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 #6고통을 의로움으로 승화시키다
인문학산책 #6고통을 의로움으로 승화시키다
  • 현외성 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 승인 2023.01.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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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외성(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사회복지학 박사)
현외성 연구원장
현외성 연구원장

[시정일보] 삶은 희로애락의 연속과 반복이다. 우리들이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 국가적으로 발생하여 때로는 슬픔을 때로는 고통과 근심을 때로는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한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우리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그저 일상의 주어진 행로를 따라 살다가 문득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비극이란 ‘슬프고 비참한 사건, 사고’를 의미하는데, 특히 현대 연극이나 오페라 등에서 말하는 비극이란 ‘인생의 슬픔, 고통, 어리석음 등을 소재로 하여 주인공의 억울함, 죽음, 파멸, 패배 등의 결과를 가져오는 형식’을 뜻한다.

사람들이 비극작품을 보거나 읽으면서 주인공이 직면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통해서 같이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갖는다. 그래서 비극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인간의 존재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카타르시스(정화)적인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각종 비극작품은 그리스 비극에서 생겨났다. 그리스 비극은 서양 인문학의 뿌리이면서 연극, 혹은 뮤지컬이나 오페라의 원형으로 간주되고 있고 많은 문학과 예술, 철학 등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 신화와 연루되어 발전하여왔는데, 인간의 고통과 고난, 운명이 자신들이 항거할 수 없는, 인간의 능력 범위 밖에 있는 알 수 없는 신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스 비극은 관객이 비극작품을 관람함으로써 관객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인식과 성찰’, 즉 인생에 대한 ‘지혜’를 갖게 한다. 그리하여 비극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화되고 새롭게 깨우친 생각’을 가지고 일상생활을 한층 생기 있고 활발하게 살아갈 생명력을 갖게 한다.

비극은 비극 관람을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새롭게 태어나게 하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 한 사람인 아이스퀼로스(BC 525~455)의 작품인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는 매우 유명한 비극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를 도와 티탄신족을 이겨 제왕신이 되게 하였던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몰래 불을 훔쳐서 사람들에게 가져다줌으로써 처벌을 받게 된다.

제우스의 명령에 따라 ‘헤파이스토스 신’이 ‘힘과 폭력’의 도움을 받아 프로메테우스를 세상의 끝에 있는 카우카소스산의 절벽에 결박하여 고통을 당하게 한다.

연극의 첫 장면은 ‘힘과 헤파이스토스 신’이 프로메테우스를 절벽에 결박하면서 나누는 대화로 시작한다. 힘이 말한다. “헤파이스토스여 그대는 어서 아버지의 명령을 이행하시오. 여기 이 주제넘은 자를 강철 사슬의 부술 수 없는 족쇄로 높고 가파른 바위에 붙들어 매란 말이오. 그자는 그대의 꽃을,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불의 광채를 훔쳐내 필멸(必滅)의 인간들에게 주었기 때문이오. 그 죗값으로 그자는 신들에게 벌 받아 마땅하오. 그래야만 그자는 제우스의 통치에 순응하여 인간을 사랑하는 태도를 버리는 법을 배우게 될 테니까요.”

힘, 폭력 및 헤파이스토스가 떠나고 난 뒤 프로메테우스는 침묵하고 있다가 입을 열어 비참하고 억울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때로는 제우스에 대항하여 자신의 운명을 견디어 내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제우스의 적이 되고, 제우스의 궁전으로 들어가는 모든 신에게 미움받는 이 모습을!” “나는 의도적으로 잘못했고, 그랬음을 부인하지 않겠소. 인간들을 도와줌으로써 나는 고난을 자초했소.”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불과 함께 사고력과 지적 능력을 주고, 수(數)를 발명케 했고 문자의 조립도 찾아주고 예술이 되게 하였다. 수레를 발명하고 짐승들에게 멍에를 지우게 하는 기술들을 가르쳐주었다.

