등으로 가족 간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장례식장과 영안실, 화장장 등 일선 장례 현장에서는 사망 후 며칠 내에 장례를 치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기열이 밀리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서울시립승화원 화장로 부족과 관련된 언론 보도가 빈번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시 당국의 노력은 전혀 없다. 예를 들면, 1970년 9월 26일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던 서울시립화장장을 고양시 대자리에 이전 설치한 지가 53년이 되었다. 국민의 장례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화하면서 화장 수요가 늘어나자, 서울시립승화원은 점진적으로 화로를 증설하다가 2000년에 화장로 16기에서 23기로 7기를 마지막으로 증설했을 뿐이다.

그리고 2011년 12월 서초구에 ‘추모공원’이 건립되면서 화장에 별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2016년 이후 4일장을 하게 되고 천안, 청주까지 원정 화장하는 경우가 생겼다. 2018년 12월과 2019년 1월에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이 화장로 부족으로 천안, 청주까지 가서 원정 화장을 한다고 서울시의 화장장 문제를 질책한 일이 있다.

그리고 2019년 5월28일 주민기피시설대책위원회(위원장 김금복)에서 ‘시립승화원 화장로 증설’을 서울시에 제안하였고 아울러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일이 수차례나 있었지만 아직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무기력에 빠져 있다.

서울시뿐만 아니다. 요새 코로나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거의 매일 TV이나 신문 지상에 장례식장, 화장장이 부족하여 4~6일장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도 정부는 대책이 미흡하다며 질타하는 뉴스를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장례 전문가들은 화장터 부족을 호소하면서 이 시기에 가장 먼저 타파해야 하는 건 ‘지역이기주의’라고 토로했다. 화장 자리가 남아도 관외 사망자는 받아주지 않는 지역이기주의가 화장터 부족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실제 관외 사망자의 경우 최소 5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비용이 들고, 관내 사망자는 7~10만 원 정도의 요금만 드는 상황이라 금전적 목적에서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한다.

화장 시설이 부족한 건 이미 오래된 얘기다. 1992년 화장률 18.4%, 2005년 화장률 52.6%, 2021년 화장률이 90%를 넘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기현상이다. 요새 우리나라의 장묘 문화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10년 전만 해도 화장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화장은 가난한 사람이나 무연고사, 사고사, 전염병 환자 등의 경우에나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장이 매우 빠르게 늘어난 것은 사회 환경 변화와 국가 정책의 변화 그리고 시민 단체들이 화장 문화 확산 운동 등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된다.

어쨌든, 화장터는 기피시설로 인식되기 때문에 새로운 화장터를 짓기 위해서는 지역 선정부터 주민의 동의를 얻는 것 외의 준비까지 3~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 사망자 증가로 화장터가 부족한 이 시기엔 기존 화장터의 운영 역량을 늘리는 게 최선이다.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