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1 온전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인문학 산책/ #1 온전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 현외성 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 승인 2022.12.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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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외성 | 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사회복지학 박사
현외성 연구원장
현외성 연구원장

[시정일보]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희노애락이 있고 오르막도 내리막도 있다. 나에게는 평생을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하루하루 계획되고 주어진 일상의 행로로 가지만, 때로는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 때, 문득 새벽시장을 생각하며 일어나 그곳을 향한다.

바닷가에 있는 마산의 새벽 어시장은 인근 바다에서 어부들이 갓 잡은 생선들을 경매하는, 경매인의 특유한 목소리와 낙찰받으려는 도매상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생선을 흥정하는 상인들과 손님들의 이야기 소리 등이 어우러져 왁자지껄하다.

거기에다 리어카 끄는 소리, 자전거 소리, 화물차의 클랙슨 소리 등이 섞여 내는 소리는, 살아 숨 쉬는 인간의 냄새가 섞인 소리,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소리이다.

그리고 살아 팔짝팔짝 뒤는 생선들과 첨벙거리는 물소리, 그리고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바다 수면으로 앉았다 날아다니며 내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는, 새벽 어시장으로 하여금 활력의 장소로 만드는 생명의 약동하는 힘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속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의 존재가 살아 있고 움직일 수 있음을 체험한다. 아침 해가 바다 저편 산 위로 솟아오르고, 나는 새벽시장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군중 속을 걸으면서 비릿한 어시장의 생명의 호흡을 깊게 호흡하며 활력을 받아, 새로운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일상으로 돌아온다.

파커 파머(Palmer)는 미네소타주와 온타리오주의 경계를 잇는 100만 에이커의 미개척지 바운더리 워터스에서, 그 자연이 가진 물·바위·숲·하늘로 이루어진 순박한 세계에서 영적으로 거룩한 땅으로 가는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다.

파머는 토머스 머튼이 “모든 사물 속에 온전성이 감추어져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바운더리 워터스 지역에 있는 야생딸기의 맛, 햇볕에 말라가는 소나무 향기, 북극광의 광채, 해안을 철썩이는 바닷물 소리 등의 영원하고 의심할 여지 없는 자연의 모습에서 온전함(wholeness)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여행에서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면 ‘내면의 빛이 사라질 것’이고, 또는 ‘내면의 어둠이 드러날 것’이라고 하며 참된 정체성(identity)을 숨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과 분리되며, 그래서 분리된 삶을 살며, 그 존재 자체의 성실성(integrity)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진실에서 멀어진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 온전성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점차 성장하는 과정에 ‘분리된 삶’의 외부 환경에 적응하면서 분리된 삶을 살아 ‘온전한 삶’에서 멀어진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하여 마음의 벽을 쌓고 자신의 진실을 숨기며 ‘거짓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 거짓 삶, 분리된 삶은 사회적 병적인 현상으로 발전한다.

우리는 자신의 거짓 삶으로 인한 마음의 병을 치료하여 보다 온전해지기 위하여, 세상이 좀 더 온전해지고 세상 사람들이 분리된 삶을 벗어나기 위하여, 필요한 개인적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두려움과 맞닥트리는 용기’와 사회적으로는 진정한 신뢰 관계로 형성된 커뮤니티, 즉 ‘신뢰 서클’을 만들어 활용하는 일이라고 파머는 말한다.

파머는 분리된 삶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삶에서 무언가 잃어버렸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것을 찾아 세상을 헤매고 다닌다.

내면의 어둠을 다른 이들에게 투사함으로써 그들을 ‘적’으로 만들고 세상을 위험한 장소로 만든다. 거짓과 투사 때문에 진정한 관계를 찾지 못하고 고독해진다.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한 세상에 대한 공헌이 이중성에 의해 더럽혀지고, 생명을 주는 참 자아의 에너지마저 빼앗긴다. 그리하여 파머는 분리된 삶의 모습은 개인의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로 확산된다고 한다.

예컨대, 정치지도자들이 ‘갈라진 혀’로 말하면 그것은 곧 시민들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분리되지 않는 삶’, ‘참 자아’(퀘이커 교도들은 ‘내면의 빛’, 유대인들은 ‘신성의 불꽃’, 불교에서는 ‘본성’, 인본주의자들은 ‘정체성과 성실성’, 일반인들은 ‘영혼’이라고 부른다.)에 충실한 삶, 온전한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파머는 우리가 내면의 빛, 영혼이 조용히 끊임없이 분리되지 않는 삶, 온전한 삶으로 돌아오라고 부르는 소리에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깨어있고 외부의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내면의 빛, 영혼, 참 자아에 대한 의식을 확장하도록 돕는 ‘진실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파머는 신뢰 서클을 이야기하는데, ‘신뢰 서클’이라는 커뮤니티는 ‘홀로 함께’의 생각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지원해서 영혼이 진실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사람들이 각자 내면의 교사에 귀 기울이도록 돕는 공동체를 말한다.

파머는 사람들이 내면의 빛, 영혼의 안내에 따라 온전한 삶을 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다시 태어나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너무나 감동적으로 읽었던, 여전히 그 떨림이 가시지 않는, 단테의 『신곡』을 생각한다. 단테는 그의 『신곡』 첫머리에서, ‘우리 인생의 반 고비에 /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라고 고백하였지만,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면서 마지막에 영원한 빛, 은총의 빛, 사랑의 빛 속에서 다시 올바른 길을 찾아 온전한 삶을 능히 회복하였으리라!(단테는 신곡 완성 후 곧 사망하였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과연 영혼의 소리, 내면의 빛—성령님의 인도하심, 말씀의 선택—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또 얼마만큼, 어떻게 인정하고 따르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나는 지식과 이성의 한계, 경험과 영성의 애매성, 철학 인문학과 믿음의 경계 선상에서, 교회 공동체와 지체들 사이의 어려움 사이에서, 그리고 직업과 생활 현장에서, 참 자아의 삶, 분리되지 않는 삶,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개인적으로는 용기를 가지고 두려움 없이 깨어있는가, 집단적으로는 타인에 대해서 ‘홀로 함께 있음’ 속에서 배려하고 조용히 기다려주고 웃음과 유머로 신뢰 서클의 구성원으로서 살고 있는지를 자문해본다.

우리는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직장에서 온전한 삶과 거짓의 삶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십자가의 길 좁은 길은 세상의 유행과 세상의 풍조와 구별되는 삶의 여정이다.

온전한 삶을 이해하는 인문학적인 통찰력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올바른 삶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해준다는 관점에서 기쁨이고 축복이다. 많은 사람이 세상 풍조를 따르는 넓은 길을 갈 때, 인문학적 지혜를 가진 예수님의 제자는 좁은 길에서 내면에 울려 퍼지는 영혼의 아름다운 소리와 빛을 경험하면서 ‘홀로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참 자아를 만난다.

그리하여 그 풍성한 사랑과 회복의 능력으로, 참 자아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발견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조용히 관용하며 기다린다.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에 동참하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