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앞 / 신당역 역무원 피살사건
시청앞 / 신당역 역무원 피살사건
  • 이승열
  • 승인 2022.09.2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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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이승열 기자] 지난 14일 발생한 신당역 역무원 피살사건은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서울 도심 한복판 공공장소에서 일어난 살인이라는 외관도 끔찍하지만, 이 사건은 만연한 여성혐오와 젠더폭력, 열악한 노동여건, 사법부와 입법부 그리고 수사기관과 소속기관의 무사안일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이 응축된 대표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숨진 역무원 ㄱ씨는 입사동기인 전주환으로부터 2019년부터 지속해서 스토킹에 시달렸다. 전씨는 수백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피해자를 불법촬영한 뒤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이어 검찰이 징역 9년의 중형을 구형한 사건 선고를 하루 앞두고 피해자를 살해했다. 사건은 여성에 대한 증오, 멸시, 집착, 소유욕 등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혐오 범죄의 양상을 보여줬고, 여성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ㄱ씨는 지난해 10월 전씨를 성폭력처벌법 위반(촬영물 등 이용 협박) 및 정보통신망법 위반(불안감 조성) 혐의로 고소했다. 이때는 스토킹처벌법 시행 전이었다. 경찰은 전씨를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전씨의 주거지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할 때 주거지 일정 요건 외에도 피해자 위해 우려와 범죄의 중대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이 같은 피해자 중심의 판단은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ㄱ씨는 가해자를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추가 고소했는데, 검찰은 앞선 법원의 영장 기각 때와 사정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직접적인 위해의 가능성에 대한 체감 수준이 다른 스토킹과 불법촬영을 동일선상에 놓고 판단한 것이다. 경찰은 이후 신변보호 조치를 추가로 시행하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는 그간 역무원의 야간순찰근무에 대한 위험성이 계속 제기됐는데도 관련 대응조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공사는 역무원이 2인1조로 순찰업무를 하게 해달라는 직원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았고, ㄱ씨 역시 피해를 당하던 시점에 혼자서 순찰 중이었다. 가스분사기나 별도의 보호장비 소지에 관한 규정도 없었다. 무엇보다 공사는 가해자가 버젓이 사내 전산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정보를 캐낼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하지 못했다.

앞으로 정부와 국회는 스토킹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조치, 가해자 격리 및 감시 강화 조치 등을 마련하고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 서울교통공사 등 사용자는 직원의 안전과 노동권 보장 방안을 더욱 세심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스토킹 범죄가 심각한 강력범죄라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