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구호뿐인 안전사회, 언제까지 봐야하나
사설 / 구호뿐인 안전사회, 언제까지 봐야하나
  • 시정일보
  • 승인 2023.01.0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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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경기도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 나들목(IC) 인근 방음터널 화재로 5명이 목숨을 잃고 41명이 다치는 어이없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날 화재는 폐기물 수거용 집게트럭 엔진에서 발화한 뒤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polymethylmethacrylate, PMMA) 재질인 터널 벽으로 옮겨 붙으며 삽시간에 터널 안이 화염에 휩싸이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번 사고 역시 인재가 아닌가 싶다. 화재 시 작동해야 할 터널 진입 차단 시설도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화전·스프링클러·환풍기 등 소방·제연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방음터널 830m가 일반 플라스틱보다는 열기에 강하다고 하지만 불에 타지 않는 불연재가 아닌 강화 플라스틱인 PMMA로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PMMA는 인화점이 280℃에 불과해 터널 안에서 차량 화재가 발생할 경우 불쏘시개 역할을 해 불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 터널 내에서 불이 나면 열과 유독가스가 빠져나갈 수 없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행 방재 규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방음 터널을 불연성 소재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관련 규정조차 없다는 데 그 문제점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특히 방음터널은 일반 터널로 분류되지 않아 소방 설비의 설치 의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시설물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대상에서도 제외돼 안전 규정도 없고 관리도 되지 않은 일종의 안전 사각지대가 아닌가 싶다.

방음터널 소재가 위험하다는 지적을 지난 2012년 한국도로공사는 PMMA의 화재 가능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는가 하면 2년여 전에도 경기도 광교 근처 고가도로 방음터널을 지나던 승용차에 난 불이 방음벽으로 옮겨 붙은 사고가 발생했다.

또한 감사원도 지난해 말 방음터널 방음벽이 화염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벌써 여러 차례에 걸친 이러한 경고와 사고들이 지금까지 무시돼 결국은 이번 대형참사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1999년 제정된 도로설계편람에 규정됐던 방음판의 재질 기준(불연재·준불연재)이 2012년 개정판에서 삭제돼, 환경부고시 제2002-184호 제16조(방음벽 설치 시 준수사항)를 보면 내구성, 도장부 손상, 녹 발생, 방음판의 비산 등 1호부터 7호까지의 안전에 관한 내용 중 화재에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다. 이에 대한 설치기준을 조속히 보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주민들의 민원에 못 이겨 우후죽순 방음벽 설치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내화성에 대한 기준 등 전반적인 안전기준을 철저히 재검토해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