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나는 어떤 삶을 살았나
시정칼럼/ 나는 어떤 삶을 살았나
  • 임춘식 논설위원
  • 승인 2022.09.0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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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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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식 논설위원

[시정일보] "네가 생각한 너의 인생 마무리는 어떤 거였어?" 최근 재연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네이버 웹툰 '죽음에 관하여'에 등장하는 질문이다. 웹툰 속 신은 죽은 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요새 젊은 또래들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 중 가장 뜨거운 게 죽음 체험이다.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죽을병에 걸려 의사가 “마음 준비를 해라.”라고 하지 않는 한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먼 훗날의 이야기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오면 그간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이야기 역시 직접 느껴 본 적이 없으니 와닿지 않는다고 하지만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삶을 향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죽음을 목전에 뒀을 때 비로소 인간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다.

2021년 말 우리나라에서 31만7,800명이 생을 마감했다. 죽음처럼 자연스럽고 확실한 일도 없는데, 많은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는 것조차 꺼린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속절없이 죽음을 향해 간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부자도 빈자도, 청년도 노인도 죽는다. 누구나 맞이할 죽음, 쉬쉬하며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살아있을 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임종 체험은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는 것. ‘웰다잉(well-dying,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중반부터 학교와 지자체, 사회복지단체와 종교기관 등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종의 죽음 연습이다.

옛날에는 어르신들이 죽음을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했지만 이제는 사회가 엄청나게 변했다. 여유를 가지고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할 때가 왔다. 죽음 중에서도 자살은 가장 안 좋은 죽음이라며 전혀 비참하지 않은데 스스로가 자기를 비관하고 자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마치 수천 년을 살 것처럼 살아가지 말라. 와야 할 것이 이미 너를 향해 오고 있다.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선한 자가 돼라.’ 로마의 제16대 황제이자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는 명상록에 죽음에 관한 고찰을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죽을 때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수천 년을 살 것처럼 가치 있는 삶의 영위를 무기한 유기해왔던 누군가에게, 와야 할 죽음을 애써 외면한 채 무기력한 오늘을 억지로 버티고 있는 누군가에게, 후회 가득한 오늘을 보내고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려는 누군가에게 임종 체험은 '오늘'의 의미를 재정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죽음 체험에 참여하려면 먼저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죽음 체험을 통해 기대하는 점을 적는다. 그리고 영정사진을 찍는다. 그다음은 입관 순서다. 관(크기 1800*620*510) 위에 놓인 주머니 없는 수의를 입고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스스로가 추구한 삶의 가치와 행복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 유언 낭독을 마치고 관에 들어가 누우면 공간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덮인다.

유언 사례를 보자.

‘엄마, 아빠에게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아직 부모님께 해드릴 것이 많은데…. 내 죽음으로 가족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빠, 오빠.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나를 너무 생각하지 말고, 나를 위해 슬퍼하지 마. 내가 조금 먼저 엄마에게 갈게요.’

‘이제 나는 생을 마감한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보, 이게 마지막 편지가 되겠지. 그동안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해. 남겨줄 것이 빚밖에 없어서 더 미안해.’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이승에서 마지막 편지를 쓰는 아빠는 만감이 교차하는구나. 네가 우리 부부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바른 아이로 자라는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아빠는 너와 함께 공부했던 시간이 가장 행복했단다.’

‘세상 사는 것, 그리 어렵지 않은데 왜 좀 더 베풀고 사랑하며 따뜻하게 살지 못했을까? 나에게 잘해준 모든 이, 특히 사랑하는 가족에게 무한한 경의를 보내고 싶다.’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에게 사죄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그동안 모두 고마웠습니다.’

“여러분, 숨이 붙어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잠깐 눈을 감고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세요. 가슴이 답답하고 곧 숨도 멎을 거예요. 이제 여러분은 죽었습니다. 죽은 여러분의 시신을 화장해 장례를 치르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관이 닫힌다.

아무튼, 빛이 사라지고 주변이 고요해진다. 옴짝달싹하기도 어려운 비좁은 관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세상과 단절된 듯한 외로움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았나. 지금 죽는 건 좀 억울한데….’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찰나에 구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슬프고 아픈, 기억하기 싫은 일들은 관 속에 모두 버리고 새롭게 태어납시다.”란 말과 함께 경쾌한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지면 임종 체험은 10분 만에 끝난다.

어쨌든 죽을 때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 우물쭈물하다 갈 수는 없잖는가. 잘 죽는 게 잘사는 것이다. 임종 체험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