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기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 김인희(칼럼니스트, 시인)
  • 승인 2022.09.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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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희(칼럼니스트, 시인)
김인희 칼럼니스트
김인희 칼럼니스트

[시정일보] 우리의 고유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추석을 다른 말로 중추절, 가배, 가위, 한가위라고도 한다. 음력 팔월 보름이 되는 날 송편을 빚고 햅쌀과 햇과일 등으로 차례를 지내며 강강술래 등의 놀이를 즐겼다. 중추절은 우리 고유의 명절 중에서 가장 흥겨운 명절로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추석의 유래를 〈삼국사기〉에서 찾아본다. 신라 유리왕 때 6부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기망(음력으로 매달 열엿샛날)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동안의 성적을 가렸다.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했다. 이때 〈회소곡 會蘇曲〉이라는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이미지'라고 불렀다. 고려시대에도 추석 명절을 지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적으로 선대 왕에게 추석제를 지낸 기록이 있고 1518년(중종 13)에는 설, 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서 여름비에 무너진 무덤 보수와 벌초를 한다. 조상 상에 바치는 제물은 햇곡으로 준비하여 먼저 조상에게 선보이며 1년 농사의 고마움을 조상에게 전한다. 추석에는 정월 대보름보다는 작았으나 씨름, 소놀이, 거북놀이,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를 즐기면서 한 해 풍작을 감사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농경을 중시했던 우리 민족에게 수확의 계절에 맞는 추석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햇곡식과 햇과일 등 먹을거리가 풍성했던 추석의 넉넉함이 지속되기를 바랐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속담이다.

필자가 유년 시절에 지낸 추석이 곧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을 대변한다.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은 단 하루도 다리 펴고 쉬는 날이 없었다. 농번기는 물론 눈 내리는 겨울철에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했다.

그러나 추석이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방문을 새롭게 단장했다. 방문을 떼어 황톳빛 마당에 세워두고 밀가루 풀을 쑤어 창호지를 새롭게 발랐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눈이 부시게 흰 창호지문 사이로 빨간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녔다. 그 창호지문 손잡이 주변에 과꽃 꽃잎을 모자이크하고 창호지를 덧발랐다. 그 창호문에 박제된 선홍색 과꽃은 한겨울에도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는 순백의 옥양목 앞치마를 두르고 시루떡을 찌고 송편을 빚었다. 뒤꼍에 있는 커다란 항아리 안에는 사과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 배부른 항아리 옆을 지나칠 때마다 달콤한 사과 냄새가 났다. 그때 어머니가 산비탈 밭에 가지 않고 아버지가 수렁배미 논에 가지 않고 집에 있어서 좋았다. 집안 가득 배어있는 엄마의 향기와 묵직한 아버지의 기운이 좋았던 유년의 추석은 한 편의 동화다.

지금 우리는 21C 컴퓨터가 신의 영역을 넘나든다는 IT 최강국에 살고 있다. 추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지난 추석 명절에 코로나 팬데믹에 묶여서 옴짝달싹 못 했던 건 전대미문이었다. 대처에 나가 있는 자식들과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만날 수 없었던 쓸쓸한 추석이었다. 코로나가 명절에 모이는 인원을 제한했을 때 자녀들이 순번을 정하여 부모님을 찾아뵙는 생경한 풍경이 있었다. 007작전이 따로 없었다.

우리를 꽁꽁 묶었던 코로나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시점에 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폭우의 피해를 극복하기도 전에 들이닥친 태풍 힌남노의 피해는 설상가상이 되었다. 시장물가는 연일 고공행진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가슴 펑 뚫릴 일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하다. 그러나 우리는 극복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앞을 가로막은 첩첩 산을 하나씩 넘어온 저력으로 작금의 난관도 이겨내야 한다.

추석 명절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 가족의 화합이 위대한 힘이 되리라 믿는다. 가족의 사랑이 코로나, 폭우, 태풍으로 지친 우리를 치유하고 위로와 희망을 줄 것이라고 역설한다. 명절 대이동으로 도로가 막혀 긴 시간의 고생을 감내하면서 그 대열에 합류하는 이유가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추석 명절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송편을 빚고 선조들을 기리면서 옷깃을 여미는 거룩한 시간에 감사를 깨달을 것이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 따뜻한 사랑으로 이겨내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서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우리 힘들지만, 한가위 쟁반 같은 보름달을 보며 말했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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