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 시드니 포이티어가 심은 씨앗
시청앞 / 시드니 포이티어가 심은 씨앗
  • 이승열
  • 승인 2022.03.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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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한국시간으로 지난 28일 아침에 열렸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윌 스미스 이슈’에 묻혀버린 감이 있다. 윌 스미스는 시상자로 나와 자기 아내를 상대로 저급한 농담을 던진 크리스 락을 상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한국에서는 ‘크리스 락이 맞을 짓 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데, 미국에서는 윌 스미스가 훨씬 비난받는 분위기다.

시상식에서는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을 떠올리는 기회도 있었다. 매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지난 1년간 세상을 떠난 영화인들을 추모하는 순서가 마련되는데, 이번에는 지난 1월7일 타계한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1927~2022)의 얼굴이 시상식장을 숙연하게 했다.

시드니 포이티어는 1927년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바하마 출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매우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흑인 전문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배우의 길을 걸었다. <노 웨이 아웃>(1950), <폭력교실>(1955) 등에 출연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흑과 백>(1958)에서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다. 포이티어는 1963년 <들에 핀 백합>으로, 흑인으로서는 처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포이티어는 인종차별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에서 사회적 편견에 맞서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백인 사회는 그의 인기를 배척했고, 흑인들은 백인들이 흑인에 대해 가지는 편견 속에서 연기했다는 이유로 그를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선구자의 길을 걸었고, 세월이 흘러 신화 속 인물로 남았다. 그는 미국시민의 최고 영예인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과 영국 여왕의 기사 작위를 모두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시작한 역사는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포이티어 이후 흑인 배우의 오스카 주연상 수상은 2002년에서야 덴젤 워싱턴과 할리 베리에 의해 이뤄졌다. 이후 제이미 폭스(2005), 포레스트 휘태커(2007), 윌 스미스(2022)가 계보를 이었다. 조연상을 수상한 흑인 배우는 이제 적지 않지만, 주연상은 여태껏 6명에 불과할 정도로 박하다.

하지만 최근 아카데미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로 뚜렷하게 나아가고 있다. 올해만 해도, 작품상을 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코다>가 수상했고, 감독상은 여성이, 남우주연상은 흑인이, 남우조연상은 청각장애인이, 여우조연상은 라틴계 흑인이자 성소수자가 각각 받았다. 지난해에도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씨와 함께, 중국계 여성으로서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가 화제가 됐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돌풍이 불었던 재작년 시상식도 기억에 생생하다.

전 세계는 이제 ‘다양성(diversity)’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혐오를 매개로 편 가르기에 열중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은 언제쯤 바뀔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