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산책#7 인간의 어리석음과 과오가 빚어내는 비극
인문학산책#7 인간의 어리석음과 과오가 빚어내는 비극
  • 현외성(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 승인 2023.01.1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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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외성(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사회복지학 박사)
현외성 연구원장
현외성 연구원장

[시정일보] 연극에서 비극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슬픔과 비참함을 내용으로 하는 극을 말한다. 연극에서 비극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고 특별하기 때문에 연극이 오랫동안 존속하고 있다.

연극의 주인공이 경험하는 비극적 내용과 결말을 관람하면서 관객들이 공감함으로 함께 슬퍼하고 문득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존재의 본질’을 체험하는 ‘카타르시스’(정화)를 제공하기 때문에 비극이란 연극에 열광한다.

비극을 통해 잠시나마 껍데기의 일상성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본질, 특성 속으로 들어가서 진실한 측면을 직면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 비극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비극이 처음으로 시작된 그리스 시대 비극은 인간을 운명을 지배하는 신들의 계획에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면서도 그 운명에 용감하게 맞서는 영웅들의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중세 말기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인 1606년 즈음에 집필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개인의 과오와 어리석음으로 비극이 시작되고 그 결과를 비참하고 슬프게 맞이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극은 인간 자신의 한계와 결함으로 인하여 비롯되어 자신과 관련된 여러 인간관계에서 미움, 욕망, 분노, 거짓, 모략, 폭력, 음모, 질투, 죄악 등이 결합되면서 파국으로 치달아 마침내는 전쟁, 비참함, 죽음으로 결말을 맞이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어쩌면 인생살이 자체가 비극적인 특성을 가진 것이 아닐까. 우리들이 인생이라는 연극의 무대 위에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살아가는 연극의 다름 아닐까?

영국의 리어왕은 80이 넘은 늙은 임금이었다. 리어왕에게는 아름다운 3명의 딸이 있었다. 올버니 공작부인 거너릴, 콘월 공작부인인 리건, 그리고 프랑스 왕과 버건디 공작의 구혼을 받고 있었던 코델리아 공주들이었다.

어느 날 리어왕은 모두를 불러놓고 자신의 계획을 발표하였다. “왕국을 셋으로 나누고, 이제 모든 어려운 국사를 늙은 왕의 어깨에서 젊고 기운 있는 사람들에게 넘기고, 홀가분한 몸으로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싶다. 국가의 통치권과 영토소유권, 행정 관리권 등을 벗어버릴 작정이다. 대체 너희 중에 누가 제일 이 아비를 사랑하고 있는지 말해봐라.”

첫째 딸 거너릴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버님을 사랑합니다, 제 눈에 보이는 기쁨보다도, 무한한 공간보다도, 자유보다도, 값지고 희귀한 그 무엇보다도, 생명보다도, 사랑과 미와 건강과 명예가 구비된 생명보다도 소중한 분으로서 아버님을 모시겠습니다.”

둘째 딸 리건도 유사하게 사랑을 표현하였다. 셋째 딸 코델리아는 언니들과는 달리 아무 할 말도 없다고 말하면서, 아버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자신의 본분이라고 말하였다.

맏딸과 둘째 딸의 달콤하고 온갖 미사여구의 말에 취하여 있던 리어왕은 분노를 삼키며 다시 막내딸에게 사랑의 말을 묻지만, 코델리아는 정직하게 수식어도 붙이지 않고 사랑과 존경을 말하였다.

리어왕은 분노하여 막내딸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추방하며, 두 딸에게 영토를 전부 나누어주었다. 주위의 충신들이 국왕의 권력을 보존하면서 심사숙고하시라면서 두 딸에게 내린 처분을 거두어들이라고 진언을 하지만 리어왕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히려 충성스런 신하인 켄트 백작을 왕국에서 추방하였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국가의 통치와 수입, 기타의 집행권을 모두 두 딸에게 나누어 준 리어왕은 이제 한 늙은이에 지나지 않았다.

두 딸로부터 천대를 받고 그 시종들로부터도 냉대를 받자 비참한 자신을 생각하며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실성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생각하고 딸들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냉대와 학대 속에서 리어왕은 분노에 휩싸여 천둥과 번개, 폭풍이 부는 황야에 나아가서 부르짖는다.

