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을 넘는 구름아
기고/ 산을 넘는 구름아
  • 임동식 사)노인의 전화 상담위원
  • 승인 2023.02.2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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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식 사)노인의 전화 상담위원
임동식 상담위원
임동식 상담위원

[시정일보] 나의 아버지께서는 1962년 7월 9일 초여름의 더위 속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이듬해 겨울 1월 22일 눈발이 휘날리던 날 저녁나절에 나의 여동생 구름이가 태어났으며 이로써 우리는 세 남매가 되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오래되고 낡은 집이라 뒤틀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운 까닭에 이불로 덮어놓은 구름이가 보고 싶어 나는 이불속을 파고들며 동생의 볼에 입을 맞추며 좋아했었다.

​유수와 같이 세월은 흘러 구름이가 쉰일곱 살이던 9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구름이가 골수암과 림프종 백혈병이란 두 가지 병의 판정을 받은 것이다. 나에게 두 여동생이 있지만 구름이가 유복녀로 태어난 까닭에 이 동생을 '우리 막내'라 부르며 유달리 아꼈었는데 하필이면 그런 몹쓸 병마가 찾아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구름이에게 닥친 운명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이에 구름이는 병마를 극기하겠다는 생각과 삶의 의지가 강했고 나의 매제는 물론 두 조카와 우리 남매들은 구름이를 열성으로 돕기로 한 가운데 항암제 투여가 시작되었다.

전신을 흐르는 혈액 속의 암을 죽여야 하는 치료이기 때문에 항암제를 맞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머리카락이 다 빳는 육체적 고통도,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는 정신적인 고통도 구름이는 강한 삶의 의지로 잘 견뎌주었다.

그 덕택이었을까. 2월에 이르러 골수암과 림프종 백혈병 두 가지 병이 다 없어진 것이다. 담당 의사도 워낙 구름이가 긍정적 마음가짐을 가졌기 때문이라며 놀라워했다. 불행 중 다행한 이러한 결과에 마치 어두운 긴 터널을 벗어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가족들은 모두가 다 같이 즐거워했다.

그러나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직 문제가 남아있었다. 골수를 이식해야 하는 문제가 남은 것이다. 기존의 골수는 잘못된 백혈구를 생산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백혈구를 생산할 수 있는 양질의 골수를 이식받아야 하는 문제가 남은 것이다. 이식받을 골수는 기왕이면 남자형제의 것이 좋다는 담당 의사의 소견이라며 구름이는 나에게 골수를 수여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 동생 구름이를 살리기 위해 나의 골수가 필요하다면 백 번이라도 줘야 할 일이다. 이렇게 하여 이듬해 2월에 골수이식을 잘 마쳤으며 이 또 한 잘됐다는 게 의사들의 평판이었다.

이 결과에 가족들은 모두가 다 같이 처음 암을 퇴치했을 때처럼 즐거워했다. 백혈병은 완치가 어려워 걸리면 죽는다는 공포의 병으로 알았던 과거와는 달리 혁신적으로 발달한 의술과 구름이의 강한 삶의 의지와 긍정적인 사고 덕택이라 했다.

그래서 나는 구름이에게 제안을 했다. 발병 초기에는 공포감 때문에 어머니에게 발병 사실을 못 알려 드렸지만, 이제는 암 자체가 거의 없어진 것은 물론이요. 이식도 잘 되었으니 어머니에게 사실을 알려드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뵈어 드리자고~~

그러나 구름이는 현재의 앙상한 모습으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도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지만, 지금의 모습을 보여드리게 되면 어머니에게 걱정을 안겨드리게 된다는 게 그 이유이고 어머니를 뵙는 것은 건강을 되찾아 살도 좀 찌고 이쁜 얼굴이 되었을 때 하자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면역력이 약해 사람 만나는 것을 제약하고 있다고 하여 나도 동생의 의견을 따랐다.

그건 그렇다. 병마에 시달려 꽹하게 말라버린 자식을 보고 마음 편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가족들은 어머니에게 구름이의 발병 사실을 절대 비밀로 하자고 약속을 했으며 철석같이 그것을 지켰다.

그리고 추석이 되었다. 늘 명절이나 어떤 이슈가 있는 날에 막내 구름이는 선물꾸러미를 들고 구순의 노모님을 뵙자고 우리 집을 찾아왔었는데 지난 구정에 이어 추석에도 안 왔다. 아니 무균실에서 치료를 받는 관계로 올 수 없는 것이다.

