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정치 개혁과 유권자 단체의 역할
특별기고/ 정치 개혁과 유권자 단체의 역할
  • 임종은 한국문학신문 전 편집국장
  • 승인 2023.02.2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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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은 한국문학신문 전 편집국장
임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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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일보] “우리나라는 경제는 2류, 관료와 행정 조직은 3류, 정치는 4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5년 베이징 특파원과 간담회에서 우리 사회를 진단하며 했던 말로서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으로는 “정치는 5류, 기업은 1류다.”라고 해도 누구든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듯하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불신의 대상은 정치이며 정치인이다.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청렴하고 정의감과 의협심이 충만했던 사람도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이기주의적이고 부패와 부정에도 눈을 감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한통속이 되고 만다. 정치의 속성상 아마 그 집단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신이며, 권력의 맛에 점차 길들기 시작했다는 증상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오랜 역사와 훌륭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라를 지켜내지 못하고 주변국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긴 채 만신창이가 되어 수많은 백성이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은 모든 국민이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특히 조선 후기 이후로 내려오면서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당파싸움, 족벌정치, 지도자의 무능 등으로 결국 망국의 한을 남기게 된 부끄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당쟁의 시작은 중국으로부터 서원(書院)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했다. 서원의 설립 초기에는 존현(尊賢)과 교육 등의 필요한 기능을 해왔으나, 점차 붕당의 온상 역할을 많이 하게 되었다. 동인과 서인의 분당으로부터 시작된 당쟁은 동인에서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고, 북인의 갈등으로 대북과 소북으로, 대북은 골북과 육북으로 나누어지고, 소북은 청북과 탁북으로 계속 분열해 갔다.

또 서인은 낙당. 원당. 산당. 한당 등으로 쪼개져 반정공신과 신진세력과의 정치적 주도권 싸움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더구나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으로 나라가 위태로운 가운데도 국가와 국민의 안위보다는 정치적 영향력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은 계속되었다.

숙종 이후 집권 세력이 교체되면서 환국(換局)의 정치가 시작되기도 한다. 갑인환국,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 등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거나 파직, 귀양 가는 사태는 반복되었다.

영조. 정조대에 당쟁을 해소하기 위해 탕평 정책을 실시하면서 분당의 조짐은 수그러진 듯하였으나, 이제 외척 세력 등에 의한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혜경궁 홍씨의 풍산홍씨 가문 이후 안동김씨 가문, 풍양조씨 가문의 세도와 부패로 인하여 사회가 극도로 혼란해지고 정치가 바로 서지 못했다. 이후 대원군의 등장으로 여러 가지 개혁 조치를 취하며 혼란을 수습하였으나, 이미 국력이 쇠진해지고 근대화된 외세의 세력에 밀려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는 이처럼 뼈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의 우리 정치 상황을 보면 반면교사의 교훈은커녕, 예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부정부패와 측근 비리, 되풀이되는 정치보복 등 조선 후기의 실상을 다시 보는듯한 느낌이다. 우리는 왜 이처럼 구태의연한 정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 20대 국회에서 4년 동안 발의된 법안은 24.000건이나 되는데, 그중에서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35%에 불과하며, 나머지 15.000건의 법안은 국회에 계류 상태로 있다가 20대 국회가 끝나면 폐기될 운명이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하나의 법안 상정을 하는 데는 엄청난 과정과 노력이 소요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 입법은 조직력을 동원하여 할 수 있지만, 기업이나 민간단체 등에서 필요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자 할 때는 상상할 수 없는 난관을 넘어야 한다.

국회의원을 설득하여 10명 이상의 발의자를 모아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법안이 제출되면, 상임위원회 회부와 소위위원회 심사 등 수 많은 회의, 이해 당자 및 관련자의 의견 청취와 조율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법안 준비, 전문위원 검토, 상임위 전체 회의 표결 후, 최종 법사위원회를 거쳐서 본회의에 상정되어 통과되어야만 비로소 법률안이 탄생한다.

20대 국회 기준 전체 법률의 평균 처리 기간은 577.2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듯 어려운 과정을 거쳐 온 나머지 15.000건의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 체, 계류된 상태로 있다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자동으로 폐기되고 만다. 계류된 법안 중에는 국민의 생활에 시급한 법안, 국제적 경제안보 관계에서 국익을 지켜야 할 소중한 법안, 또 개인의 억울한 인권을 지켜야 하는 눈물 젖은 법안 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권은 국익이나 국민경제나 국민의 인권 따위는 뒷전이다. 우선 당리당략을 앞세운 당쟁으로 세월을 보내며,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 국리민복을 위한 입법 활동을 외면함으로써, 본 회의에 부의하지 못한 수많은 법안을 폐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말로는 법과 원칙을 외치면서도 탐욕과 패거리 정치의 야합에 파묻히고 만다. 지금 한국은 경제와 문화적인 면은 선진국 수준인데 정치는 아직도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평가는 오래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힘없는 백성들은 언제까지 이런 4류의 정치 환경 속에서 한숨만 쉬어야 하며, 정치 풍토를 개선할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인가? 그 대안을 제시해 본다.

첫째, 우선 정치 선진국의 국회 운영 실태와 국회의원의 권한과 조직의 실상 등을 검토 분석해서, 선진화된 제도를 도입하여 개선안을 만든다. 둘째, 개선안을 법제화하기 위하여 법조인과 관련 학자 등으로 중립적인 기구를 신설하여, 의원의 특권을 합리적으로 축소 조정하는 방안과 무노동 무임금 법안을 반드시 실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최종적으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식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전국유권자 조직을 활성화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업무 협약이 가능토록 제도화하여 회기 중 의정활동에 대한 감시와 폭넓은 모니터링, 예산 낭비성 행사나 부정과 비리 행위 등을 면밀히 파악하여 주기적으로 언론에 공개하며 우수 의원과 불성실 의원을 유권자가 구분할 수 있도록 발표함으로써 투표 시에 반영하도록 한다. 더불어 ‘국회개선안’에 반대하는 의원을 공개하여 지탄을 받도록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단체’가 NGO적 성격을 명확히 하여 정치인의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입법 활동을 소홀히 하면서 특권을 거머쥐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선출직 공직자는 퇴출시켜야 한다. 문제는 현재의 ‘유권자단체’가 지금의 시스템으로 이처럼 중대한 일에 중립적이고 엄정한 의지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전국 유권자 단체가 설립 목적에 부합한 활동만 해나간다면, 국민이 원하는 한국의 정치 풍토는 반드시 개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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