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 가사노동과 돌봄노동
시청앞 / 가사노동과 돌봄노동
  • 이승열
  • 승인 2022.04.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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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이승열 기자]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 자치구의 행보가 주목된다. 서울 성동구가 그 주인공.

성동구는 지난해 10월 전국 최초로 <성동구 경력보유여성 등의 존중 및 권익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경력보유여성은 경력단절여성을 달리 표현한 것으로, 조례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중단했거나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지만 일경험 또는 돌봄노동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을 말한다. 성동구는 구에 거주하고 있거나 구 소재 기업에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이, 미취업 상황에서 무급 돌봄노동 기간이 1개월 이상이고 별도의 경력인정 프로그램을 수료하면, 최대 2년의 경력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경력인정서를 받을 수 있는 경력인정 프로그램은 이달부터 시작된다. 성동구도시관리공단 등 산하기관도 돌봄기간의 50%를 최대 4년까지 경력으로 인정한다.

사람들이 보통 ‘정상가족’으로 생각하는, 부부와 2명의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을 떠올려 보자. 아빠는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까지 일하고, 엄마는 하루종일 육아와 가사를 맡아서 한다. 즉, 아빠는 임금노동을 하고 엄마는 가사노동(돌봄노동까지 포함)을 한다. 그런데, 아빠의 노동은 (공정하든 그렇지 않든) 일정한 평가를 받아 임금이라는 대가로 돌아오는 반면, 엄마의 가사노동은 아무런 보상도 획득하지 못한다. 잘 생각해 보면 합당한 이유가 없는 이상한 일이다. “쉬운 일” 또는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요리와 청소와 빨래, 육아, 돌봄은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며, 이 세상을 떠받치는 노동이다. 그리고 쉽지 않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리처드 로빈스의 책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발전은 대가족집단을 개인이나 핵가족 단위로 분리해 왔다. 이는 대가족이라면 공유했을 상품을 핵가족 단위로 따로 구매하게 함으로써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또, 노동력 공급의 유연성, 노동력의 쉬운 재배치를 위해 사회적·정서적 유대를 축소하려는 목적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의 권리는 크게 약화됐다. 자본주의 체제는 의도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을 분리하고 가사노동의 가치를 하락시켜 여성을 가사노동과 소비의 주체로만 인식되도록 했다. 핵가족 내의 지배권은 밖에서 돈을 버는 남성 가장에게 완전히 넘어갔고, 여성의 역할은 남편과 자식들을 잘 돌보는 것으로 제한됐다. 가사노동은 다른 여성들과의 사회적 연대가능성을 차단하고 여성을 외부 세계와 단절시켰다. 즉, 가사노동이 아무런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사(私)적 영역’에 가둬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 가사와 돌봄을 공적영역으로 끄집어내, 그것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필수노동’이라는 인식을 확대해야 한다. 성동구가 내디딘 작은 발걸음이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