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별 하나, 이어령!
기고/ 별 하나, 이어령!
  • 시정일보
  • 승인 2022.06.1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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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희 (시인, 칼럼니스트)
김인희
김인희

[시정일보] 지난 2월에 지구를 떠나서 별나라로 간 이어령 선생을 추억한다. 이어령 선생은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여섯 살 작은 어린이가 굴렁쇠를 굴리면서 등장하는 장면과 사이렌 소리의 정적으로 세계의 이목을 대한민국 월드컵 경기장에 집중시켰던 순간을 연출했던 장본인이었다.

그 장면은 여섯 살 때 선생이 체험했던 죽음이라고 했다. 시골 황톳길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여섯 살 꼬마 이어령. 정오의 태양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게 하고 같이 놀던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고요 속에서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아서 눈물을 흘렸던 꼬마는 그것이 죽임이라고 깨달았다고 했다. 여섯 살 소년의 마음속에 각인된 그 정적이 세계인을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었다.

청년 이어령은 22살의 나이에 한국 문단을 향하여 날카롭게 비평했다. 당시 문단의 대문호들이 어린 문인의 비평을 좋아했다고 했다. 이어령, 그가 정확히 꿰뚫어 보고 비평하는 것이기에 기쁘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선생은 건강 악화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도 당당하게 죽음과 마주 섰다. TV에서 죽음을 앞둔 선생이 업적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면서 서재를 소개했다. 선생님은 당신의 책상을 소개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긴 책상이라고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의 그 책상이 바로 말(馬)이었고, 이어령은 그 말을 타고 말(語)을 하면서 달렸다고 했다.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한국 전쟁 당시 학병으로 나간 사람들이 총알받이가 되어 죽었다. 그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모두 죽고 그들의 빈자리에 내가 있었다. 그 빈자리에 붓을 들고 어찌 왜곡된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내게 있었던 전부가 선물이었어.”

선생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 디지로그를 지향했다. 양자 대결을 뛰어넘는 가위바위보 게임의 상호 보완을 주창했다. 선생은 흑과 백의 대결이 아닌, 네가 이기면 내가 지는 게임이 아니라 셋이서 사이좋게 하는 대결을 역설했다.

가위는 보를 이기고, 보는 바위를 이기고, 바위는 가위에 지는 가위바위보 게임이야말로 정당한 게임이 아니겠는가. 사위어가는 촛불이 마지막 혼신을 다해 강한 빛을 발하던 순간처럼 후대들을 염려했던 선생의 또렷한 눈빛이 떠올랐다.

선생은 청년들을 향하여 자신은 누에이고 뽕이니 자신에게서 비단 실을 뽑아내라고 역설했다. 청년들에게 다가오는 모든 지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지 말라고 했다. 골수를 쪼갤 수 있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따지고 분석하라는 인생 선배의 가르침이었다.

선생은 청년들 앞에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면서 날카롭게 말했다. 얼마 날지 못하고 추락하는 종이비행기를 가리키면서 스스로 날 수 있는 동력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라고 말했다.

어떤 시인은 이어령 선생은 우리 시대에 백 년에 한 명 날까 말까 할 위인이라고 했다. 내로남불과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따뜻한 정이 그립다. 이어령 선생이 후대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쏟아부었던 교훈을 상기한다. 이어령 선생님의 메시지는 사랑이었다. 전 인류를 향한 생명존중이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을 알게 된다는 말씀은 숭고한 가르침이다.

이어령이라는 별 하나! 캄캄한 하늘에 빛나는 별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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