“바람아, 불어라! 내 뺨을 갈기갈기 터지게 해라! 날뛰어라! 불어 닥치라! 폭포야, 용솟음아, 회오리바람아, 억수같이 퍼부어서 높이 솟아있는 첨탑을 침수시키고, 첨탑 꼭대기에 달린 바람개비를 익사시켜 버려라!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처럼 재빠른 유황불이여, 참나무를 두 쪽 내는 벼락의 선도자인 번개여, 내 백발을 불태워라! 천지를 진동하는 뇌성이여, 두껍고 둥근 지구를 때려 부숴서 납작하게 만들어라! 인간 창조의 모태를 찢어발기고, 배은망덕한 인간을 만드는 씨를 모조리 부숴 없애버려라.”

“힘껏 올려라! 불길아, 타라! 비야, 쏟아져라! 비도 바람도 천둥도 번개도 내 딸은 아니다. 자연이여, 너희들을 불효라고 책하지는 않겠다. 너희들은 내게 복종할 의무가 없어. 그러니 마음대로 무서운 짓을 하여라. 나는 너희들의 노예다. 가엾고, 무력하고, 쇠약하고, 천대받는 늙은이다.”

비참한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막내딸 코델리아가 프랑스군을 이끌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와서, 아버지를 만나지만 리어왕은 정신을 온전하게 회복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프랑스군은 두 언니와 남편이 이끄는 영국군에 패배하고 리어왕과 코델리아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한편 두 언니는 욕정에 사로잡혀 거너릴은 동생 리건을 독살하고 자신은 자살하였다.

감옥에 있던 코델리아도 교살되고 뒤늦게 리어왕이 정신을 차리고 죽은 막내딸을 안고 애절하고 안타깝게 울면서 기력이 다하여 혼절하면서 운명하였다.

사실 비극 『리어왕』이 보여주는 내용은 위와 같이 단순하지 않다. 어리석음과 배신을 중요 주제로 본다면,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왕의 비극적인 전개와 함께 다른 한편 아들에게 속고 배신당한 글로스터 백작의 비극이 병렬적 중첩적으로 전개되면서 인물들이 얽히면서 스토리가 이어진다.

어리석음은 인간의 한계이지만 리어왕처럼 나이가 들고 주위에서 간신들이 달콤한 말을 하면 그대로 믿기 쉬운 것이 인간이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지혜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스스로 배워야 한다.

단순히 나이를 먹으면 노인, 늙은이가 될 뿐이다. 나이가 들면서 깨어있고 자신이 가진 권위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자산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있을 때, 비로소 지혜로운 원로, 시니어가 될 수 있다.

아버지는 자식을 배신하지 못하고 오직 속고 베풀 뿐이다. 『리어왕』이 집필되던 당시의 영국이 직면하였던 사회적 배경은 중세 봉건체제가 약화되고 새로운 문화와 문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적 중산층이 생기는 등 다양한 사회 계층화가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이 비극은 당시의 여러 계층의 인물들의 특성을 대변하고 있으며, 특히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이해관계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까 혹은 기존 사회적 세력과 새로운 세력의 충돌과 갈등을 그린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리어왕의 어리석음과 교만도 비극의 문제를 일으키는 씨앗이 되지만, 그를 둘러싼 두 딸과 사위(물론 큰 사위는 바른길을 선택하지만) 그리고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 애드먼드 등의 배반, 음모, 욕망, 잔인함 등의 죄성과 악함이 주도적으로 비극을 만들어가는 동력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봉건질서가 무너지는 중세 말의 혼란한 영국 사회 속에서 여러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사악함을 비극적인 스토리의 연극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연극 ‘리어왕’은 이전에 영국에서 전해 내려오던 관련된 여러 동화와 전설상의 이야기들을 셰익스피어가 읽고 그 내용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결말을, 전혀 다른 비극적 종결로 만들었다는 사실과 여러 인물들 간의 복잡한 성격적 특성을 만들어내어 그 어리석음, 배신, 음모, 갈등, 전쟁, 죽음으로 내몰리는 인간사의 비극적 사건을 창조해내었다는 사실이 비극 『리어왕』을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우리들이 교만하고 어리석고 자기 생각에 빠져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면, 그리고 사려분별 없고 이해관계 속에서 자기 이익만을 추구할 때, 거짓, 배신, 음모, 폭력의 유혹이 얼마든지 작동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한다면, 또한 숙고하고 깨어있지 못할 때 그러한 인간의 죄성과 야만성이 고개를 들고 일어날 수 있다는 인간의 속성을 생각한다면, 리어왕의 이야기는 동서고금과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족, 조직, 사회 속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자 고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