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소통과 언로가 보장되는 사회
특별기고 / 소통과 언로가 보장되는 사회
  • 임 종 은 한국문학신문 전 편집국장
  • 승인 2022.04.2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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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종 은 한국문학신문 전 편집국장
임 종 은
한국문학신문 전 편집국장

[시정일보] 인간의 생활은 소통과 함께 시작된다. 생활의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도 대화를 통하여 의사를 전달하며 일상을 유지해 나가게 된다. 더 나아가 모든 조직은 소통을 통하여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되며, 큰 조직일수록 그 중요성은 더 크게 작용한다.

5월10일이면 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 내각도 들어서게 된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통해 각료들과 소통을 하게 되고 국회는 물론 국민과 소통을 통해서 국정을 원만히 수행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언로(言路)가 보장되어야 함은 기본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원활한 소통을 통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신뢰할 수 있는 훌륭한 정책으로 국민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왕권 시대에도 언로가 보장되고 소통이 자유롭게 이뤄진 시대에는 태평성대가 오래 유지되었음을 역사를 통하여 볼 수 있다.

역사에 나타난 대표적인 소통의 사례들을 거울삼아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조선 시대는 언로(言路)가 보장되어 하층 관리나 백성이라도 상소가 가능했으며, 조정에서의 상하 간에 탄핵과 논쟁이 보장되고 왕과의 소통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처음 신하들의 왕과의 소통은 경연(經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경연은 왕을 교육하는 기능을 목적으로 처음 시행되었다. 왕이 어린 나이로 즉위한 경우에는 일정 기간 왕의 교육을 위해 경연을 강화하기도 하였으며, 대체로 왕이 유교적인 정치 원리에 근거하여 덕정을 펼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장으로서 기능을 하였다.

세종(1397~1450)은 즉위한 뒤 약 20년 동안 꾸준히 경연에 참석했는데, 초기에는 집현전을 두어 경연을 전담하는 학자군을 양성하였으며 경연관을 강화하여 경연 강의의 질을 높였다. 또, 성종의 경우는 재위 25년 동안 거의 매일 경연에 참석하였으며, 초년에는 하루에 3번씩 경연을 열었다.

그러다가 대신과 대간이 왕을 중심으로 여러 정치문제를 협의하는 정치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경연은 덕(德)에 의한 교화를 이상으로 하는 정치원리를 근거로 왕에게 경사(經史)를 가르쳐 학문에 힘쓰도록 하고, 유교의 이상 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실제로는 왕권의 사적인 행사를 규제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

이러한 제도가 가능하게 된 요인은 유교에 의해 통치되었던 조선 사회는 성리학을 국가 경영의 이념으로 함에 따라 관직의 높고 낮음보다 학문의 명성이 중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라의 중신들은 왕의 잘못을 무안할 정도로 질타하곤 했다. 몇백 년이 흐른 지금도 측근 참모가 최고 권력자 앞에서 직언 한마디 하지 못하는 현실과 비교했을 때, 조선 사회 선비들의 기개가 참으로 놀랍게 느껴진다,

유림(儒林)의 영수 송시열(1607~1689)의 왕에 대한 충고를 들어 보자. “이제부터 깊이 성의(聖意)를 여기에 두시어 반성하시고 살피어는 공부를 더 하셔서 희로(喜怒)에 의해서 움직이지 마시고, 백성을 햇볕처럼 사랑하고 하늘처럼 두려워하십시오.”라고 하며 왕에게 반성을 촉구한다.

또 성리학(性理學) 강의 중에 “(중략) 공부에는 미진한 점이 있지 않은가 여겨집니다. 선왕의 중요한 부탁을 받아 한나라 백성의 주인이 되셨는데, 스스로 경솔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하며 왕의 경솔함을 나무라자, 이에 효종은 “경의 말이 지극히 맞다. 삼가 마음속에 새겨두고 잊지 않겠다.”라고 한다.

신하의 왕에 대한 질책도 무엄하기 짝이 없지만, 신하의 충언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왕의 아량이 존경스럽다. 또, 세종이 사랑하는 왕후를 잃고 불교에 심취해 궁궐에 내불당을 지으려 추진하자 언론(사간원. 홍문관. 사헌부)에서 결사반대하면서 “전하께서는 도대체 불당(佛堂) 건설 말고는 생각이 없으십니까?” 하고 질책한다.

예전 선비들은 옳은 일이라면 신상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충언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충으로 몰려 신변에 위험을 당할 수도 있으련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선비 정신이 부럽다. 오늘날과 같은 민주사회에서도 정책의 방향이 옳지 않을 때 대통령에게 소신 있게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선비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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