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3 좋은 삶,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인문학 산책/ #3 좋은 삶,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 현외성 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 승인 2022.12.2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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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외성 | 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사회복지학 박사
현외성 연구원장
현외성 연구원장

[시정일보] 100세가 넘은 김형석 교수의 강연과 글이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원로 학자, 철학자의 말과 글이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가 100세에 이르도록 자기관리를 잘해서 건강을 유지하면서 지적 활동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다른 사람들이 가보지 않은 100세의 삶을 살면서 자기가 경험하고 학습하고 생각한 내용을 풀어내기에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본다.

최근 그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100년을 살아보니 절대 행복할 수 없는 두 부류가 있다고 말했다.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과 이기주의자라고 하였다.

물질적 가치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정신적 가치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 돈, 권력, 명예를 가져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질적 가치만을 좇는 사람은 소유욕만 있어 끝없이 허기진 채로 살아 만족을 모르지만, 정신적 가치를 가진 사람은 만족할 줄 알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기주의자 역시 행복해질 수 없는데, 이기주의자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챙기기에 더 큰 그릇인 인격을 갖추지 못하므로 행복을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이므로 그 그릇에 행복을 담을 수 없다. 행복은 오늘날에만 사람들이 특히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에서 행복에 대해서 연구하고 대화하고 기록을 남겼다.

물론 신학, 철학, 문학, 심리학, 사회과학 심지어 뇌과학과 같은 자연과학에서조차 학문적으로 행복에 대한 탐구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2,500년 전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당시 학문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고, 그가 남긴 수많은 글과 저작들이 현대사회에 철학을 위시한 제반 학문의 기초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분야에서 400여 편의 글을 썼다고 하나 지금은 50여 편 정도 남아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집필한 책은 범주론, 명제론, 분석론, 변증론, 궤변론, 형이상학, 자연학, 천체론, 생성과 소멸에 관하여, 기상학, 혼에 관하여, 정치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에우데모스 윤리학, 대윤리학, 시학, 수사학 등 이루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인생의 후반기에 부인 퓌티아스가 죽고 난 후 시중을 들던 헤르퓔리스와 살면서 태어난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준 글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말하고자 했던 내용은 ‘행복’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이 행복은 쉽게 획득되는 주제가 아니다. 그리스 철학에서 행복은 소크라테스 때부터 논의되어왔던 아레테(aretē, 덕, 미덕, 탁월성)와 관계되어 있다. 즉 행복은 아레테(미덕, 탁월성)를 발휘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아레테는 영어로는 virtue로 번역될 수 있는데, ‘좋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가토스(agathos)’에서 나온 말이다. 아레테는 ‘좋은 상태(goodness)’ 혹은 ‘탁월성(excellence)’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자신이 맡은 고유한 일이나 기능을 잘 수행하는 사람을 아레테, 즉 미덕을 갖춘 사람, 탁월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미덕, 탁월성을 실행하고 실현하는 사람이 ‘좋은 삶’ 혹은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일시적인 육체적 물질적 쾌락은 진정한 행복이 못 된다고 하면서 행복은 결국 미덕(탁월성)의 삶을 살 때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미덕은 다시 2가지 종류의 미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도덕적 미덕이요, 다른 하나는 지적 미덕이다. 전자의 도덕적 미덕은 2차적 하위의 행복으로써 삶의 현장에서 이성에 따른 자발성과 숙고를 통한 합리적 선택으로 만들어지며 이는 중용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삶을 살 때 행복과 연결된다고 하였다.

이 중용의 삶은 감정과 행위와 관련된 것으로서 개인적 윤리학에서 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며 사회적 공동체 내에서 우애와 정의를 실현하는 일과 관계되며 법률로 표현되어 이는 결국 정치학의 과제가 된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후자의 지적 미덕이야말로 최상의 미덕으로서 가장 높은 행복과 직결된다고 하였다. 지적 미덕은 다시 2가지로 분류되는데 관조와 지혜이다.

먼저 지혜는 관조에 비해 하위의 미덕으로서 삶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실천 지혜(phronesis)인데, 숙고할 수 있는 사람이 실천적 지혜를 가졌다고 말한다.

한편 철학적 지혜는 지성과 학문적 인식을 합친 것이며 가장 소중한 진리들에 대응하는 최정상의 학문적 인식이다. 최상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최상의 미덕은 지적 미덕 중 관조의 미덕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관조의 미덕은 우리 안에 있는 지성 중 최고 부분이고 최고 활동이다. 또한, 관조는 자족적이고 지속적이다. 철학적 지혜를 가진 사람은 혼자서도 관조할 수 있으며 지혜로울수록 그러하다. 이는 더 나아가 신적인 삶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목적을 추구하기보다는 인간이 본연의 자리, 자신의 역할과 가치를 발휘할 때, 즉 그리스 말로 아레테(미덕, 탁월성)를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개발하고 실현해 나아갈 때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아레테를 갖추기 위하여 노력해야 함은 물론 국가 사회적으로도 법률로 또는 교육적으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윤리학은 정치학과 연결된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노력이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는 뜻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구를 남겼다.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고 하루아침에 봄이 오지 않듯, 사람도 하루아침에 또는 단기간에 행복해지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이 가진 건강이나 물질적 기반과 사회적인 환경으로서 법률적 도덕적인 기반 그리고 교육과 정치 역시 행복에 중요한 요소로 부정하지 않았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복과 아레테의 삶을 이해하고 도덕적 지적 미덕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영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풍성하고 놀라운 세계를 탐구해가는 여정에서 세상에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성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다. 이성을 통해 도덕적 지적 미덕을 발휘하는 아레테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인 감리교회는 성경을 중심으로 이성, 전통, 체험을 근간으로 하는 특징에서 이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특별히 사회적인 지도층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사회구성원들이 개인적으로 행복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덕적 미덕과 지적 미덕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갈 책임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만드셨다. 사람마다 다양한 특성과 달란트를 부여받았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체는 아름답게 성장하고 열매 맺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체에 탁월성과 미덕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본질적 속성을 그 생명체 씨앗 속에 담겨놓으셨고 돌보신다. 행복은 이 신비와 비밀을 알아가고 그 속에서 기쁨과 감사와 자유와 찬양이 저절로 나오는 데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