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의 '키워드 한국 현대사 기행 1'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의 '키워드 한국 현대사 기행 1'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2.06.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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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호남·영남편 출간...국내 여행에 반드시 지참할 ‘국민 역사여행 교양서’

[시정일보/ 임춘식 한남대 명예교수] 우리가 즐겨 찾는 제주도에서 우리나라에 1960년대까지 북한에서나 있는 줄 알았던 강제노동수용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달리는 도로가 그들의 피와 눈물이 점철된 강제노동의 결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말의 자랑스러운 운동인 동학농민혁명 하면 우리는 전봉준을 떠올리지만, 왕정을 지지했던 전봉준과 달리 신분제 타파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한 김개남과 같은 지도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정읍 무성서원에서 시작된 호남의 의병운동이 숭고한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이들 의병장이 김개남과 같은 동학 지도자를 밀고했고, 이들 중 일부는 민보군이라는 양반 군을 만들어 일본군, 관군과 손잡고 동학군을 정벌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일본 학생들의 한국 여학생 추행에 저항해 일어난 자랑스러운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회성, 국지적 투쟁이 아니라 몇 달간 계속되고 전국적, 국제적으로 일어난 거대한 투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일제 말, 대구지역과 하동지역에 징용 징병에 저항해 산으로 올라가 죽창으로 무장하고 항일무장투쟁을 한 젊은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가? 빨치산 하면 우리는 한국전쟁과 함께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한국전쟁이 끝나면 10년이 지나고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뒤 2년이 지난 1963년까지 지리산에 빨치산이, 그것도 여자 빨치산이 남아 투쟁했다는 것을 아는가?

‘보수의 메카’로 알려진 대구가 미 군정하에서 제일 먼저 미 군정에 저항해 대규모 항쟁을 일으킨 ‘진보의 메카’였고 4.19 당시도 제일 먼저 반이승만시위를 벌인 ‘한국 민주항쟁의 시발지’라는 점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흔히 우리는 지역주의 하면 영남 대 호남의 대결로 이해하지만, 대구·경북(TK) 정권이 박정희 정권을 무너트린 것은 호남이 아니고 같은 영남인 부산·경남(PK)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에게 이 같은 게 익숙하지 않은, 때로는 불편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 책이 있다. 최근 출간한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의 <키워드 한국현 대사기행>이다. 이 책을 접하고 실감한 것이 있다. 불교 용어로, 모든 현상은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법이다.

대표적인 진보정치학자인 손호철 교수는 여러 이론 서적과 정치평론집 이외에도 <마추픽추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카미오 데 쿠바: 즐거운 혁명의 나라 쿠바로 가는 길>, <레드 로드: 대장정 15,500Km 중국을 보다>, <물속에 쓴 이름들: 손호철의 이탈리아 사상기행> 등 역사기행 책을 써 왔다. 그러나 갑자기 코로나 19가 터져 외국을 가기 어려워지면서 나이가 들어 외국을 가기 어려울 때 쓰려고 했던 한국 현대사 기행을 앞당겨서 하게 됐고 그 결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즉 코로나 19 덕분으로 탄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손 교수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 150개를 골라 그 현장을 찾아 1년 반 동안 서울-부산을 110번 이상 오가는 거리인 45,000킬로를 달렸다. 그리고 그중 102개를 간추려 두 권의 책을 만들었는데, 이번엔 출간된 1권은 제주도와 호남, 영남을 다루고 있고 2권은 충청, 강원, 경기, 서울을 다룰 예정이다. 2권의 책을 만든다면, 우리의 관행이 1권은 서울과 수도권을 다루고 2권이 호남, 영남을 다루지만 이 책은 이 같은 ‘중앙중심주의’를 벗어난 것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이 책의 장점은 발로 뛰며 현장성을 살리고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단순히 역사적 사실에 매몰되지 않고 정치학자의 시각에서 그 의미를 다루었고 진보적 시각이되 글로벌하고 보편적 시각에서 분석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강진 편에서 다루고 있는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경우 그간의 전통적인 시각을 넘어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프랑스혁명의 주역 로베스피에르와 비교해, 그 한계를 지적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서사 역시 고루한 방식이 아니라 현대적 시각에서 풀어나가 읽은 이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승만 정부는 1948년 단독정부 수립 후 좌익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도한다는 이름 아래 보도연맹에 강제로 가입시켰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들이 북한에 협력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학살했다.

손 교수는 이를 범죄예방을 위해 컴퓨터 예측프로그램에 의해 앞으로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선별해 미리 죽이는,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니어리티 리포트>와 연결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앞에서 소개한 여러 질문 등 우리가 모르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알려주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역사적 사실들도 그 뒤에 숨겨진 참된 진실과 의미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사건마다 찾아가야 할 장소들의 주소를 상세히 적어 놓아, 역사여행의 안내서로 안성맞춤이다.

이제 코로나 19에 대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상당히 해소되어 여행이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항공편 등 여러 문제로 아직 해외여행은 시기상조이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손 교수의 <키워드 한국현 대사기행>은 모든 국민이 국내 여행을 떠날 때 반드시 준비해서 가지고 가야 할 ‘국민필독 교양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