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하늘의 왕 독수리
인문학 산책/ 하늘의 왕 독수리
  • 임재택 전 문태고등학교 교장
  • 승인 2023.01.0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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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택 전 문태고등학교 교장

[시정일보] 황금독수리 수명은 70년 이상이지만 생의 전부를 계속해서 기운차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 20년이 지나면 힘이 빠지고 부리는 굽어져 가슴 쪽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나머지 50년을 더 버틸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독수리 나이 스무 살 즈음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됐을 때 주저 없이 깊은 산 속, 절벽 틈바구니를 찾아 자신의 부리로 깃털을 모두 뽑아버린 다음 발톱과 부리마저도 바위에 문질러 뽑아버리는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무려 50일 이상 바위에서 떨어지는 이슬만 먹고 살아간다. 그런 후 신기하게 다시 새 깃털과 날카로운 부리, 발톱이 자라기 시작해 용맹스러운 독수리 모습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누구도 쉽게 찾아갈 수 없는 깊은 산, 높은 절벽에서 그토록 외롭고 처절한 변신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는다. 성년의 나이에 가장 고통스럽고 고독한 변신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인생이 어쩜 독수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생애에 고통을 감수하며 변신을 시도했던가? 세상을 산다는 건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이든 위용을 자랑하며 하늘을 지배하는 독수리든 간에 그리 만만치만은 않은 듯하다.

스스로의 육체적 변화와 더불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불안정성과 서민경제를 불안하게 하는 갖가지 위기들 또한 불확실 속에 잠복되어 있다. 더구나 급격한 사회변화는 적응하기마저 어려운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우리를 마치 시험대상으로 삼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삶의 위기를 그저 바라만 볼 수만도 없잖은가. 황제 황금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위용 뒤에는 뼈아픈 고통을 겪어야 했듯이 우리네 삶도 어느 시기엔 모든 것을 잠시 접어둔 체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요즘 들어 경제‧사회 환경의 혼란 속에 청년실업 문제가 양산되어 스스로를 구속해버리거나 패배주의에 젖어 미래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잖아 보인다.

나름대로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고자 도전하는 이들의 피나는 노력의 흔적도 많지만, 도전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순간에 타협하며 오직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인생에 대한 비전도 없는 즉흥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 또한 흔하게 볼 수 있어 안타깝다.

갓난아이가 첫걸음마를 배울 때 수없이 넘어지는 시행착오를 겪듯 황금독수리인들 첫 날갯짓이 쉬웠을까. 또 다른 삶을 위해 찾아야만 했을 깊은 산, 높은 절벽의 생활이 두렵지 않았겠는가.

새로운 삶을 위해 자기 자신을 감싸고 있는 따뜻한 깃털을 스스로 다 뽑아버린 뒤 느꼈을 두려움과 발톱과 부리마저 바위에 문질러 뽑아내며 느꼈을 고통, 50일 동안이나 바위에서 떨어지는 이슬만 먹으며 춥고 배고픔을 참아낸 인내를 가졌기에 낡고 구부러진 부리와 힘없는 발톱을 버리고 날카로운 부리와 힘찬 발톱을 얻었다.

우리는 물질문명의 발달만큼이나 오히려 역의 방향으로 정신적 가치가 후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수년 전 올림픽경기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아프리카의 어느 한 나라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했던 마라톤선수가 자기네 나라에서는 우수한 성적으로 뽑혀 올림픽에 출전했겠으나 세계수준에는 한참이나 미달됐던 모양이다.

더구나 경기가 있던 날, 컨디션마저 난조를 보여 본인의 실력에 훨씬 못 미치는 기록으로 질주하였다. 이미 마라톤경기는 끝나버린 것 같은 분위기로 인도엔 응원 나온 관중들마저 보이질 않았다.

마지막을 따르는 진행 차와 함께 최종규정시간 이전에 간신히 도착한 그 선수에게 취재기자 몇 명이 선수를 이상히 여겨 질문을 던졌다. “아니 어차피 순위에 못 들어올 줄 알면서 왜 중도에 기권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 선수는 당당히 “우리나라 국민들은 내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떠나올 때 출발선을 밟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며 마지막까지 결승선을 밟으라고 보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고통도 이겨야 했고, 그래서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끝까지 뛰었노라.”라고 답했다.

42.195Km를 달리며. 그것도 컨디션 난조 속에 그가 가졌을 번뇌는 오직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일념으로 극복했으리라. 한국 경제에 닥친 위기가 심각하다. 쉽게 회생될 기미마저 보이질 않는다. 지표상으로야 서민들이 느끼는 고통은 겨울 날씨만큼이나 혹독하니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