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인문학산책/ 군것질거리를 찾아 헤맸던 어린 시절
시정인문학산책/ 군것질거리를 찾아 헤맸던 어린 시절
  • 임용담(전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 교육장)
  • 승인 2023.01.2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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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담(전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 교육장)
임용담
임용담

[시정일보] 작은 마을이어서 동네는 점방(동네의 구멍가게를 지칭하는 말)이 없고 용돈도 없었기 때문에 군것질거리는 스스로 자급자족을 해야 했다. 봄이 되면 뒷산으로 올라간다. 칡 나무가 새순을 자랑하며 올라오고 있다.

그 새순을 꺾어 껍질을 벗겨서 먹고, 뒤돌아보면 찔레 순이 탐스럽게 자라는 모습이 눈에 띈다. 긴 찔레를 꺾어 겉껍질을 벗겨 먹으면 달착지근한 오묘한 맛이 있다.

껍질을 벗기는 것도 요령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 순을 알맞게 꺾은 후 밑 부분의 겉껍질을 벗겨 천천히 아래로 당겨야 한다. 서로 먼저 꺾기 위해 잡다가 작년에 올라와 있는 가지의 가시에 찔리거나 긁혀 피가 나기 일쑤였다.

지금도 산행을 할 때 칡넝쿨과 찔레를 보면 어렸을 때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소나무 새순이 올라오면 꺾어 속껍질(송키)을 벗겨서 먹기도 했다.

논둑에 있는 삐비(삘기의 방언)는 추억의 선물이다. 삐비를 뽑아서 여러 개 모아서 씹으면 껌처럼 질겅질겅 하게 씹히면서 달착지근한 물이 나온다.

우리에게 껌 대용으로 사랑을 받았던 풀이고, 보릿고개를 넘기기 어려웠던 시절인 그때는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삐비를 많이도 뽑아서 먹었다.

껌이 귀했던 시절 껌을 만들어 씹을 때도 있었다. 마을 뒷산 소나무에서 송진을 따다가 밀가루와 섞어서 씹었다. 그러면 입안에는 송진 냄새로 가득하고, 입천장과 이빨 사이에 송진이 붙어 버릴 때가 많았다.

어쩌다가 껌 선물을 받으면 아껴서 씹고 형제자매들이 돌려가며 씹기도 했다. 밤이 되면 벽에 붙여 놓고 잠을 잤다. 벽에 붙여 놓은 껌을 씹기 위해 아침에 먼저 일찍 일어난 사람의 몫이 되기도 했다.

그 시절 학교의 책상 구석구석에는 붙여 놓은 껌으로 도배를 할 정도였다. 교사 시절 학급 담임 배정을 받으면 책상에 붙어있는 껌을 떼는 데 하루 이상을 투자한 적이 많았다.

초여름이 되면 보리 그스름(망종(芒種)에 풋보리를 베어다 그을음 해서 먹는 풍습)을 많이 해서 먹었다. 그스름을 먹고 나면 입언저리가 붓에 먹을 묻혀 그림을 그려 놓은 것처럼 서로의 얼굴을 보고 짓궂은 장난을 했다.

그스름은 호남과 충청 지역에서는 망종 무렵(양력 6월 6일)에 풋보리를 베어다가 그을음을 해서 먹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해 보리농사가 잘 되고 그해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날 보리 그스름을 해서 밤이슬을 맞혔다가 그다음 날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약이 되고 그해에 병이 없이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풋보리를 ‘서포리’라 하는데, 그곳에서도 풋보리를 불에 구워 먹는다.

망종을 고비로 아직 남아 있는 풋보리를 한 줌 베어다가 구워 먹으면 그 맛이 구수하고 좋다. 보리 그스름 말고도 밀 그스름은 맛이 더욱 좋아 소 먹이러 가던 목동들이 재미 삼아 그을음을 해서 먹기도 했다.

