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인문학산책/ 임종국, 친일파 연구의 길
시정인문학산책/ 임종국, 친일파 연구의 길
  • 임호성(서울 민족사랑교회 담임목사)
  • 승인 2023.04.1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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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성(서울 민족사랑교회 담임목사)
임호성 목사
임호성 목사

[시정일보] 인간이 되려고 하는 침팬지의 이야기다. 그는 인간으로 변신하려고 하는 중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어떤 속성을 하고 있는가. 인간을 알고 싶어 하는 침팬지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려 한다.

언어를 쓰는 게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말을 하고 글을 쓰면서 무언가를 전달하고 기록하고 서로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인간 세상의 특징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언어를 벗어날 수 없다. 말과 글 없이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타인과 끊임없는 만남과 소통의 연속이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부딪히고 어울리고 또 갈등을 일으키면서도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거의 말과 글의 주고받음 속에서 이루어진다. 말을 하고 듣고 글을 쓰고 읽는 행위의 연속이 인간의 세상살이다. 그만큼 말과 글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인간다운 삶을 위한 조건이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이 역사를 악으로, 선으로 만든다. 역사적 인물이 전체를 선한 세상으로, 악한 세상으로 만들어나가고 각 사람은 역사의 전환점에 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선한 삶을 살면 세상은 선으로 나가고, 악한 삶을 살면 세상은 악으로 되어 멸망의 길로 나간다.

절체절명의 고난을 이겨 낸 요셉 같은 기적의 인생 드라마의 주인공 임종국은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시대, 친일행적에 대하여 친일 문학론(1966)을 집필한 대 사학가임에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임종국(林鐘國, 1929~1989, 본관 나주) 그는 누구인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임종국 선생은 친일문제 연구에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평생을 통해 일제에 부역했던 사람들의 행적을 조사했으며 관련 자료를 집대성하다시피 골몰하여 후대 연구의 기반을 조성했다.

친일파로 알고 또 지칭하는 수많은 인물의 기록이 그가 작성한 1만 2천 장에 달하는 친일 인명 카드 속에 담겼고 후일 이는 친일인명사전의 뿌리가 됐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부끄럼 없는 떳떳한 역사를 바로잡은 역사를, 문학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친일파라는 말 자체를 금기시하던 1960년대의 풍토는 선생의 연구를 외면했고 선생은 가난했다. 하지만 굴하지는 않았다.

그의 붓끝은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건 없건 관료이건 문필, 예술가이건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육친(아버지 임문호)과 스승(유진오)의 친일행적까지 가리지 않고 고발했다. 선생으로서는 뼈를 깎아내는 아픔이었겠지만 그것이 친일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의 공정이고 입장이었다.

야인이요, 백면서생으로 고독한 육십 년을 살았지만, 내게 후회는 없다. 중뿔난 짓이라도 누군가 해야 했을 일이었다면 내 산 자리가 허망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임종국 어록에 그 말대로 누군가 해야 했을 일이었기에 우리 후대 사람은 선생에게 모종의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작지 않다.

왜 이런 부정의(不正義)가 독판치는 세상이 되었을까?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가 그 답의 실마리를 준다. 사르트르는 독일로부터 해방된 프랑스에서 「협력자는 무엇인가」란 글을 썼다.

그는 나치 점령 아래서 친독 협력을 했던 지식인 정치인 종교인들을 분석하면서 치밀하게 그들을 관찰했더라면 훨씬 먼저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친독(親獨) 협력자의 정신사적 맥락이 멀리 프랑스대혁명까지 소급하여 혁명 반대의 국왕 옹호 보수주의자를 거론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하여 체질적인 반감을 품으며 온갖 개혁과 개방과 진보를 외면하는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들이 결국은 정신사적으로 파시즘-외세 의존적 특권향유 이데올로기를 신봉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그렇다.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른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의 친일행위를 상황 논리로 눈 감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두환에게 송시를 읊고 전두환의 웃음을 ‘오천 년 아래의 최고의 미소’란 낯간지러운 찬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뼛속까지 권력에 기생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정신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한미한 평범한 생활인들에게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보통의 문화생활 영위는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한다. 그래서 ‘현실’이라는 구차한 변명으로 자신의 비겁함과 악에 대한 침묵을 정당화한다.

미당의 처세술에는 부끄럽고 참담해 할 뿐이다. 그러나 정녕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사회적 증거(social proof)의 원리이다. 사회적 증거 원리란 많은 사람이 하는 행동이나 믿음은 진실일 것으로 생각해 그것이 옳건 그르건 따라서 하는 경향을 말한다.

우리의 삶은 불확실성에 지배당한다. 불안정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에 적응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사회적 증거를 찾는다. 옳든 그르든, 정의든 부정의든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을 행동의 모델로 삼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친일하고 독재에 부역한 이들이 어떤 단죄도 받지 않고 호의호식한다면 권력에 기생하여 안락한 삶을 도모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친일 청산이나 적폐 일소는 과거사를 바로잡자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적 증거를 만드는 일이다. 일제 침략을 전후하여 권력의 측근에서 온갖 부정한 특권을 누렸던 세력들은 거의 친일파로 전락했다.

아직 친일이 청산되지 않았다. 이것이 현재까지 사회적 증거가 되고 있다. 친일 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단순히 반민족적인 일제 협력 행위를 처벌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친일파를 청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친일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상사적인 이데올로기의 위력 때문이다. 쉽게 말해 대다수 민족과 이웃을 배반하고 세력에 기생해 개인 이익을 추구한 사람들을 사회가 어떻게 처우하느냐는 바로 후대의 ‘사회적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친일파가 아니고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라고? 일제에 기생해 개인의 영달을 꾀한 자의 혀 놀림이 가증스럽다. 하늘의 뜻에 따라 일제에 순종했다고? 그렇다면 김구나 김원봉이나 김좌진은 역천(逆天)했다는 말인가?

우리는 먼저 떠난 고인들을 기리고 추모한다.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함과 동시에 그의 생애를 뒤돌아보는 것이다. 가끔은 고인이 떠난 시점을 기점으로 시간 사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그만큼 고인이 관철한 삶이 강렬했거나 사상과 행적을 기념할 필요가 높았다고 판단해볼 수 있다.