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칼럼/ 이태원 참사가 주는 교훈-설마가 사람 잡는다
시정칼럼/ 이태원 참사가 주는 교훈-설마가 사람 잡는다
  • 최기복 논설위원
  • 승인 2022.11.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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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복 논설위원(충청효교육원 원장)
최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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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생명보험회사는 차익(差益)으로 운영을 한다. 손해보험도 이에 준하여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 예정 사망률이란? 기간 중 몇 명이 죽을 것이냐를 예정해서 그 보다 낮으면 여기에서 남는 것이 사차익(死差益)이다. 다음은 고객으로 받은 보험료를 어떻게 투자해서 얼마의 이익을 얻을 것이냐? 예정 수입보다 더 많이 벌어들이는 것을 이차익(利差益)이라 한다. 세 번째가 보험 모집에 들어가는 예정비용보다 지출이 적으면 여기에서 남는 돈을 비차익(費差益)이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사람들이 모두 생명 보험에 들어 있었다면 보험회사는 문을 닫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보험사는 재보험을 통하여 위험을 분산한다고는 하지만 경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어떤 사태에 대하여 미리 예정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고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이에 대한 총화(總和)다. 참사를 놓고 책임의 공방을 통하여 책임소재를 밝히려 하는 이유는 차후에 동일한 참사가 재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시체의 산더미 속에서 시체 더미를 헤집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송장 더미에서 금이빨이나 금붙이를 수집하고 있었다. 이태원 참사가 어느 정권하에 이루어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세월호 참사가 피워 보지도 못한 꿈나무들의 어린 생명을 앗아 갔음에도 그 과정에서 대처한 비양심적이고 파렴치했던 선장의 인성과 고위층 인사들의 면피를 위한 현장의 진실 호도가 우리를 더 분개하게 한 것이 아니었나.

이태원의 참사는 11월 12일을 기점으로 157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그들 또한 눈물겨운 사연을 가슴속에 한으로 남기고 갔다. 왜 죽어야 하는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살인하면 때로는 사안에 따라 극형을 면치 못함에도 157명의 죽음 앞에 정작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선택한 죽음인 자살도 그 인명의 소중함 앞에 경건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 생각이다.

하물며 사람이 죽어 간다는 절규를 아랑곳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서 당일의 당직을 해태한 경관이거나 한 나라의 안전을 책임진 해당 장관이거나 정보보고 삭제를 시도했던 정보관이거나 왜 모두가 정직 하지 못 하냐이다. 이 나라의 고위 공직자들이 그럴 진데 하위직 공직자나 서민 대중들에게 당신들이 할 말이 무엇인가.

먹고 튀는 재벌 회장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까? 스스로 반성문조차 한 장 써 보지 못한 정치권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세월호 참사 때는 무엇을 했으며 이태원 참사를 놓고 공방을 논할 자격들이 있는가를 묻고 싶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념과 독재의 노예상태에서 굶주리고 헐벗으며 기아에 허덕이는 언젠가 둑이 터질 이북 관계에 대하여 진실로 고개를 마주하고 허심탄회하게 미래를 준비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다. 저 출산 고령화 문제로 인구 제로를 향해 가고 있는 대한민국호의 난파를 예상하고 있는지? 그 대안을 묻고 싶다.

인류 멸망을 예고하고 있는 기후 온난화와 기상 이변에 대하여 정치권은 무엇을 예상하며 국제화에 함께 할 행보에 대하여 합의하거나 총화 할 생각은 있는지? 당신들의 정체성에 회의를 갖고 있는 모든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신뢰를 보여주기 바란다. 패륜, 패역 범죄가 극성을 부리는 상황을 그저 인간 사회에 그런 일이야 있기 마련이라는 안일한 대처 의식이 이 나라 국민의 정체성이 되어 버린다면 짐승 사회만도 못하게 될 것이다.

효가 사라지고 도덕이 패륜으로 무장되는 사회에 책임과 의무가 사라지면 약육강식의 시스템만 존재하게 된다. 보험회사가 보험을 권유하면서 고객의 보험료를 관리하며 미래를 차익으로 경영을 한다.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나라를 경영한다. 항상 미리를 대비하고 알뜰하게 경영하되 왜 존재해야 하느냐 하는 정체성에 회의를 갖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