또한, 온갖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들을 섞는 방법 그리고 점술과 전조 등 온갖 기술들을 가르쳐주었다. 연극의 장면이 바뀌어 코러스를 구성하는 오케아노스의 딸들과 오케아노스가 절벽에 매달려 있는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깊은 동정심에서 날개 달린 수레와 말을 타고 등장하여, 제우스에게 양보할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 다음 장면에는 ‘이오’가 무대 위에 뛰어든다. 그녀는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로 인하여 헤라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어 암송아지로 변신한 채 ‘쇠파리’와 ‘천 개의 눈을 가진 감시자인 아르고스’로부터 쫓김을 받으며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녀의 미래를 예언하던 중 제우스로부터 똑같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자신과 그녀 사이를 이어줄 인연에 대하여 밝힌다. 즉 나일강 변에서 제우스는 가벼운 접촉을 통하여 그녀에게 본 모습을 돌려주고 어머니가 되게 하는데, 바로 그녀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 가운데 한 명인 헤라클레스가 그의 고통을 끝내주게 된다는 것이다.

이오가 떠난 뒤 프로메테우스는 이러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제우스에 대하여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제우스에게 치명타가 될 어떤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코로스에게 밝힌다.

즉 제우스가 맺게 될 어떤 결합에서(여신 테티스(Thetis)와의 결합을 말한다.) 더 강력한 아들이 태어나 마치 제우스가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쓰러뜨렸듯이 제우스를 쓰러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제우스가 올림포스(Olympos) 정상에서 이 말을 듣고 헤르메스를 보내 비밀을 알아내도록 한다. 헤르메스가 프로메테우스를 위협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먼저 아버지께서는 이 들쭉날쭉한 암벽을 천둥과 벼락의 화염으로 부수어 그대를 땅속 깊이 묻으실 것인데, 그러면 바위가 팔을 구부려 그대를 껴안게 될 것이오. 긴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그대는 햇빛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오. 그러면 제우스의 날개 달린 개가, 피투성이가 된 독수리가 게걸스럽게 그대의 몸을 큼직큼직한 고깃덩어리로 갈기갈기 찢게 될 것인데, 이 불청객은 날마다 다가와 그대의 까매진 간을 포식하게 될 것이오. 게다가 그대는 그런 고문이 끝나리라고 기대하지 마시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헤르메스를 통한 제우스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결연하게 말한다. “그가 전하기 전에 이미 나는 전언을 알고 있었소. 서로 미워할 경우 적의 손에 고통당하는 것은 치욕이 아니오. 그리고 그가 내 이 몸을 필연의 세찬 소용돌이와 함께 캄캄한 타르타로스로 던지려무나! 그래도 그는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오.”

프로메테우스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결박된 암벽이 무너져 심연 속으로 사라진다. “이젠 말이 아니라 실제로 대지가 요동치는구나. 그에 맞춰 지하로부터 천둥이 으르렁거리고, 벼락이 작렬하며 뒤틀리고 번쩍이는구나. 회오리바람이 먼지를 빙글빙글 돌리고, 온갖 바람의 입김들이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서로 격렬한 내전을 벌이는구나. 하늘과 바다가 뒤섞여 하나가 되는구나. 그처럼 격렬한 기운이 제우스로부터 눈에 보이게 나를 향해 다가오는구나, 나를 겁주려고. 오오, 존경스러운 어머니 대지여! 오오, 우리 모두를 비추도록 해를 굴려주는 하늘이여, 그대는 내가 얼마나 부당하게 고통당하고 있는지 보고 있나이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 나타난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극적 운명 때문에 고통받는 인물과는 달리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야기된 고난과 고통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아이스퀼로스는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하여 승리와 자유를 쟁취하였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아테네 사회에 새로운 자유의 정신을 전하기 위하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힘이 중요하다는 시대정신을 담기 위하여, 제우스의 힘과 폭력에 대항하여 파멸하는 프로메테우스를 비극화하였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