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개념이 없는 현상들
기고/ 개념이 없는 현상들
  • 임종은(전 한국문학신문 편집국장)
  • 승인 2022.12.0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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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은 | 전 한국문학신문 편집국장
임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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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집 주변에 탄천이라는 하천이 있다. 예전부터 산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천인데 도시가 들어서면서 자치단체에서 산책로를 조성하여 사시사철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용되고 있다.

산책로 노면이 평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잘 걷는 사람은 2∼3시간도 거뜬히 걸을 수 있는 거리이며, 노약자도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 옆으로는 자전거 길도 따로 조성되어 있다. 또 탄천을 따라 산과 공원이 같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도심의 어떤 산책로보다 공기가 쾌적한 편이다.

걷다 보면 곳곳에 잉어 때가 20∼30마리씩 때 지어 헤엄치다가 사람이 다가서면 입을 벌름거리며 모여드는 모습이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봄이면 주변 언덕에 벚꽃이 만발하여 어느 유원지 못지않게 절경을 이룬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천국이 따로 없다고 감탄하곤 한다.

산책로에 낮 시간에는 한가한 편이나 아침저녁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붐비고 혼잡하기 때문에, 도로 위에 ‘우측보행’이라는 글씨와 함께 화살표까지 페인트로 크게 그려서 약 50m마다 볼 수 있게 하였으며, 가까운 곳은 30m도 안 되는 곳에 그려 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붐비는 시간에는 오는 사람과 가는 사람이 서로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몸을 다치거나 서로 다투는 일은 없지만, 기분 좋게 경치에 취하여 걷다가 부딪히게 되면 분위기가 사라지며 짜증 날 때가 있다.

곳곳에 ‘우측보행’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데도 전혀 무신경한 듯하여 이해할 수가 없다. 수년 전부터 자치단체에서 예산을 들여 써 놓았지만 끈질기게 이를 무시하면서 ‘좌측보행'으로 흐름을 막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미스터리한 일이다. 흔히 말하는 ‘연구대상’이 아닌가 싶다.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직 한글을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개념이 아예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산책할 때마다 당하는 현상이지만 이들이 개념을 찾을 때까지는 당분간 별다른 대책이 없을 듯하다.

이렇듯 무개념인 경우가 또 있다. 휴대폰을 통해 주고받는 대화창인 단체 카톡방 즉 카톡(Kakao Talk)방에서의 무개념 사례이다.

단체 카톡방에서는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대화와 소통을 위한 공간인 만큼 일정한 예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비대면의 공간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무례한 글을 올려서 물을 흐리는 사람이 종종 있다.

일정한 단체나 공동체의 소통과 연락을 위하여 카톡방을 개설할 경우, 대개 정치적인 문제나 종교적인 글은 자제하도록 하는 불문율이 있다. 왜냐면 개인적인 생각이나 취향이 서로 다를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위화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는 주관자가 미리 협조를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나 끈질기게 자기의 정치적인 견해나 유튜브 등에서 떠도는 가짜 뉴스를 열심히 퍼 나르며, 많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 어느 방에나 몇 사람은 존재한다. 이들은 산책로에서 개념 없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과 유사한 유형이다.

동료이거나 친구 사이인 경우에는 그나마 이해할만하다. 일정한 목적으로 모인 공동체의 단체 대화방의 경우는 초대된 대상이 다양하여 사회적 저명인사도 있고 학식과 교양이 높은 품격 있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카톡방에서는 꼭 필요한 전달 사항이나 사업의 목적에 부합한 내용이 아니면 자제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글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사리 판단을 못 하는 철부지처럼 매일 비슷한 글을 올리는 사람이 많다. 예컨대 ‘인생이란 …, 이렇게 살아야 한다.’, ‘행복이란 …인 것이다.’ 등등 좋다는 글을 나열해서 바쁜 사람에게 짜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인 입장에서는 마음에 와닿는 좋은 글이라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겠거니 하지만, 이런 부류의 글은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문지방이 닳도록 흘러 다니던 쓰레기 같은 글일 수 있다.

또 그 글을 읽는 사람 중에는 학문적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석학이나, 원로 중진, 또는 희로애락을 다 겪은 인생의 대선배가 많다. 그런데도 개념이 없이 매일 반복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을 올려 카톡방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이십 대 인생의 철부지 대학생이 고명한 원로 철학 교수 앞에서 ‘삶이란 … 것입니다.’ 운운하면서 설득하려 한다면, 이는 무개념의 극치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래된 속담 중에 ‘공자문전 독매경(孔子門前 讀賣經)’이라는 말이 있다. 즉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 라는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가소롭게도 자기보다 유식한 사람 앞에서 아는 체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니,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성철스님의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 ‘어려움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많이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이다.’ 명심보감에도 ‘확실하게 듣고, 분명하게 보며, 생각이 슬기롭더라도 어리석은 듯 살아라.’라는 말이 있다.

또 주역에도 ‘굴기하심으로 나를 낮추어 마음을 겸손히 하면 남들이 존경하게 되고, 굴기 상심으로 나를 높이려 한다면 남들은 오히려 무시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항상 어눌한 듯, 부족한 듯, 겸양의 도를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극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명의 이기인 휴대폰을 통해 필요한 연락이나 정보를 소통하고 공유하면 그 역할은 충분하다. 카톡을 보아야 하는 상대방 중에는 정말로 바쁜 사람이 많다. 진정으로 자제할 수 없다면 유유상종하는 몇 명 친구끼리 만 카톡방을 만들어 마음껏 해소하면 된다.

그리고 일정한 공동체의 카톡방에서는 여러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제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필요한 정보만으로 소통의 장을 활용해 나간다면 친밀감 속에 삶에 활력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산책로에서나 카톡방에서의 작은 배려가 생활 속에서 밝고 선한 바이러스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배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정이 담겨 있으며, 배려 속에는 양보와 나눔, 희생과 사랑, 친절과 포용, 그리고 겸양의 정신이 베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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