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인문학산책/ 시골살이에 몰두하다
시정인문학산책/ 시골살이에 몰두하다
  • 임춘임 (시인)
  • 승인 2023.02.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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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임 | 사)한국문인협회 장성지부 회장, 시인
임춘임 시인
임춘임 시인

[시정일보] 새벽 4시, 남편의 부스럭거림으로 눈을 뜬다. 아직 밖은 어두컴컴하고 내 눈은 떠지지도 않는데 어쩌자고 혼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꼭 나를 함께 기상시키는지 알 수가 없다. 얄궂다.

7년 전, 남편의 위암 수술로 인해 생활의 변화가 시작되었고 남편 스스로 환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체력이 안타깝기만 했다. 음식을 마음껏 섭취할 수 없으니 밖에 나가 운동하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현실이고, 그렇다고 그냥 앉아만 있기에는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상황인지라 스스로 변화를 불러내지 못하면 저질 체력에 두 손 들게 될 것 같아 불안했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장성은 공기 맑고 물이 좋은 곳이긴 하나 아파트 생활하면서 집안에서 하는 운동이란 그저 숨쉬기 운동이 전부인 실정이다.

이렇게 시간을 더 보내다간 어느 세월에 건강이 회복되겠는가 싶어 시골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전국에서 공기가 가장 맑고 치유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축령산 아래 작은 마을에 불과 8개월 전에 할머니 혼자 사시다 돌아가셔서 비어 있는 집을 알게 되었다.

빈집 된 지 불과 8개월인데 시골집은 벌써 거미줄과 낙엽들로 폐가가 되어 가고 있었으며, 어머님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을 내어 준다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 하시던 그 집의 자녀분들도 집이 망가져 가는 모습은 안타까웠는지 연락이 왔다.

우리는 그 집을 리모델링하여 둥지를 틀 수 있게 되었고, 도시에서 살다 시골로 다시 들어온 상황이 귀농에 해당한다고 하여 귀농인들에게 주는 집수리 비용도 일부 지원받아 하수구까지 정비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은 가구 수도 적고 마을 주민도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마을 어르신들과 빨리 가까워질 수 있었으며, 나 또한 시골 출신이고 어머님께서 살아계시기에 어른들 섬기기는 늘 부모님 생각하는 마음으로 섬기었다.

장성에 새로 생긴 출렁다리도 모시고 가고, 주변에 맛집도 가끔 찾아다니며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르신들은 자식처럼 생각해주셨고 채소 등 먹거리도 늘 챙겨주셨다.

마을 어르신들과 가까워지면서 인근에 있는 농지를 구입할 수 있었으며, 흙을 밟고 생활하는 남편은 하루하루 건강이 회복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누구보다도 부지런한 성격의 소유자답게 시골집이지만 정갈하고 운치 있게 가꾸어 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시골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밭을 개간하여 집을 짓고, 논을 형질 변경하여 제조업소를 만들어 가는 데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때부터 시골살이 어려움을 크게 깨닫게 되었다.

“아~, 시골의 법규는 너무 어려워.” 집을 짓겠다고 언덕진 밭을 미리 반듯하게 포클레인 작업을 했더니만 신고하지 않았다고 위법이라 한다. 다행히 규정에 넘지 않아 행정처분은 받지 않았지만,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제조업소를 완공하고 허가받는 과정에서 또 수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세무서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했으며, 더군다나 장성은 세무서가 없어서 광주까지 다녀야 하는데…….

군청에도 수없이 들랑날랑한다. 교육 이수증이 필요하고 건강검진을 했어야 하며 등등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누군가 절차를 제대로 알려주면 일 처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인데 싶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사업자등록증까지 받아 놓고 난 후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과정들을 정리해서 이후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침서처럼 내어 주고 싶고, 안내해 주는 그런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어느덧 나도 시골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땅을 사고 조합원이 되고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고 퇴비를 구입하고 농기계를 임대하여 농사도 하고 꽃을 키워 꽃차를 만드는 제조업소도 운영하며 한껏 산골 농부의 티를 내고 있다.

남편은 어느 사이 정년퇴직하고 막걸리 한 잔씩 곁들이며 농사일에 제법 익숙해져 가고 있다. 새벽부터 일어나 이제 본인의 일터인 양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서 경운기로 작은 밭을 일구고, 그곳에 감자도 심고 고추도 심고 콩도 심으며 이제 제법 농부의 티를 낸다.

처음 시골에 자리 잡았을 때 감자 심는다며 비닐 치던 모습이 지금도 역력하다. 농사의 기본도 모르고 시골에 자리 잡고 남들 한두 시간에 할 일을 우리 둘은 온종일 하면서 온통 논두렁에 나뒹굴던 새내기들이 이젠 제법 1년 농사 계획도 세워나간다.

겨울에 파종해야 할 꽃씨를 뿌리기 위해 둘이서 작은 하우스도 만들었으며, 퇴비를 넣고 흙을 덮어주고 내년 봄에 피워 줄 꽃을 기대하며 구슬 같은 땀을 흘려 본다.

지나가는 마을 어르신들께 막걸리 한 잔 대접하는 마음은 어디서 왔는지 남편은 놓치지 않고 챙기며, 반찬 솜씨 없는 나는 안주도 없는데 민망하게 그런다면서 양양거린다.

막걸리는 김치 한 조각이면 된다며 농사일하시는 언덕이나 길거리에 푹 퍼져 앉아 주고받는 막걸릿잔에 안주 삼아 너스레 떠는 남편이 감사하다.

전국에서 편백나무가 가장 많은 축령산 아래 자리 잡고 농사일이 어렵고 힘들어도 남편 건강 되찾았음에 감사하며 오늘도 시골살이에 몰두한다. 이제 농사지을 땅도 우리 힘에 겨울만큼 장만되었으며, 제발 더는 사고 치지 말라는 남편의 당부도 받아들이며, 둘이 지은 작은 하우스에 꽃씨를 뿌린다. 내년 봄에 피울 꽃들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