추석날 점심 무렵, 어머니는 무릎 관절이 좋지 않고 노구인 관계로 앉은뱅이걸음을 하여 거실 창 옆으로 가시더니 담 너머의 고갯길을 바라보고 계셨다. 구름이의 현실을 모르시는 어머니는 혹시 올지도 모르는 막내딸을 기다리시는 것이다.

파란 하늘에는 한 조각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으며 저렇게 흘러가는 구름을 병실 창을 통하여 내 동생 막내도 바라보고 있을는지, 추석이면 구름이 우리 막내, 송편을 그리 좋아했었는데, "어무이! 구름이는 직장 일이 바쁜 관계로 못 온답니다." 나의 이런 거짓말에 어머니는 체념하시며 창가를 떠나셨다.

구름이의 치료는 잘 되어갔고 전체적인 증세가 많이 좋아졌다. 이에 따라 대학병원 암 병동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가료 중에 들었다. 다만 입안 천지가 염증 궤양이 생기고 몸무게는 30kg으로 초등학생 정도였지만 이것은 골수가 안착하는 과정의 숙주 반응이라 했다. 이식 환자들에게 숙주 반응이란 환자가 정상을 찾아가며 신체의 어느 부위에라도 생길 수 있는 것이며 정도가 더 했다. 덜 했다를 반복하며 정상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구름이도 그러한 정상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며 담당 의사의 소견은 구름이는 다른 환자에 비교하여 지극히 양호한 편이라고 하였다. 구름이는 입안의 통증 때문에 먹는 음식은 죽이었으며 그 외 딱딱한 음식은 못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에 내가 구름이에게 전화를 하여 꿀은 먹을 수 있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그럴 것 같다고 하여 강원도의 지인을 통하여 진짜 토종꿀을 가져왔다. 이 꿀이 동생의 몸을 만드는데 좋은 활력소가 되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요일, 나와 바로 밑 동생은 꿀단지를 들고 기쁜 마음으로 구름이 막내 집을 찾아갔다. 현관을 들어서니 조카들과 여수에서 오신 사부인이 계시고 사부인의 동생쯤으로 보이는 노파가 소파에 앉아계시기에 내가 인사를 드렸더니 노파는 불편한 몸을 일으키며" 오빠! " 이러는 것이다. 아차! 내가 변해버린 막냇동생 구름이를 몰라보았구나.

구름이는 소파 앞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오빠! 나야 구름이." 나의 아둔함을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가르친다. 아~아!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러한 현실에 구름이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우리는 구름이 집에 오래 머물면 안 되었다. 면역력이 부족한 동생과의 접촉을 될 수 있으면 삼가야 하는 까닭이다.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동생 집을 나서는 나와 바로 밑 동생을 배웅하기 위해 식구들이 현관까지 따라 나오고 그사이에 서 있던 구름이는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나는 터질 것 같은 눈물을 감춰야 했기에 도망치듯 집을 나와야 하였다. 그리고 2십여 일 뒤, 구름이가 또다시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폐열증이 생긴 것이며 이것 또 한 골수가 안착하여가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숙주 반응이라 하였다.

이때 나의 바로 밑 여동생은 '내 동생을 났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간병을 해야겠다'라며 간병을 자청하였다. 이러한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의 덕택인지 구름이의 강인한 의지에서였는지 구름이는 일 주일 만에 다시 정상을 찾았다. 몸이 다시 평소의 정상에 이르자 담당 의사는 이번에는 집이 아니라 전문요양병원으로 가라고 권장을 하였다.

의사가 요양병원을 권장하는 이유는 백혈병으로 골수이식을 받은 환자들은 골수가 안착이 되기까지는 언제든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만약에 위급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신속한 대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므로 요양병원을 권장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구름이는 담당 의사의 권장에 따라 집이 아닌 '용인시 수지구 현암로 신주프라자' 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좀 더 몸을 챙긴 후에 집으로 갈 요랑인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구름이의 신체여건과 건강상태를 고려한 음식과 운동 등을 맞춤형으로 해 주니 좋고 특히나 간병인의 인정 넘치는 보살핌이 크게 도움이 된다며 구름이는 좋아했다.

요양병원에서의 문병은 코로나로 말미암아 금지가 되어 있었고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행정당국의 이러한 조치에 성실히 따라야 했다. 그러한 까닭에 구름이를 만나고 싶으면 목소리라도 듣고자 전화를 했고 그래도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를 통해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병세 등의 안부를 물어야 했다.

