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부부의 뒷모습
황혼 부부의 뒷모습
  • 임종선 | 전 광주연초제조창 노조지부장
  • 승인 2022.11.1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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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선 | 전 광주연초제조창 노조지부장
임종선
임종선

[시정일보] 양쪽 발목의 통증으로 지팡이에 의지한 아내의 간병을 위해 걷기운동은 비록 30여 분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건강관리 등 일석이조로 회피할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신혼 후에는 솜털처럼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웠는데, 어느덧 거칠고 메마른 나무쪽 같은 아내의 손을 잡고 아파트 담장 길을 걷고 있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부러움과 격려의 인사를 받을 때마다 흐뭇하고 보람이 있었다.

아파트 주민뿐만 아니라 낯모른 행인들까지 “안녕하십니까? 잉꼬부부처럼 참 보기 좋습니다.”라면서 다정다감한 인사를 받을 때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라고 답례하고 나서는 아파트 내에서 우리 부부가 어떤 유명인처럼 우쭐할 때가 있었다.

간암, 폐암과 투병 중이면서 아내를 간병하고 있는 황혼 부부이지만, 한편 자위를 할 때도 있다. 손을 마주 잡은 우리 부부의 앞모습이 과연 애정이 넘친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여서일까?

보통부부뿐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노사관계 등 사회의 모든 각계각층에서 손을 마주 잡는 모습은 화합과 용서, 이해, 화해한 후에는 보기 좋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우리 사회가 윤리, 도덕, 예절, 준법, 효성심 등 인간의 기본이 어느덧 메말라 버린 것 같은 아쉬운 현실에서 우리 부부의 앞모습이 과연 정겹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친 것이 어쩐지 부담이 될 때도 있었다.

며칠 전에는 낯모르는 청년이 아파트 길모퉁이에서 “70대에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 모습입니다.”라면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가는 우리 부부를 보고 “두 분이 낮에 추어탕이라도 사 잡수세요.”라면서 이만 원을 억지로 내 손에 쥐여준 뒤 돌아서 간 뒤에는, 그의 모습은 아직까지 기억할 수 없었다.

또한, 엊그제는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맞고 산책 중이었는데, 건너편에서 어린 여학생이 노란 우산을 주고는 길 건너로 사라져 버려 주인 없는 노란 우산은 비가 올 때마다 현관에서 주인을 찾는 눈물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지난 5월 21일 ‘부부의 날’에는 우리 노부부의 모습이 더욱 정겹고 사랑스러운 잉꼬부부로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변함없이 아파트 담장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노부부로서의 허무함을 다시 깨닫게 했다.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장미꽃이 아파트 담장을 걸터앉아 봄바람 따라 서로 시샘하듯이 손을 흔들면서 뭇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또한, 봄바람과 함께 합심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 부부에게는 눈길이나 손짓 한 번 주지 않고 고개 숙인 채 외면해 버려 낙조를 향한 황혼 부부의 뒷모습이 더욱 처량하고 애처롭게 생각되었다.

신혼 때부터 가난한 가정에서 네 남매(2남 2녀)의 교육과 지극 정성으로 3대 조상님 봉사하면서도 불편한 기색 한 번 없이 가정을 지켜 왔던 아내를 항상 고맙게 생각하면서 간병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야 할 때 아내의 투병 생활이 안타깝고 요즘에는 아내가 가끔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더욱 애잔하게 생각되었다.

가끔 통증을 호소할 때마다 위로나 위안을 했다. “모든 병세는 날이 저물면 더 심하다네요.”라고 했다. 또한, 날씨가 궂을 때는 “오늘처럼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모든 병세가 좋지 않다고 했어요.”라면서 녹음기처럼 위로하면, 이때마다 신통하게도 통증이 덜 하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허리, 발목 등의 고질병이 나의 아무런 의학적인 근거나 연구나 실력도 없는 문외한의 약 처방이 효력이 있는 현실에 옛날 ‘봉이 김 선달’을 연상하게 했다.

경로당에서 같은 또래의 건강한 회원을 생각하면서는 아내가 혼자만이 겪고 있는 고통처럼 억울해하면서 눈시울을 적실 때는 아내의 모습이 더욱 애처롭게 보였다.

그때마다 “여보, 아직도 당신의 곁에서 내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간병하고 있고 자녀들이 지근에서 정성껏 잘하고 있으니 행복하지 않소?”라면서 위로했지만, 서글픈 아내의 심정을 해소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기약할 수 없는 염라대왕님의 호출이 올 때까지 우리 부부는 삭막한 현 사회에서도 건강 유지하면서 낙조를 향해 뚜벅뚜벅 웨딩마치 하고 있다.

초로인생이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존경받는 인생 여정이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황혼 부부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처량하게 보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