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 디 / 90년 전 윤봉길 의사가 꿈꾸었던 대한민국
한 마 디 / 90년 전 윤봉길 의사가 꿈꾸었던 대한민국
  • 한 마 디 / 용교순 (서울남부보훈지청장)
  • 승인 2022.04.28 10:55
  • 댓글 0

용교순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용교순 보훈남부지청장
용교순 보훈남부지청장

[시정일보] 올해 4월29일, 윤봉길 의사가 임시정부의 지원을 받아 중국 상해에서 일본 군인들을 향해 폭탄을 투척한 지 어느덧 90주년을 맞이한다.

윤 의사는 1908년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1919년 3월1일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1926년 오치서숙(烏致書塾)을 졸업하고 독학으로 국사와 신학문을 공부했으며 농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농촌 청소년들에게 한글, 역사 등을 가르치면서 수업의 교재로 <농민독본>을 저술하여 농촌 청년들의 단결과 민족정신을 배양하고 애국정신을 고취시켰다.

일제의 탄압이 날로 심해지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1932년 4월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을 맞아 상해 점령 전승기념 축하행사를 거행하자 윤의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상을 향해 폭탄을 투척하여 총사령관인 사다쓰구 등 2명을 죽이고 고위관료 5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국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932년 12월19일 이시카와현 금택형무소 교외에서 25세의 일기로 순국했다.

이 사건은 중국과 세계에 일본의 불법적인 조선침략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국민당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고 경탄했고 이후 중국정부가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여 대한광복군과 함께 연합전선을 펼쳐 일본에 항거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오직 조국독립의 일념으로 모든 것을 초월해 행동으로 옮겨 뜻을 펼친 청년 윤봉길!

90년 전 윤봉길 의사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적이익을 위해서라면 ‘반대를 위한 반대’도 서슴지 않으며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정치 진영 간, 세대와 계층, 지역과 성별로 쪼개져서 분열된 나라 지금의 대한민국 모습을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1946년 제27회 삼일절 기념식에서 조소앙 선생께서 육성연설로 말씀하셨던 “아이마다 대학을 졸업하게 하고, 사람마다 우유 한병씩 먹고 집 한 채씩 가지고 살게하는 조국”이 윤봉길 의사가 바라던 최소한의 대한민국의 모습이라 생각이 든다.

광복을 맞이하는 기쁨도 잠시, 6·25전쟁의 아픔을 이겨내고 자유정의 실현을 위한 국민들의 피땀속에서 세계가 깜짝 놀랄 만큼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우리는 지금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서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 코로나로 인한 경기침체의 장기화, 북한의 무력도발로 인한 한반도 안보의 위기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그 어느 때보다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작금의 위기 속에서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것은 선열들로부터 물려받은 위기에 더 강하고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위대한 DNA가 우리의 몸속에 있기 때문이다.

윤봉길 의사가 90년 전 꿈꾸었던 대한민국! 이제 우리가 그 꿈을 이루어 나가야 할 때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이야말로 윤봉길 의사가 꿈꾸었던 진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 모두 대화와 타협, 양보와 배려, 격려와 응원으로 다시 하나로 뭉쳐 위기를 극복하고 더 큰 대한민국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