​해가 바뀌고 2021년 3월 20일 토요일 하오 8시, 늘 처럼 막냇동생 구름이에게 전화를 했지만 구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도 일찍 잠든 까닭이련…. 그리고 이튿날 동이 트기 전의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오빠! 큰일 났어요. 구름이가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대요." 청천벽력 같은 나의 바로 밑 동생의 전화였다.

아~아!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일까. 그래 엊저녁에 전화를 안 받더니‘아무래도 잘못 된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의 전화 소리를 옆에서 들으신 어머니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신다. 사실을 아시면 절명하실 위험 때문에 막내 구름이가 퇴근길에 가벼운 자동차 접촉사고를 냈다고 거짓말을 하고 급하게 집을 나와 동생이 기다리는 차로 갔더니 동생도 불길함을 예감하였던지 차 안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더디기만 하고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떨리는 심장이 되어 병원으로 들어섰다. 중환자실 앞에 서 있던 조카들 남매와 매제가 나를 보더니 참았던 듯 울음을 터뜨린다. 폭발하는 통곡이었다. 순간적으로 틀림없이 잘못된 것이 예감되었다.

"대체 이것이 뭔 일이냐?" 조카에게 물었다. 조카는 울먹이는 소리로 대답했다. 밤 12시경에 엄마가 호흡이 곤란하니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문자 메시지를 해왔고 이에 조카는 요양병원의 담당 간호사에게 전화하여 다급하게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이송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간호사는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보호자가 없으면 접수가 안 되니 조카더러 와서 응급실로 모시고 가야 한다는 말을 하더란 것이다.

전문요양병원은 그에 걸맞게 상급병원과 연계체계를 구축하고 있어야 할 것이고 생명이 위급한 환자가 발생 시는 전문요원이 우선 대처하여 위급한 생명은 구하고 봐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 아닐까. 그런데도 요양병원의 안이한 대처에 동두천에 사는 조카는 허겁지겁 용인 수지의 요양병원으로 갔던 것이며 요양병원에 도착하니 구급차에 산소호흡기를 채운 엄마를 싣고 있더란 것이다.

요양병원 담당 간호사도 뒤늦게 위급한 사실을 인지하고 스스로 구급차를 불렀다.엠블란수가 대학병원의 응급실 문을 들어설 때 엄마가 의식을 잃었고 심장이 멎었다고 하는 것이 조카의 설명이다…. 조금만 더 빠른 조처했더라면, 소위 말하는 황금 시간을 놓치는 안이한 요양병원의 조치에 개탄과 분개하는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구름이가 들어가 있는 중환자실의 일반인 접견은 코로나 방침 때문에 금지되고 있었으나 나에게는 남매지간이니 들어가 보라고 했다. 병상에 누워있는 구름이, 나는 구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 이름을 불렀다. 구름아!구름이는 산소호흡기에 호흡을 의지하고 눈은 꼭 감은 채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구름이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에 심정지가 오고 그때 의식을 잃었던 것이며 심장 충격요법으로 심장은 다시 살아났지만, 의식은 깨어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동안 주사를 많이 맞았던 관계로 이곳저곳 멍이 든 팔은 보랏빛으로 괴사가 시작되었다. 아~아! 막내야! 내 동생 구름아! 죽으면 안 돼! 제발 살아만 다오!

나는 찢어지는 가슴으로 구름이가 뉘어진 병상 모서리에 서서 차가워져 가는 구름이의 발을 쓰다듬으며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흘렸다. 의사는 혹시 의식이 되살아날 수 있으니 하루를 지켜보자고 했다. 하루, 아니 열흘이라도, 한 달이라도 좋으니 소생만 되어다오! 죽어서는 안 돼! 제발 살아다오! 우리는 구름이네 집에 머물며 혹시라도 살아났다는 실오라기 같은 병원 측의 연락을 절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러나 정오가 되어도, 해금이 다 되어도 살아났다는 소식은 없었다. 초조하고 답답하여 뒷산으로 올라갔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구름이를 이 세상에 불러 놓으시고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하늘로 가신 아버지, 나는 소나무에 대고 외쳤다.

아버지! 당신의 막내딸 구름이가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 가닥 생의 끄나풀에 매달려 울고 있습니다. 살아보려고 저렇게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가여운 구름이를 고통의 늪에서 건져 주세요! 아버지! 저희 남매들의 아버지! 구름이의 아버지! 구름이를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소나무는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 대답은 없고 나의 절규는 숲으로 사라져 갔다. 산에는 구름이 처럼 예쁜 진달래꽃이 화려하게 피어나 봄바람에 하늘거리고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만 떠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