이렇게 보리 그스름을 해서 먹는 것은 풍년과 무병을 기원하는 것과 흉년이 들어 양식이 떨어졌을 때 배고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을 어귀에 ‘쨍그랑 쨍그랑’ 하고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온 동네는 야단법석이 된다. 엿은 군것질거리 최고의 끝판왕이었다. 아이들은 집안의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진다. 돈을 주고 엿을 사 먹는 시절이 아니라 물건과 엿을 바꿔먹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엿과 바꿔먹을 수 있는 헌 고무신, 달아서 쓸모없는 쟁기 보습, 빈 병, 망가진 연장 등을 찾기 위해서다. 찾은 고물을 들고 가면 엿장수는 엿판에 쇠를 대어 일정한 엿을 끊어주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정말 달콤했다.

쓸 수 있는 쟁기 보습을 엿과 바꿔먹은 것이 들통나 혼쭐이 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할머니께서 아버지의 화를 잠재워 주셨다.

보리를 베어 탈곡기로 벼를 치는 날을 우리는 손꼽아 기다린다. 맛있는 양파를 먹기 위해서다. 양파는 추운 겨울을 버티고 초여름에 수확한다. 우리 마을은 양파 농사를 많이 해서 살림살이에 도움을 준 농작물이었다.

원동기의 ‘통통’ 하는 소리가 들리면 보리를 탈곡하는 날이다. 그 소리를 듣고 우리는 주워 놓았던 양파를 들고 보리를 탈곡하는 집으로 모두 모인다.

원동기에는 피스톤을 식히기 위해 물을 부은 통이 있다. 통의 물은 시간이 지나면 피스톤의 움직임에 의해 데워진다. 우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물통에 실에 매달아 놓은 양파를 빠트린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양파가 말랑말랑하게 익는다.

말랑말랑하게 익은 양파는 군것질거리가 없었던 시절에 환상의 먹거리였다. 지금도 어렴풋이 입안의 입맛을 자극한다. 다만 양파를 먹고 뀌는 방귀 냄새는 정말 지독했다.

벼가 익을 무렵이면 먹거리가 논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길가 논에서 벼 이삭을 뽑아 낱알을 입에 넣고 껍질을 벗겨 먹는다. 또, 벗긴 껍질은 놀잇감으로 이용된다. 껍질을 불어서 멀리 보내는 놀이다.

입으로 껍질을 불 때 입안의 쌀이 밖으로 튀어나오면 정말 서운했다. 그 맛은 쌀밥을 못 먹었던 시절 너무나 맛있는 먹거리로 기억에 남아 있다.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한 곳에서만 뽑지 않고 여기저기서 골고루 뽑는 것이 선배들의 가르침이었다.

들판에서 놀다 뱃속에서 꼬르륵 신호가 오면 고구마밭으로 달려간다. 주인에게 들키지 않을 방법의 노하우가 있다. 고구마 순을 젖히고 땅이 벌어진 곳을 파보면 고구마가 보인다. 그때 한 알만 떼어내고 다시 덮고 고구마 줄기를 처음처럼 마무리한다.

이런 방법으로 두세 개를 캐낸다. 캔 고구마 한두 개는 잔디밭에 문지르면 껍질이 벗겨진다. 껍질이 벗겨진 고구마는 바로 입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머지 고구마는 나무를 태워 군고구마를 만들어 먹었다.

집에서 들키지 않기 위해서 군고구마를 먹고 나면 입 주위를 서로 깨끗이 닦아주곤 했다. 고구마 하면 아찔한 추억이 있다. 고구마를 캐기 위해 줄기를 젖히는데 손에 강한 아픔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뒹굴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뱀이 도망가고 있었다. 뱀에 물린 손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동네 형은 반사적으로 물린 상처를 입으로 빨아 주었다. 그리고 겨드랑이에 메고 있던 헝겊으로 된 허리띠를 풀어 묶어 주었다.

하지만 겨드랑이는 하늘이 노랄 정도로 아파 왔다. 아픔을 참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를 본 할머니는 걱정 어린 모습이 얼굴에 가득하셨다. 집에서 구할 수 있는 갖가지 조약(민간요법에서 쓰는 약)으로 치료해 주셨다.

하지만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어떻게 잠이 들어 아침에 눈을 뜨니 손이 퉁퉁 붓고 어깨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나날이 며칠간 계속되더니 일주일 정도 지나서야 점점 나아가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정성 어린 보살핌이 있었기에 병원 신세도 면하고 무사히 완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