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8 아우슈비츠수용소의 ‘극한의 시련’을 ‘의미와 사랑’으로 극복하다
인문학 산책#8 아우슈비츠수용소의 ‘극한의 시련’을 ‘의미와 사랑’으로 극복하다
  • 현외성(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사회복지학 박사)
  • 승인 2023.01.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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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외성(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사회복지학 박사)

 

현외성 연구원장
현외성 연구원장

[시정일보] 삶에서 고난과 시련, 위기는 무엇이며, 왜 생겨나는가?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은 가능한가? 이러한 질문은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던지는 질문이다.

고난, 시련, 위기는 사회적 구조적인 측면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개인적 측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자연적인 측면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고난, 시련, 위기는 그 원인이 숨겨지고 드러나지 않은, 경우에 따라서는 알 수 없는 채 일어나지만, 나름대로 원인과 이유가 있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고난, 시련, 위기를 어떤 사람들은 극복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무너져 삶이 붕괴된다. 질병에 걸리거나 장애로 고생하거나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수많은 학문적 연구, 수많은 종교적 통찰과 해답이 존재한다.

빅터 프랭클이 지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경험한 내용을 적은 책이다. 저자는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을 사실적으로 적으면서 한편으로는 정신분석가의 시각으로 해석하면서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의미요법’(로고테라피)라는 새로운 학파와 실천방법을 제창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놀라운 저서이다.

나치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강제수용소에 가두고 가스실로 보내거나 강제 노동과 참혹한 생활을 하게 하였다. 빅터 플랭클 박사는 아버지, 어머니, 형제와 아내가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당했다.

누이만 살아남고 모든 가족이 몰살한 셈이다. 그는 강제수용소에서 모든 것을 잃고 벌거벗은 자신의 실존을 만난다. 죽음을 곁에 두고 죽음의 두려움을 매시간 느끼면서 처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자신과 동료들의 삶을 목격한다.

프랭클 박사는 이 책의 초두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책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다. 개인적인 체험, 즉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시시때때로 겪었던 개인적인 체험에 관한 기록이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강제수용소에서의 일상이 평범한 수감자들의 마음에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쓴 것이다. 여기에 나온 이야기의 대부분은 대량학살이 실제로 자행되었던 소규모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름도 없이 기록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시련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앞으로 전개될 글에서 내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이런 체험의 명확한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프랭클 박사는 강제수용소에서 배고픔과 영양실조, 추위, 질병, 강제노역, 잔혹한 처우와 생존 속에서 죽음을 곁에 두고 생활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을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비참한 환경 속에도 저자는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인용한다.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수용소에 도착한 이후 받은 충격으로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느끼면서 자살을 생각한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스실조차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기록한다. 그 충격이 자살도 보류하게 만든다. 극한 환경에서 생활이 시작되고 생존본능이 작동되기 시작한다.

강제수용소에서 다음 단계에 겪는 반응은 상대적인 무감각으로 단계인데, 이는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를 말한다. 한편으로는 집과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너무나 간절해서 자신을 소진시킬 정도이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인데,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한 혐오감과 참담한 환경과 끔찍한 광경에 대한 무감각 단계이다.

이 단계의 주된 징후인 무감각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 불확실하면 오로지 한 가지 과제에 모든 노력과 감정이 모아지게 된다.

즉 나 자신의 생명과 친구의 생명을 보존하겠다는 과제이다. 이러한 과제는 결국 수감자들의 정신세계를 원시적인 수준, 퇴행 상태로 끌어내린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는 원시적이고 퇴행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지만, 영적인 생활은 더욱 심오하게 하는 것은 가능하였다.

수감자들은 가혹한 현실로부터 빠져나와 내적인 풍요로움과 영적인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체력이 강한 사람보다 수용소에서 잘 견딘다는 지극히 역설적인 현상도 이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비참한 몰골로 수감자들과 행진하는 동안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내를 생각하였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프랭클 박사는 강제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이 겪는 자유가 없는 환경에 지배를 받는 생활 속에서 인간의 자유와 선택에 대한 중요한 것을 체험한다. 저자는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라는 사실이다. 강제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병리학적 상처를 치료하려면 미래의 목표를 정해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야 한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더 나아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인간의 정신상태와 육체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희망과 용기를 갑작스럽게 상실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알고 있다.

니체가 말한 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견딜 수 있다.” 자신의 삶에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표가 없는 사람, 의미도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를 찾은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수용소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가기 위해 꽃들이 만발한 들판을 지나 시골길을 걸었다.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주변 몇 마일 안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대지와 하늘, 종달새의 환호 그리고 자유로운 공간만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은 물론 이 세상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단 한 가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그때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말을 되풀이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날, 바로 그 순간부터 새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