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11 절망적인 삶의 상황과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
인문학 산책#11 절망적인 삶의 상황과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
  • 현외성 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 승인 2023.02.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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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외성(경남평생교육연구원장, 사회복지학 박사)
현외성 연구원장
현외성 연구원장

[시정일보]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가져온 경제적 불황은 실업과 파산, 그리고 가족의 해체,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불어닥친 삶의 고독, 소외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욱이 비대면의 시대에 부와 권력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사회적 외톨이와 은둔자들이 늘어나고 심리 사회적 질병(우울, 중독, 고독, 소외, 배제, 무연고사 등)이 점차 만연해가고 있다.

물론 비대면의 시대가 새로운 산업과 삶을 유도하고 앞당겨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적 삶에 적응하도록 촉진케 하여, 재빠르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 국가적으로 비대면의 삶을 준비하고 경쟁력을 갖게 하는 측면도 있다.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오늘의 팬데믹 사태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과 사회구성원들이 어떻게 이를 수용하고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이해될 수 있다.

<페스트>는 1947년 6월에 발표되어 카뮈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던 작품으로, 출간 한 달 만에 초판 2만 부가 매진되었고, 그해 ‘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프랑스어로 출판된 책만 500만 부 이상 출판된 베스트셀러다.

장편소설 <페스트>는 카뮈가 약 7년 동안 구상하면서 집필한 작품으로서, 2차 세계대전 후의 시대상과 그가 실제로 경험하였던 내용을 극화시켰다.

실제로 카뮈는 1939년에 발발하였던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소설로 재현하고자 하였고, 특히 1941년 오랑에서 1년 반 동안 지내면서 <페스트>에 대한 창작의 영감을 가져 소설구상에 착수하게 되었다.

또한, <페스트>에는 실제로 오랑 인근 도시에 티푸스가 발생하여 카뮈의 지인이 감염된 사건이라든지 자신의 지병인 폐렴의 재발로 고통을 겪은 개인적 경험 등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다.

<페스트>에서 리외가 요양을 위해 아내와 이별하듯이 작가 카뮈도 프랑스 산악지방 요양 중 연합군의 알제리 해안 상륙으로 아내와 이별의 경험도 하였다.

<페스트>는 프랑스령 알제리에 있는 오랑시에서 페스트가 발병하여 약 1년 동안 한 도시를 휩쓸고 간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 공포, 폭력 등의 극한상황을 시민들이 어떻게 경험하고 싸웠는지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르포르타주 소설이다.

페스트는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악의 상징 혹은 죽음이나 질병, 고통 등 인생의 근원적인 부조리, 혹은 다르게는 인간 내부의 악덕이나, 약함, 빈곤, 전쟁, 전체주의 같은 정치적인 악의 상징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

카뮈는 전후의 실존철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서 삶의 ‘부조리’한 현실과 상황 혹은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반항하는’ 실존적 인간, 투쟁하는 인간을, 특히 도시에 페스트로 인하여 갇힌 절망적인 상황을 ‘집단연대’로 이겨 나아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카뮈는 “실존은 반항하는 것이며 모순적인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창현에 있다.”라고 하였다. 소설 <페스트>는 전체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4월16일 아침, 의사 리외는 진찰실을 나서다가 계단 한복판에 죽어있는 쥐 한 마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로 시작하여 오랑시에 페스트가 발병하였음을 공식 선언한다.

그리하여 도시는 봉쇄되고 페스트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발병하고 이에 따른 시민들의 반응이 서술된다. 평화로운 도시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점차 두려움과 불안 심리가 만연해진다.

그때 의사 리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인정해야 할 것이면 명백하게 인정하여 쓸데없는 두려움의 그림자를 쫓아버린 다음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페스트가 멎을 것이다.”

“리외는 몸을 옴츠리며 놀랐다. 저 매일 매일의 노동, 바로 거기에 확신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는 무의미한 실오라기와 동작에 얽매여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나가는 일이었다.”

