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 노년의 행복조건
시정칼럼 / 노년의 행복조건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2.05.2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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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노년에 행복을 누리기 위한 조건들이 인터넷에서 회자하고 있다. 그들은 돈·건강·일·친구와 배우자 등 최소한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마지막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이 있어야 하고 병원에 자주 드나들지 않고 살 수 있는 건강이 유지되어야 하며 무엇인가를 하면서 소일할 수 있는 일이 필수적이고 자주 교류할 수 있는 친구가 중요한 자산이며 대화를 나누며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배우자가 있어야 한다. 이들 요건이 전부라고는 할 수 없고 사람에 따라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회자하고 있는 노년의 행복조건들이다.

오늘날 노년들은 전통적인 가정에서처럼 함께 살면서 존경받는 때는 지났다. 이제 노년들은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행복의 조건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된 노년에게만 행복이 깃들게 마련이다.

노후에 즐겁게 산다는 것. 누구보다도 우정을 함께 나눌 친구가 많아야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 즉, 벗이 가까이 있고 오래된 친구가 많을수록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옛말에 술과 신발과 마누라는 오래될수록 편안하다는 말이 있듯이 인생에 있어 삶의 전부는 돈도 아니요, 지위나 권력도 아닌 상대방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본연의 덕을 가려 사귀어온 믿음의 친구가 진짜 '벗'이다.

인간 수명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 했는데 요즘 세태는 90~100세를 넘어 120세까지를 바라본다니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것도 개개인의 능력과 경제력, 건강이 받쳐 주어야 잘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즐겁고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하여간 좋은 '벗'의 인연은 서로가 함께 노력하며 긴 여행길에 길잡이가 되는 즐거운 '일도인생(一到人生)'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친구와 자주 어울려야 덜 늙는다.

헤밍웨이(1899~1961)는 자신이 늙는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노인 취급을 당하는 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킬리만자로 등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며 사냥하고 카리브해에서 며칠씩 파도와 싸우며 대어낚시에 열중하기도 했다. 그는 경비행기 사고로 세 번이나 죽을 뻔했다. 그의 일생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처럼 도전과 모험의 연속이었다.

<노인과 바다>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대어를 낚는 데는 성공하지만, 상어 공격으로 그 대어를 육지로 끌고 오는 데는 실패한다. 뼈대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오게 되었지만, 산티아고 노인은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정복될 수는 없다.”라며 자신을 위로한다.

헤밍웨이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입을 통해 자신은 다른 사람들처럼 목숨만 유지하는 노인 생활은 하지 않을 것이고 끝까지 용기와 도전을 통해 남성적 가치를 보여 주겠다는 의지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는 서로 다른 속도로 쇠퇴한다. 정신은 젊은이지만 육체는 급속도로 노화된다.

나이 들어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게 정말 나인가?' 의심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헤밍웨이는 비행기 추락사로 입은 부상이 악화하여 글쓰기 어려워지고 침대에 드러눕게 되자 총으로 자살해 버렸다. 그의 나이 불과 62세였다.

요즘 헤밍웨이의 자살 원인이 무엇인가가 재조명되고 있는데, 우울증 때문이라는 학자들이 많다. 헤밍웨이는 말년에 가장 친한 친구들인 윌리엄 예이츠,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를 잃은 데다가 특히 자기 저서의 편집자로 낚시와 사냥을 함께 하던 맥스 퍼킨스를 잃은 데 대한 슬픔이 지나쳐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젊었을 때는 여성을 좋아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남자 친구들에게 더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친구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결국 외톨이가 되기 마련이다. 나이 들면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함께 고민하는 친구가 없다면 누구든 고독한 말년을 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돈과 건강을 가졌다고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노인의 행복 요소는 돈과 건강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에게는 친구가 돈과 건강 못지않은 행복의 요소다. 우리는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출세하는 법, 돈 버는 법에만 열중하고 친구 사귀는 법은 등한시했다. 친구는 배우자와는 또 다른 인생 반려자다. 배우자에게 의논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려움에 뜨거운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수 있는 참다운 친구가 한 명이라도 곁에 있다면 당신의 노년 인생은 성공한 셈이다. 인생 말년에 행복해지기를 원하는가?” 괴테(1749~1832)가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재테크보다 우(友)테크를 잘하라!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