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시정칼럼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논설위원 임춘식
  • 승인 2022.11.1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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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논설위원 임춘식

[시정일보] 인생은 잠시 살다 가는 ‘나그네'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종점이 가까워진 노년기 사람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톨스토이(Tolstoy, 1828~1910)의 참회록은 그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그린 고백이다.

어떤 나그네가 광야를 지나가다가 사자가 덤벼들기에 이것을 피하려고 물 없는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하필 우물 속에는 큰 뱀이 입을 벌리고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물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고 우물 밖으로 나올 수도 없게 된 나그네는 결국 우물 안 돌 틈에서 자라난 조그만 관목(灌木) 가지에 매달린다.

우물 안팎에 적이 기다리고 있으니 곧 자신이 죽게 되리라는 것에 두려워하며 매달려 있는 나무를 쳐다본 순간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나뭇가지를 쏠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 손을 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그네는 우물 밑 큰 뱀의 먹이가 될 것이다.

그러던 중 나뭇잎 끝에 흐르는 몇 방울의 꿀을 발견하고는 이를 혀로 핥는 순간, 인간이 산다는 것은 마치 이 모양새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검은 쥐와 흰 쥐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사는 '밤과 낮 시간'을 의미한다. 인생이란 한 70~80년 밤과 낮, 검은 쥐와 흰 쥐가 드나들 듯 시간이 다 지나가 버리면 마침내 매달렸던 가지는 부러지고 인생은 끝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기막힌 나그네의 사연이 우리 인생의 현주소이다.

톨스토이는 우리 인생을 향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지금 아주 맛있는 꿀을 들고 계십니까?’ 그 꿀은 젊은 날의 향기와 인생의 성공으로 인한 '부와 권력' 혹은 '행복한 가정'일 수 있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 번쩍이는 새 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검은 쥐, 흰 쥐 그리고 고개를 쳐든 독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연장선에서 살고 있으며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나 먼저 간 사람을 보면 인생의 죽음이 있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점에서 나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삶을 연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나뭇잎의 꿀을 핥고 있는 나그네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그네가 우물 밖으로 나갈 수 없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이고, 검은 쥐와 흰쥐 때문에 우물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면할 수 없는 미래의 전개될 현실을 의미한다. 다만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죽도록 노력하여 곳간에 금은보화를 들이고 이제 좀 살만하면 모두 놔둔 채 떠나가야 한다. 아이들이 땅뺏기 놀이에 정신을 팔다가 노을이 지면 다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듯이 말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돌리며 남아있는 우리의 날수를 헤아려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인생은 태어날 때 두 주먹을 쥐고 울며 태어나지만, 주변 사람들은 웃으며 축하하고 손뼉을 친다. 그러나 인생의 종말인 죽음 앞에서는 두 손을 펴고 빈손으로 웃고 가지만, 주변 사람들은 슬퍼하며 애도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처럼 인생도 시작과 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출생이고 죽음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사는 나그네 인생은 검은 쥐와 흰 쥐가 쏠고 있는 나무가 언젠가는 부러지면 종말인 죽음이 있음을 알면서도 현실의 만족을 위해 사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나그네 인생은 죽으면 흙으로부터 온 육신은 다시 흙으로 가고 하늘로부터 온 영혼은 다시 본향인 천국으로 간다고 믿으며, 내세는 천당과 지옥이 있는데 선을 행하며 산 인생은 천당으로 가고 죄를 범하고 산 인생은 지옥으로 간다고 믿는다.

따라서 잠시 살다 가는 나그네 인생은 영원한 내세의 준비를 위해 권선징악(勸善懲惡)을 실천하도록 하고 있다. 인생은 태어날 때 가진 자가 되기 위해 태어났고, 초년의 삶은 '가진 자가 되려는 준비단계'로 공부하는 단계이고, 중년은 '직업을 가지고 가진 자가 되려고 일하는' 단계이며, 노년은 '가진 것을 베풀면서 인생을 정리'하는 단계이다. 그러므로 노년의 인생은 가진 것을 보람있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이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한다. 100세 사회의 미래 자화상은 자신이 그려야 한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아름답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한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