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정일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는 가지를 품고 있다. 나무라는 식물에 있어서 중심축인 나무가 하는 일과 가지가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중심축인 나무는 가지가 없으면 열매나 꽃을 남길 수 없다. 가지는 중심축인 나무가 없으면 가지로서의 본질적 역할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나무와 가지 관계를 접목해 보자.
사마천이 지은 《사기》 역생육가열전에 이런말이 나온다. “왕자이민위천 이민이식위천(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이다. 풀이하면 임금은 백성을 하늘같이 여기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같이 여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왕은 나무이고 백성은 가지가 되는 걸까? 가지가 병들면 나무는 죽을 수도 있다. 나무를 지탱해주는 힘의 균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남명 조식선생의 ‘민암부(民巖賦)’ 시에 ‘왕은 백성의 바다에 뜬 배’라는 말을 자주 썼다. 이는 민본주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군주에 대한 충(忠)이 절대 가치였던 시기, 정치의 중심을 군주가 아닌 백성에 뒀다. 『순자』 「왕제(王制)」에 ‘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戴舟 水則覆舟’라는 글이 나온다. 이를 풀이하면 ’임금은 배이고 서인은 물과 같은데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엎기도 한다’라는 표현과도 흡사하다.
우리는 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당연한 관계라고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무와 가지 사이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이 없으면 지도자는 의미가 있으며, 지도자가 없으면 국민이 바라는 세상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지도자와 국민은 반드시 함께 해야 가치를 발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개방적이고 건설적인 소통을 할 때 실현될 수 있다. 나무와 가지 관계처럼 소통해야 미래지향적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지도자는 민심을 깨닫지 못하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다. 마치 자기만의 기득권처럼 생각하는 지도자는 국민(유권자)을 가장 아프게 하며 사회를 병들게 하고 나아가 국가를 파멸시키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무가 지도자라면 가지는 민심이 될 것이다. 그래서 민심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나무로서의 본연의 역할(기능)을 하지 못하고 불쏘시개로 마감될 것이다. 한편, 가지를 많이 품고 있는 나무만 많은 꽃이나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걸까?
우리나라 정치마당을 둘러보자. 당을 대표하는 사람은 한사람인데 조선시대 나라의 정치적인 판국을 좌우한 사색당파(四色黨派)처럼 다양한 파벌로 이루어져 있다. 각 파벌의 수장이 국내 정치를 좌지우지( 左之右之)하는 행태로 국민들은 보고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나옴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나라는 정치가 국가의 모든 걸 지배하고 있는 걸까?
현대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다양성 인정에는 관대하지 않다. 특히 정치 분야는 다양성에 대해 가장 관대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당은 일인체제로 이끄는 정당제이다. 물론 비상대책위원회처럼 때로는 집단지도체제를 할 때도 이다. 이제는 나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지처럼 정당대표와 정당원도 나무와 가지 같은 관계로 발전할 수 없는 걸까?
나무와 가지의 관계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함속에 존재하고 있다. 이렇듯 정치가 가장 중요시 해야 하는 가치는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유권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야 한다. 지역주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지도자는 선거에서 선택받아서는 안 되며 특히 국가를 이끌 지도자는 국민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 선출돼야 미래지향적 국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