“의사 리외의 생각이 거기에 이르렀을 무렵 조제프 그랑이 찾아왔다. 시청의 직원으로서 거기서 맡은 직책이 아주 여러 가지이긴 했지만, 그는 정기적으로 통계과라든지 호적과에도 불려 가서 일했다. 그리하여 그는 사망자의 집계를 맡게 되었다.”

“그는 착한 마음씨에서 오는 용기를 항상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제2부는 봄과 여름 기간에 걸친 사태의 기록으로서, 오랑시의 항구가 폐쇄되고 도시가 봉쇄되어 시민들은 두려움과 상실감, 유배감 등의 감정에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이 묘사되었다.

이 시기에 여러 의사들의 노력과 시민 보건대를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사람들이 그려졌다. 시민들은 도시가 봉쇄됨으로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작스런 이별을 맞게 된 것이 고통스러웠다.

시민들은 페스트의 포로가 되어 귀향살이를 하는 것과 같았다. 취재차 오랑시에 들렀던 랑베르 기자는 봉쇄된 오랑시를 떠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이 상황에서 집단기도주간을 설정하고 제수이트파 파늘루 신부가 설교하게 된다.

페스트는 하느님이 쭉정이와 낟알을 가리기 위해 있는 것이므로 시민들은 반성하고 새로운 눈으로 모든 존재와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페스트는 선과 악, 분노와 연민, 페스트와 구원을 마련하신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나고 있어 시민들을 괴롭히는 재앙이 도리어 시민들을 향상시키고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교하였다.

타루는 자원봉사활동인 시민 보건대롤 조직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의사 리외와 타루의 대화가 이어진다. 파늘루 신부의 진리 운운 설교보다 우선은 치료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사 리외는 “이미 창조되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거부하며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신이 그렇게 침묵하고만 있는 하늘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 죽음과 싸워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제3부는 여름에 도시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을 서술하고 있다. 페스트의 피해자가 급증하고 도시는 폐허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등화관제가 시작되고 장례식조차 폐지된다. 경제생활이 피폐해지고 수많은 실업자가 생긴다.

8월에 피해는 절정에 다다른다. 시민 보건대 조직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연대의식이 형성된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의 능력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가 버렸다.”

제4부는 9월과 10월에 일어난 상황에 대한 서술이다. 페스트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보건대 사람들의 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10월에는 혈청이 시험되었다.

페스트로 죽지 않은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대해 평등하게 느끼게 되었다. 11월, 12월 추위에도 페스트는 기승을 부렸지만, 크리스마스 이후에 살아 있는 쥐들이 주민들 사이에 목격되고 통계상에 병세의 후퇴를 보이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취재차 오랑시에 와서 사랑하는 여인에게도 돌아가지 못해서 돌아가기를 애태웠던 랑베르에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오랑시를 떠날 수 있음에도 떠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다.

만일 자신이 오랑시를 떠난다면 부끄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오랑시 바깥에 남아있던 그 여인을 사랑하는 것도 거북해지리라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혼자만 행복한 것은 부끄러울지도 모르지요.” “나는 여태껏 이 도시와는 남이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이제는 볼 대로 다 보고 나니, 나는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관련된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고통으로 죽어가는 것을 본 파늘루 신부는 “이제야 나는 은총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어요.” 파늘루 신부도 보건대에 합류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타루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의사 리외에게 들려준다. 판사인 아버지가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사회의 이름으로 피고를 죽음을 요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마음의 병을 앓게 되었다.

그는 18세에 집을 나와 정치 운동을 하게 되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는 사형선고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과 투쟁함으로써 살인행위와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 삶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름 아닌 페스트와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의사 리외와 타루는 점차 서로를 이해하며 공감과 우정과 연대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함께 겨울 바다에 나란히 같은 힘으로 헤엄을 쳤다.

제5부는 1월 페스트는 후퇴하고 마침내 페스트 종식을 선언하고 도시봉쇄는 해제되고 시민들이 자유를 찾게 되었다. 타루는 페스트로 죽고 의사 리외의 아내도 요양 중에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도시는 평정을 찾았다. “리외는 시내에서 울리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귀울이면서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있었다. 왜냐면 그는 그 기뻐하는 군중이 모르고 있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불러내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